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쟤네들 처치곤란이야. 집으로 가져가도 되는데..." 당시 내 이웃에겐 베이지색과 까만색 털을 가진 에너제틱하고 엘레강스한 코커스파니엘 품종의 개 두 마리가 있었다. 내가 밖에서 놀고 있는 이 개들을 워낙 예뻐라 하니, 이웃이 나에게 집으로 가져가라고 권유한 것이다. 꽤 좋은 혈통의 잘생긴 코커스파니엘 품종의 에이스와 엘모를 더이상 집안 사정상 키우지 못하는 이웃은, 처분에 대해 한참을 고민 중이라 했다. 나는 갑자기 잠재되어 있던 오지랖이 발동했다. 평소에 나는 오지라퍼가 절대 아니고, 오히려 남의 일에 둔감한데, 유독 동물에 대해서는 레이더가 발동한다. “저희 본가에 한번 가능한지 물어볼께요.”
어렸을 적 아빠는 자꾸 집에 동물을 들여왔다. 누가 줬다고도 하고, 사왔다고도 하면서 우리 집은 항상 동물이 존재했다. 개 뿐만 아니라 십자매도 있고, 토끼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죽기도 잘 죽어서, 정말 많은 동물이 우리집을 거쳐갔다. 요즘에는 시골에서 작은 텃밭을 막 일구기 시작하며, 그 곳에서 키울 동물을 찾는 아빠가 생각났다. 전화해서 에이스와 엘모 이야기를 했더니, 더 캐묻지도 않고 그냥 바로 데려오라고 했다. 하긴, 내가 대학 시절에도 실습견을 못버리고, 그 때도 아빠가 있는 시골로 보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에이스와 엘모는 나의 오지랖과, 앞뒤 보지 않는 아빠의 콜라보로 하루 아침에 우아한 애완견에서 농장 시골 개로 변모했다.
아빠는 늘 그렇듯 그 둘을 정성스레 키웠으나, 늘 그랬듯 엘모가 갑자기 기생충 감염으로 죽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베이지 색깔의 똑똑한 에이스를 아빠는 꽤 오랜 기간 키웠다. 에이스는 엄청나게 밝은 성격에, 귀가 크고 귀털 끝이 곱실 곱실한 순종 코커 스파니엘 품종이다. 예전에는 외형이 예뻐서 이 품종이 꽤나 유행했지만, 성격이 너무 활발하고 잘 짖어서 집 안에서 키우다가 많이들 버려졌다. 게다가 크기도 큰 중형견이라, 요즘에는 빛의 속도로 유행이 사그라들어서 이제는 찾기 힘든 품종이 되었다.
아빠는 매일같이 농장에 출근해서 에이스와 시간을 보내며, 둘도 없는 산책 친구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년 후 에이스 역시 결국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아빠는 상심이 컸다고 한다. 농장 앞 산기슭에 에이스를 조용히 묻어주고 돌아와서 텅빈 개집을 보며 숨을 돌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2)
여기서부터는 아빠의 이야기다. "다들 이상하다고 말하겠지만 분명히 나는 자고 있지 않았어. 농장 의자에 혼자 앉아서, 개집을 보고 있었어. 항상 그 곳에 있던 에이스가 없는 텅빈 개집이 정말 허전해 보였어. 그런데 이건 정말이야. 갑자기 그 개집 안에서 죽은 에이스가 나오는거야. 그리고 에이스는 나에게 말을 했어. 그 말이 그냥 마음으로 전해졌어. 에이스는 이렇게 말했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잘 살다 돌아갑니다. 그렇게 슬프면 저 닮은 개 한마리 또 키우며 살아가세요.' 나는 너무 놀라서 할말을 잃었어. 이게 꿈인 것 같은데, 절대 꿈이 아니었어. 에이스의 말이 너무 생생했어. 집에 돌아와도, 다음날이 되도 너무 생생해서 말이지, 에이스를 닮은 개를 진짜 찾아봐야 겠다고, 그 개를 키워야 겠다고 다짐했어."
아빠는 어디서 에이스를 닮은 아이를 찾을 지 막막했으나, 이 근처의 유기견센터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난생 처음으로 유기견 센터를 방문했다. 그 곳에는 다양한 품종의 개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개들은 함께 큰 공간에서 있어서, 다들 꼬리를 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저 구석에 케이지 안에 갖혀서 혼자 누워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빠는 깜짝 놀랐다. 에이스와 꼭 닮은 베이지색의 귀가 크고 귀털 끝이 곱실곱실한 코커스파니엘 강아지가 그 안에 있던 것이다.
