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쓰기 모임은 1박 2일 모임입니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할 때면, 하는 말이다. 보통 늦은 저녁 시간하는 글쓰기 모임은 틀림없이 12시를 넘기고, 때론 새벽 1시를 넘기면서, 네다섯시간 정도 진행된다. 사실, 이조차도 필사적으로 시간을 줄인 것에 가깝다. 10명의 모임원이 있다고 했을 때, 10명의 글을 모두 보게 되면, 다음 날 아침해가 뜨는 걸 봐야 한다. 그래서 5명씩 나눠서 글을 보는 형태로 모임 일정을 조정한 끝에 간신히 '잠들기 전'에 끝내는 모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만큼은 시간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하는 많은 일들 중에서 이처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일이 거의 드물 정도다. 시간을 아끼는 대신, 눈앞에 놓인 글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하고자 한다. 모임원들에게 도움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마디라도 더 전하려고 애쓴다. 사실, 이 애씀 혹은 집착은 나도 스스로 명확히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아내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글쓰기 모임 때마다,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 사람들도 자고 싶겠다. 사람들이 싫어한다. 내일 피곤하니 적당히 해라." 같은 이야기를 매번 한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글쓰기 모임 만큼은 '적당히'가 되지 않는다. 한 번은 글쓰기 모임원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몇 명을 초과해서 받았는데, 도무지 끝낼 수가 없어서 보충 모임을 계속 열어 전체적으로 두 배 가까운 날 동안 모임을 하게 된 적도 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시간을 적당히 아껴서 대충 봐주는 게 도무지 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게 되는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단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과 이렇게 인연이 닿았다면, 그가 좋은 글을 쓰는 데 실제로 의미 있는 시간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만큼 글쓰기 간절했던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세상의 여러 글쓰기 수업을 다니며 실망도 많이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그런 실망으로 글쓰기에 멀어진다면, 어쩐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또 하나는 일종의 자만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쓰기에 관하여 분명히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것도 영향이 있는 듯하다. 물론, 세상에는 훌륭한 작가나 글쓰기 강사 등이 있어서, 나보다 더 글쓰기 지도에 뛰어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역시 글쓰기에 대한 나만의 관점,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이든,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역시 꼭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잠이 오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야,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글쓰기 모임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서, 정확히 말하면 나의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어떤 순간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아마도 내가 보고 있는 이 글의 글쓴이와 다시 글쓰기 모임에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나는 글쓰기 모임이 인원 미달되지 않는 한, 기존 모임원을 다시 받지 않는데, 아직까지는 한 번도 미달된 적이 없다. 다시 받지 않는 이유는 이미 한 번의 모임으로 내가 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전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만날 일 없는 이 글쓰기의 시간에, 나는 역시 내 모든 마음과 최선을 다하여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실망하지 않도록, 그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역시 그러다 보면, 모임은 꼭 1박2일 모임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제 만난 모임원들은 12시가 넘어 오늘이 되어 헤어진다. 그 시간은 내가 삶에서 가장 애쓰는 시간 가운데 하나이자, 모임에 참여한 그 누군가에게도 소중하리라 믿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다. 타인이 글로 자아낸 가장 깊은 마음들을, 역시 가장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이 잠시의 인연과 우연에 내 삶의 정수 한 모금을 담아내는 일이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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