지금까지 내가 주도한 글쓰기 모임으로 만난 사람들이 100명을 훌쩍 넘는다. 모임은 항상 10명 정도의 소수정예로 운영하고, 1년에도 몇 번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숫자는 대략 10년 가까이 쌓인 것이다. 100명이 넘는다고 하면 대단히 많아 보이지만, 나는 글쓰기모임에서 만난 모든 글을 기억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에서 가장 열심히 읽은 글들이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글들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최근에는 ai의 발달로 글쓰기의 가치가 대단치 않아졌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의 글을 만나며, 글쓰기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라 믿게 되었다. 누군가는 글을 쓰며 평생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다. 오랜 상처나 꿈, 불안과 희망을 드러내며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하기도 한다.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면서, 나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고자 애쓰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가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 쓰기도 있고, 100만부 판매를 목표로 하는 소설 쓰기도 있다. 1만 팔로워를 갈망하는 SNS 글쓰기도 있고, 월 얼마의 자동수익을 보장한다며 타인을 유혹하는 글쓰기도 있다. 그러나 내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글들은 그런 글이 아니었다. 그 글들은 때론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나와의 화해였고, 평생 어려웠던 부모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자 애쓰는 시도였으며, 필사적으로 오늘을 긍정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런 글쓰기는 AI가 대체할 방법이 없다. AI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나의 이야기를 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AI가 아무리 글을 잘쓴다 하여도, 나에 대해 쓰라고 하는 순간 AI가 자아낸 모든 단어는 거짓이 된다. AI에게 지난 일본 여행 경험을 근사한 에세이로 만들어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내가 후쿠오카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설렘, 2년 전에 마셨던 맥주를 다시 마실 때의 기분, 함께 여행온 내 곁의 사람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알 방법이 없다. AI는 그럴싸한 글 한 편은 써줄 수 있겠지만, 나의 1인칭 진실은 나만이 알고 있다. 진정한 글쓰기는 바로 거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나 말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나의 진실이 된다.
이 절절한 이야기들을 10년 가까이 마주하다 보면, 창작의 숭고함이라는 것도 역시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하나의 글, 즉 작품이 소중한 것은 단순히 그것이 '잘 만들어진' 즉 '웰메이드' 된 무엇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는 한 인간의 진실이, 온갖 부끄러움과 자책감과 두려움과 불안을 뚫고 나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랄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 자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1인칭 글쓰기야말로, AI가 얼마나 발전하든지 우리 인간에게는 끝까지 중요한 일로 남을 것이다. 특히, 각자의 1인칭으로 이루어진 글들을 서로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조언해주는 '글쓰기 모임'이란 더욱이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그 속에는 인간과 인간의 연결, 공감, 관계가 어느 때보다 깊이 살아숨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글쓰기 모임이 있는 시간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진실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다정하게 맞이하는 그 순간들은 역시 인간 삶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이다. 단지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함께 쓰고, 함께 읽고, 함께 울고 웃으며 각자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그 시간에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실감이 있다.
글쓰기는 그처럼 가장 진실한 방식으로, 우리 안의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마음들을 꺼낸다. 누군가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몇 시간을 고민하고, 문장 하나를 위해 자신의 지난 시간을 되짚는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나는 수없이 많은 순간에 감탄하고 감동해왔다. 어떤 사람은 첫 글을 쓰기까지 몇 달을 망설이다 용기를 내고, 어떤 사람은 삶이 바닥까지 무너진 순간에 비로소 한 줄의 문장을 붙잡아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그런 글쓰기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AI가 아무리 빠르고 똑똑하게 진화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인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문장을 읽으며, 조금씩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믿게 되며, 결국은 사람을 지지하게 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매번 다음 글쓰기 모임의 첫 문장을 기다린다.
* 6/28(토) 양재역 우주현에서 "ai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북토크가 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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