아빠는 이 개는 왜 혼자 여기있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말했다. "얘는 병에 걸려서 어차피 죽을 애에요. 힘이 없어서 수의사에게 보여주니 전염병 중증이어서, 격리해서 키우고 있어요. 회복될 확률이 희박하다고 합니다." 아빠는 고민을 했다. 그 순간 엊그제 에이스가 해준 말이 기억이 났다고 했다. 아. 이 아이를 데려가라고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한거구나. 아빠는 그 아이를 데려간다고 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저지했다. "어차피 데려가셔도 며칠 안에 죽어요. 그러니 입양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빠는 졸랐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든 될 때까지는 치료해본다고. 죽더라도 데려가겠다고. 담당자는 난감했지만, 아무리 아파도 다시 버리면 안된다는 서약을 받고, 결국 그 장군이는 아빠의 농장으로 오게 되었다. 이미 기력이 없고 설사만 하던 아이였다. 아빠는 그 겨울 한달 가량 누워 있던 장군이를 돌봤다. 아침 저녁 약을 먹이고, 설사를 치워줬다. 이번엔 신이 장군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놀랍게도 몇 주 후 장군이는 건강해졌다. 그리고 에이스의 개집에서, 에이스랑 똑 닮은 장군이가 살게 되었다.
(3)
장군이는 그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꾸 개집을 탈출해서 산 건너에서 발견되서 찾아왔을 때도 여러 번이었고, 농장 펜스를 더 높이 올려서 장군이의 탈출을 막았으나 한번씩 도망쳐서 차에 치어 죽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용케 사람들에게 발견되서, 유기견 센터로 또 보내지고, 거기에서 마이크로칩을 통해 다시 집으로 인도받을 수 있었다. 에이스보다 어린 장군이는 훨씬 애교가 많고 어찌나 냅다 잘 뛰는지, 누구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군이와 함께 한 시간도 어느 덧 여러 해가 지났다. 결국 또 시련은 닥쳤다. 얼마 전 뒷다리에 혹이 자꾸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털이 하도 길고, 밖에서 키우다 보니 그 혹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었던게 문제였을까. 부랴부랴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하니 종양이라고 했다. 당장 제거해야 하며, 조직검사를 의뢰할 껀데 혹시 악성 종양이고 다른 장기에 퍼져있으면 항암치료를 해야 하며 그렇더라도 오래 살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4)
아빠는 담담히 나에게 그 소식을 카톡으로 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종양을 제거한 수술을 한 사진이 지난주에 왔다. 병원에서는 6개월 간의 항암치료를 권유했다고 했다. 나는 막연히 이번 명절에 올라가면 장군이를 마지막으로 보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일하는 중에 갑자기 마지막 메세지가 왔다.
"장군이는 유기견센터에서 입양할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한 편이었다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게 7~8년 지냈다. 종양(혈액암)이 림프절로 전이 판명되어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정성껏 치료해 볼까한다."
메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아렸다. 동료에게 물어봤다. "요즘에 항암치료를 많이 해요?" 동료는 답했다. "사람도 항암이 어려운데, 개가 뭐가 필요해요? 어차피 살지도 못하는데 사람 욕심이죠. 아. 나도 빨리 건강검진이나 해야지. 요즘 사람도 희안한 암이 많다는데요." 나는 마음이 더 아렸다.
장군이는 항암 약을 먹으며 3개월 정도는 잘 지내는 듯 하다가 불현듯 하늘로 떠났다. 아빠 말로는 자연스럽게 떠났다고 했다. 요즘은 가끔 오는 카톡 사진이 이제 개 대신 주로 꽃 사진으로 온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에이스는 정말로 주인의 상실감이 걱정되어서 장군이로 한번 더 왔던 것일까? 말도 안되는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왠지 믿고 싶기도 하고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동물은 사람의 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반려동물 역시 내가 펑펑 울 때든, 내가 기분이 나쁠 때든 아주 귀신같이 내 감정을 알고, 내 옆에 붙어서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그건 촉촉하고 빤한 눈빛이나, 괜스레 내 옆에 더 붙어서 앵기는 그 미묘한 행동으로서 분명히 느껴지는 생명체 간의 감정의 영역이다.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그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울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 역시 많다. 에이스는 장군이가 되어서 아빠를 위로했고, 아빠는 충분히 장군이를 아껴주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 온기는 순환하고 있었다.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그 거대한 자연의 언어 안에서 이렇게 동물과 사람이 인연이 되어 만나고, 서로가 큰 위안이 되었다는 것은 서로에게 굉장한 일이다. 내가 에이스를 아빠에게 데려오고, 아빠가 장군이를 찾아낸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인연인 것인가. 그 인연이 떠나가서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은 너무나 당연한 단어이다. 하지만, 그 단어가 언젠가 잠잠해질 날이 온다면, 그 다음에는 그 따뜻함과 고마움이라는 단어로 오랫동안 남아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나의 반려동물에게, 슬픈 모습보다는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던 주인으로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
코너소개 : 수상한 말수의사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다가가는 게 망설여지는 한 인간의 고군분투기 글쓴이: 김아람 말 많은 제주도에서 사는 20년 차 말 수의사입니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공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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