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말이 많지 않은 속 깊은 친구가 된다.
2년 전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에서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터너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다. 책에서나 보던 작품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고대 로마의 폐허 위로 붉은 석양이 물들어 있었다.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 붉은빛과 어둠이 섞여 있는 작품이었는데 나는 로마의 폐허를 거닐 듯 빠져들었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크게 아픈 사람임을 까맣게 잊었다.
며칠 후, 산타모니카 베르가못 스테이션의 작은 갤러리에서 바스키아의 판화를 보았다. <Academic Study of the Male Figure> 라는 작품이었는데 흰 종이 위에 거칠게 그려진 해부학적 드로잉 속에는 뼈와 근육, 이름 모를 장기들이 낙서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신기하게 질서와 정직함이 보였다. 해석하기는 복잡하지만 바스키아의 작품이 주는 순진함에 사로잡혀 한참을 보고 있다가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림을 사버렸다.
명품 핸드백 하나 사지 않는 내가 바스키아의 판화를 사다니! 이것은 뉴스에 날만한 일이었다. 구매서류에 서명을 하는데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꽤 큰 결심이었다. 암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느라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라 통장 잔고도 불안했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꼭 사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아찔하지만 인생에서 세 번째 쯤 잘 한 일이었고 그림은 여전히 거실에 걸려있다. 나는 이제 바스키아 작품을 소유한 콜렉터이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연히 들른 조그만 갤러리에서 그림 한 점이 마음을 끌었다. 밤에 눈이 내린 정경을 동양화로 그린 작품이었는데 손바닥만 한 그림을 보자마자 사버렸다. 바스키아의 그림에 비하면 충분히 '살만'했고 덕분에 계절과 관계없이 날마다 눈이 온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예술은 말이 많지 않은 친구처럼 그렇게 내게 한 작품씩 다가왔다.
한창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 딸이 아이패드를 건넸다. “엄마, 이걸로 그림을 그려봐.”라며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앱을 깔아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포토샵은 고사하고 컴퓨터 사용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었다. 최고급 사양의 아이패드를 선물 받고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밤마다 넷플릭스와 왓챠만 보았다.
그러던 중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딸 친구가 프로크리에이트 그림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냉큼 등록하고 아주아주 기본적인 것들: 스크린 크기 맞추는 법, 레이어 사용법, 색상 고르는 법부터 하나씩 배웠다. 가장 어려운 점은 레이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었는데 순서가 한 번 엉키면 그림을 완성하기가 아주 골치가 아팠다. 그러다가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목요일마다 모여 함께 아이패드 그림 모임을 시작했고 <계란찜>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작은 그림을 하나씩 그리고 프린트로 뽑아서 벽에 붙이고 서로의 그림을 칭찬하며 지금도 <계란찜>은 계속되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엄청난 집중력이 생겼다. 일할 때보다 그림에 더 집중하면서 ‘암 환자’라는 이름 뒤로 감춰졌던 내가 그림 위에서 되살아났다. 딱히 대단한 작품도 아니고 작은 엽서 같은 일러스트를 그렸는데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고 뿌듯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카드를 만들어 주거나 친구의 음악 앨범 커버를 주문받아 그렸다. 평생 환자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이라는 세상을 만나게 되었고 친구들의 진심 어린 칭찬을 들으며 다시 세상의 일원이 될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예술의 힘은 강력했다.
이것은 단지 나만의 우연한 느낌이 아니었다. 예일 암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미술치료는 암 환자의 불안, 통증, 피로를 현저히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세션만으로도 환자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았고, 자기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삶에 대한 통제감을 느꼈다고 한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에서도 미술, 음악, 무용 등의 예술 활동이 수면의 질을 높이고 치료 순응도를 향상했다는 보고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지키는 도구였다. 내가 그 증거이다.
철학자 아서 프랭크는 말했다. “질병은 인간의 이야기를 빼앗지만, 예술은 그 이야기를 되찾게 한다.” 그림을 그리며 내 이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서툴고 더딘 선이었지만, 그 안에 내 하루가, 내 감정이 살아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손을 움직인다. 손이 먼저 기억하고 손이 먼저 말해주는 것들이 있다. 예술은 그런 것들을 위한 언어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삶이 완전히 회복되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 필요해서다. 예술이 나를 구했다고 거창하게 얘기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암이라는 절망 앞에서 자칫 무너질 뻔했던 나의 품위는 지켜주었다. 고맙다. 예술!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코너명 소개: 슬기로운 항암 생활:
암에 걸렸다. 대장암 3기였다. 명랑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완치까지 1년 반이 남았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출근도 한다. 아직, 절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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