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지난 뒤 어느 날인가 아이는 자기도 두 자릿수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는 자주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그날도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나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아이를 한동안 지긋이 쳐다보았다. 이른 여름인데도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콧방울 주변에 내려앉은 주근깨가 장난기 많은 아이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쏟아지는 햇살을 걷어내며 도로를 달렸다.
나는 종일 ‘영어 스위치’를 켜고 있어요.
하루 종일 ‘영어 스위치’를 켜고 일을 하는 것은 내게는 꽤나 고된 일이다. 우선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집중해서 언제나 듣고 있어야 하고, 또 그 말들에 약간의 과장된 몸짓을 섞어 가며 톤을 높여 반응해야 한다. 또 짧고 간단한 말이라도 상황에 맞는 말과 문법에 맞추어서 발음에 신경을 써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과부화 된 나의 영어 스위치를 끄고 싶어서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도 잘 듣지 않는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떨 때는 하교하는 아이를 또 어떨 때는 하교 후에 동네 도서관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내가 아이를 그리고 아이가 나를 발견하면 우리는 살짝 손을 올려 인사를 나눈다. 가끔 아이는 ‘엄마’라고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쪽으로 걸어오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 엄마의 하루는 어땠어?’라고 친절하게 나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의 하루가 어땠는지 묻는구나 싶어서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나의 하루가 얼마나 길고 고단했는지 폭풍 수다를 떨고 싶다가도 얼른 침 한번 꿀꺽 삼킨 다음, 아이의 하루는 어땠는지 되물으며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에게 이 순간은 정말 편안한 시간이다. 아이의 이야기가 사랑스러워서 참 좋고, 또 하루 종일 켜져 있어 과부하 걸리기 직전이던 ‘영어 스위치’를 잠시 꺼도 되기 때문이다.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의 목소리가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가 나를 보며 ‘엄마’ 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 만약 아이가 ‘Mom, how was your day?’라고 물어봤다고 해도 아이의 그 말이 기특하게 여겨졌겠지만, 아일랜드에서 유일하게 나와 한국어로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인 아이가 완벽한 톤으로 나의 안부를 물어주니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늘 위로 오르는 풍선처럼 '퐁' ‘팡’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공기로 가득 채운 풍선을 손으로 ‘팡’하고 두드릴 때 나는 청량감을 닮았다. 아이가 ‘엄마’라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아이가 하는 어떤 말이라도 목소리에 담겨있기 때문에 듣기가 좋다. 그런 아이의 목소리가 좋아서, 몇 년 전부터 나는 가끔 아이의 목소리를 기록해 두려고 일부러 동영상을 찍거나, 녹음을 해 두고 있다. 그리고 한 번씩은 녹음해 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곤 하는데, 매년 달라지는 아이의 목소리와 말솜씨를 듣고 있으면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내 뒤를 받치고 있는 것들.
처음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향했을 때 새로운 삶에 대해 크게 기대를 하거나 부푼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한국에서 살았던 대로 내 할 일을 하고, 또 새로운 삶이 시작되면 그 안에서 열심히 살아야겠지 라는 다짐을 더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처음 3년이 가장 힘들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말도 했다.
어느 자리에든 삶의 자리는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아일랜드에서의 삶이 10여 년 정도가 되었으니 그 삶에 익숙해지고 또 안정을 얻었을 것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 기대를 저 버리며, 오히려 최근 몇 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하곤 한다. 지난 시간 동안 한국에 대한 그리움, 때로는 무시와 차별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들, 단절된 경력으로 인해 느끼는 좌절감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거의 매일 하루의 어떤 순간들에 불쑥 찾아와 나를 세차게 흔들어 놓고 떠나갔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그냥 쉽게 넘겨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들의 파편이 내 앞에 서서 내 두 어깨를 밀쳐서 나를 넘어뜨릴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강한 힘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 반대로 내 등 뒤를 받치고 있었던 것들도 있었다. 말하자면 친절한 아일랜드 사람들과의 만남, 따뜻한 남편의 보살핌과 같은 것들이었고 무엇보다 내 삶의 순간들을 채워주고 있는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아이의 웃음, 아이가 성장하면서 하나씩 독립적으로 이루어 내고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순간들이 꽤나 고된 타향살이를 하는 나의 등을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pinterest.com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그러기에 이제부터 시작된 아이의 ‘두 자리 수의 나이’ 인생을 응원한다. 👍이제 청소년기를 막 시작한 아이의 앞에 펼쳐진 삶의 과정들을 아이가 스스로 잘 겪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아이의 등을 그의 삶을 받쳐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아이가 나에게 그랬듯이.
* 아일랜드 일상 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 글쓴이 -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