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관조 둥지 밖으로 날아간 새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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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를 키우다 보면 백일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쯤이 되면 밤잠을 길게 자고 생활패턴이랄 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이전에 비해 조금은 예측할 수 있는 육아가 가능해진다는 거다. 수면 부족으로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양육자를 위한 따뜻한 위로이자, 간절한 소원이자,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또 이때는 아기가 급성장하는 때이기도 해서, 신체적 발달을 토대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둘 늘어나기도 한다. 여러모로 한층 더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 때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다행히 백일의 기적이 찾아왔고, 아기는 태어날 때 몸무게의 두 배로 자라났다. 커졌어도 여전히 작기만 한 이 사람은 마침내 제 손이 제 것인 줄을 알아차렸는지 엄마를 향해 팔을 뻗을 줄도 알게 되었고, 엎드려서 목을 빳빳이 들고 두리번거릴 줄도 알게 되었다. 이제 발달 단계상 다음 중요한 관문은 뒤집기였다. 등을 대고 누운 자세에서 배를 깔고 엎드린 자세로 몸을 뒤집는 행동은 앞으로 다가올 앉기, 기기, 걷기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직 뒤집기는커녕 옆으로도 잘 안 돌아눕는 아기는 엎드리는 일에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하겠거니 싶어서 딱히 연습시키지는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른 기특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하는 이중적인 마음으로 지냈다.
어느 날 새벽, 자다가 깨서 칭얼대는 아기 소리에 짝꿍과 나도 눈을 떴다. 토닥토닥 달래서 반듯이 눕힌 뒤에 우리도 잠자리에 누워서 아기가 잠들었나 쳐다봤는데, 떡하니 배를 깔고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깜짝 놀라서 한 번, 역사적인 첫 뒤집기의 순간을 놓쳐서 또 한 번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저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진 아기는 이제 방법을 완전히 터득한 듯, 등을 대고 눕혀줬더니 다시 순식간에 홱 엎드린 자세로 돌아왔다. 딱히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혼자서 새로운 과업을 해낸 아기가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직 뒤집을 줄만 알지 다시 되돌아 누울 줄 모르는 아기는 그날부터 깨어있을 때나 잘 때나 끊임없이 뒤집고 울기를 반복했다. 그럴 거면 뒤집지 않으면 될 텐데 싶었지만, 아기는 본인의 자유의지가 아닌 듯 계속 뒤집었고, 우리는 밤낮없이 바로 눕혀줘야 했다. 아기의 발달이라는 기쁜 일에 오죽하면 뒤집기 ‘지옥’이라는 단어를 갖다 썼을까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렇게 한잠을 자다가 아기 울음소리에 깨서 바로 눕히고 또 눕히기를 반복하던 새벽, 문득 오래전에 만났던 아기 홍관조가 생각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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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과 함께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우리 집 현관 옆 나무 수풀 속에서 새빨간 새 한 마리가 날아 나왔다. 원래 종종 새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자꾸 같은 녀석으로 보이는 새가 주변을 맴돌았다. 이상하다 싶어서 수풀 속을 들여다보니 손바닥만 한 새 둥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정교하고 정갈한 둥지 속에는 메추리알 같은 알 세 개가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 시절이었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학교 수업도 원격으로 하던 중에 찾아온 의외의 만남에 나는 너무 설레고 신났다. 검색해 보니 카디날 (Cardinal), 한국어로는 홍관조라고 했다. 깃털이 꼭 추기경 (Cardinal)들이 입는 빨간 옷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흥미롭고 조심스러운 새 이웃을 얻었다.
