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너와 나의 진동을 맞춰간다
물리의 시선, 노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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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는 질긴 인연이 있다. 첫 만남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님께 나를 일러바친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 뒤로는 마주칠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남편을 다시 마주쳤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예상치 못하게 남편을 마주치자 의외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과거의 언짢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무려 고등학생이었다. 철없는 중학생 시절의 어리석은 짓 정도는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가끔 문자가 오갔고, 토요일 저녁 자습이 끝나면 만나서 동네 산책을 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때 우리는 썸을 타고 있던 셈이다. 남편이랑 이야기하는 게 마냥 재미있었다. 우리는 이과 감성이 통했다. 문과 친구들은 달을 보고 시조를 읊었는데, 남편과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의 모양을 보며 지구와 태양, 달의 위치를 유추했다. 또 남편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어느새 나의 대나무 숲이 되었다. 공부하기 싫다고 투덜대거나, 엄마에게 서운한 이야기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 조잘거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과 감성을 공유한다. 식당에 대기 줄이 있으면 식당의 테이블 수와 대기팀의 수를 기반으로 예상 대기 시간을 예측한다. 수학 공식을 유도하는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고, 불확실한 단위의 정의를 찾아보고 알려준다. 남편은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개그 코드가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에 이르렀다. 개그 코드가 맞아떨어질 때는 파도가 겹쳐 더 큰 파도가 부서지는 것처럼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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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파도가 치는 해안가 (2022년 1월 강릉 송정해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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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은 어떤 진동이 공간을 따라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파도는 물을 매개로 진동이 전달되는 파동의 한 형태다. 물이 흘러서 파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물은 진동을 전달하는 매개일 뿐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는 옆으로 이동하기보다는, 파도를 따라 제자리에서 위아래로 흔들린다. 이처럼 파동은 물질 자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동이나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파도가 물을 매개로 진동이 전달된다면, 지진은 진동이 전달되면서 땅이 흔들리는 현상이다. 파도나 지진을 포함해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나 눈으로 보는 빛도 파동이다. 우리가 감지하지는 못하더라도 휴대전화나 라디오에 사용되는 전파도 파동이고, 음식을 데워 먹을 때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도 파동을 사용한다. 이처럼 파동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파동은 혼자서도 퍼질 수 있지만, 둘 이상이 만나면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간섭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간섭이라는 단어는 그리 기분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물리학에서의 간섭은 두 개 이상의 파동이 한 지점에서 겹쳐 파동의 양상이 변하는 현상을 말하는 중립적인 단어이다. 파동은 합쳐져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서로 상쇄시킬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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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동의 간섭 (가) 보강간섭 (나) 상쇄간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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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파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진동의 방향이 일치하면 두 파동은 겹쳐 더 강한 파동이 된다. 이를 보강간섭이라 부른다.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찾고, 금성과 목성을 찾는 일은 혼자서도 물론 즐겁지만, 남편과 함께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는 느낌,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데에서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낀다.
취향이 맞는 친구들과도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지만, 유독 남편과 나누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서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못난 모습까지 아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기 때문일 테다. 많은 대화를 하고 오랜 시간 서로의 파동을 맞춰오면서 남편과는 강력한 보강간섭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남편과는 이러한 보강간섭이 더해지고 더해져, 서로가 서로에게 공명하듯 즐거움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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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때가 맞으면 보강간섭을 일으키며 더 큰 파도가 되지만, 반대로 때가 어긋나면 파도는 조용히 사라진다. 이를 상쇄 간섭이라 부른다. 진동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아, 극단적으로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라면 두 파동은 서로를 지워버리듯 사라진다. 노이즈 캔슬링은 이러한 상쇄간섭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반대되는 파동을 만들어서 소리를 상쇄한다. 덕분에 시끄러운 지하철에서 청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남편과 싸울 때는 각자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는 기분이다. 목소리는 커지지만, 나는 남편의 말이 들리지 않고, 남편도 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서로 자기 생각만 중요하고, 상대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 내 잘못은 축소하고 상대의 잘못만 들추고 과장한다. 도대체 둘이 죽이 맞아 재미가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나 의문이 들 정도다.
그렇게 진흙탕 싸움을 하다 보면 이 사람과 나는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까지 든다. 하지만 개그 코드가 맞아 낄낄대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래도 이만한 사람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조금은 물러서 방어막을 내리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잘못도 조금은 인정하게 되고, 상대방의 처지도 이해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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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서로 맞잡은 두 사람의 손 (출처: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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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정반대로 어긋나 있던 파동이 점차 맞아들어간다. 내 자존심은 내려놓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다 보면, 다시 어느새 보강간섭으로 돌아와 관계를 회복한다. 사이가 좋다가도 죽어라 싸우기를 반복하면서, 또 상쇄간섭에서 보강간섭으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관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여전히 자기 뜻만 생각하며 서운해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빠르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작은 불이 산 불로 번져 우리 관계를 모두 태워버리기 전에 불을 끄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때로는 파동이 어긋나더라도 결국 다시 맞물려 보강간섭을 이루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만큼 앞으로 더 오랫동안, 서로 어긋나더라도 다시 함께 진동하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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