우리 집 현관과 나란히 위치한 창문 바로 앞 수풀에 홍관조 가족의 집이 있었고, 그날부터 나의 집착에 가까운 염탐이 시작되었다. 자세히 보니 요란한 빨간색 수컷과 차분한 갈색빛 암컷이 교대로 알을 지키고 있었다. 혹여나 우리의 귀한 이웃이 불안감을 느끼고 떠날까 봐서 창문은 당연히 열지도 못했고, 현관을 드나들 때도 슬금슬금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다녔다. 집에 새 둥지가 있으면 뱀이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잠시 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위해 뱀을 물리쳐주겠노라 말도 안 되는 호기를 부리면서 새끼들의 부화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2주쯤 지났을까. 여느 날처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가로 갔는데, 드디어 가냘프면서도 분주한 짹짹 소리가 들려왔다. 벌거숭이 아기 새가 보였다. 분홍빛 피부에 노란 부리가 얼굴의 반쯤을 차지하는 모습이 생각보다 못 생겨서 놀랐고, 생긴 모양이야 어떻든 귀한 생명의 탄생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자꾸 훔쳐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차이로 두 개의 알이 부화했고, 아빠 새는 먹이를 물어 오느라 아주 바빠졌고, 두 마리 아기 새는 밤낮없이 지저귀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알 하나는 끝까지 깨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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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2주쯤 지났을 때였다. 그날도 조심스럽게 둥지 안을 훔쳐보는데,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뱀이라도 다녀간 건지 걱정하던 마음도 잠시, 다행히도 어디선가 짹짹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찬찬히 둘러보니 둥지 아래 나뭇가지에 작은 회갈색 털북숭이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언제 이렇게 자라서 둥지 밖으로 걸어 나갔는지, 딱히 한 일도 없는 내가 다 뿌듯하고 뭉클해졌다. 새끼들 앞에서는 어미 새가 자꾸 근처로 날아갔다 돌아왔다 반복하면서 짹짹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비행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 위를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날개를 소심하게 펴봤다가, 균형을 잃고 기우뚱했다가, 결국 가지에서 미끄러져서 아래쪽 나뭇가지에 겨우 걸터앉으면서, 아기 새들은 하루 종일 열심이었다.
다음 날 아침, 역시나 둥지는 비어 있었다. 일찍부터 또 비행 연습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풀 속 여기저기를 살펴봐도 홍관조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마도 근처로 비행 실습을 나갔을 거라고 생각하며 학기 말의 바쁜 하루를 보냈다. 틈틈이 창밖을 내다봤지만, 수풀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날 저녁에도, 밤에도, 다음 날 아침까지도 홍관조 가족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빈 둥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서운하고 허전했다. 올 때도 마음대로 오더니 갈 때도 마음대로 간 이웃사촌이 야속하기도 했다. 걱정도 되었다. 아기 새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날아간 걸까. 아직 나는 것도 서툴고, 수풀 밖 세상은 험난할 텐데 말이다. 한 달 남짓한 우리의 동거가 꽤 진한 여운을 남겨서인지 아니면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조금 헷갈리기는 했지만, 아무튼 허한 기분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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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끝없는 뒤집기와 울음으로 지친 새벽, 하루가 다르게 자라다가 금세 날아가 버린 아기 홍관조처럼, 이제 막 뒤집기 시작한 나의 아기도 금방 기고, 서고, 걷고, 그렇게 제 세상을 찾아 떠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슬퍼졌고, 미안해졌다. 사실 매일 잠을 푹 못 자니 피곤하고, 아기가 원하는 것을 모르기에 힘들고, 둘만 온종일 집에 있다보면 외로워서 한숨이 나고 눈물이 나는 날들이 있다. 그러다가도 아기가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그게 아쉬워서 또 눈물이 난다.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뒤집어주는 게 뭐 그렇게 큰일인가 싶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며 속상해진다. 텅 빈 둥지만 남기고 간 홍관조처럼 내 품 안의 아기인 날도 그리 길지 않을 텐데 말이다.
여기까지 쓰다 말고 괜시리 곤히 잠든 아기를 보고 온다. 여전히 뒤집을 줄만 알고 바로 누울 줄 모르는 아기는 엎드려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코까지 골며 쌔근쌔근 자고 있다. 참 예쁘다. 이 예쁜 모습 한 번이라도 더 봐주고, 작고 따뜻한 몸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눈 마주치면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면서 포근한 둥지가 되어주고 싶다. 지금에만 할 수 있는 것들, 사실 그리 거창하고 어렵지 않은 그 일들을 하면서, 둥지 속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귀하게 보내야지 싶다. 그래서 핏덩이 같던 나의 아기도 언젠가 귀여운 털북숭이가 되어서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갈 수 있도록, 건강하고 멋지게 그 과정을 도와주고 응원하는 엄마이고 싶다. 육아로 지치고 힘든 마음이 들 때마다 아기 홍관조를 떠올리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자라고 있는 나의 아기를 내일도 기쁜 마음으로 뒤집어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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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하고 여행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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