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음을 있게 한 당신들께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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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2.93kg의 건강한 남자 아기를 출산했다. 그날 이후, 아기를 돌보고 내 몸을 보살피는 일 하나하나 끊임없는 첫 경험이 줄을 잇는다. 우선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병원 입원을 해봤다. 당연히 환자복도, 병원 밥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작은 아기를 안는 일도, 젖을 물리는 일도 처음이고, 온몸의 뼈가 뒤흔들린 것 같은 느낌도 모두 처음이다. 그렇게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이 수많은 처음 중에는, 처음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일도 있다.
출산 전, 산후조리원에 갈 계획이 없었던 나는 조심스레 친정엄마에게 산후조리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사실 아이를 갖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절대 엄마에게 돌봄 노동을 부탁하지 않겠노라 큰소리쳤었다. 젊음을 다 바쳐 자식 셋을 키워놓고 이제야 당신의 시간을 누리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한 일 같아서였다. 한편으로는 내 자식 키우는 일쯤은 나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호기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임신을 하고 출산이 다가올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짝꿍은 일의 특성상 육아휴직을 쓸 수 없고 토요일까지 출근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나 혼자서 사람 하나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너무 겁이 났다. 처음 하는 육아에 대한 두려움과 내 한 몸 살고자 하는 이기심 앞에서, 나름 거창하던 나의 대의는 뭣 모르던 시절의 알량한 치기가 되어버렸다.
딱 한 달만 도와주십사 조심스레 SOS를 쳤을 때, 엄마는 너무나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라고도 말했다. 내가 태어나던 때, 내 기억에 없는 나의 외할머니는 파킨슨병으로 병상에 누워 계셨다. 이모도 없고, 자매도 없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만 있던 엄마에게는 딱히 산후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결국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때 우리 엄마 나이 스물일곱. 언제 겪어도 비통한 이별 앞에서 나 홀로 육아라는 막막함까지 마주했을 젊은 그는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었을까. 그때 느꼈던 서러움 때문에, 엄마는 당신 딸의 산후조리를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내가 임신도 하기 전부터 해왔다고 했다. 엄마가 도와주는 산후조리는 외할머니가 나에게 주는 출산 선물인 셈이었다.
엄마에게 부탁하면서도 사실 걱정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서 그 후로 쭉 다른 도시에서, 또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을 했다. 그렇다 보니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나의 시간과 공간을 꽤 오랜 기간 엄마와 공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통제형 인간인 나보다도 더 통제형인 우리 엄마는 엄하고 잔소리도 많은 편이었다. 비록 세월이 흘러 많이 유해지기는 했고 또 그래봤자 한 달이지만, 24시간을 한집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니, 심지어 육아를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또 얼마나 사사건건 부딪칠까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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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달리 엄마와 함께하는 한 달은 거의 사라지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갓난쟁이를 먹이고 재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정신없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어서, 우리 셋은 하루하루 생존하기에도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나는 나대로 처음이고 엄마는 엄마대로 수십 년만의 육아여서, 함께 고군분투하며 서로 의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엄마의 잔소리 같은 것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대신에 생각지도 못했던 옛날이야기가 육아 틈틈이 쉬는 시간을 채워주었다. 주로 첫 아이인 나를 키우던 엄마와 아빠의 젊은 시절,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아기 시절의 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생아 시절 밤마다 안 자고 엄청나게 울던 나는 꼭 자동차만 타면 잘 잤는데, 그렇게 동네를 몇 바퀴씩 돌다 집에 들어오면 여지없이 다시 깨서 울었다고 했다. 하루는 내가 너무 심하게 울었던 나머지, 견디다 못한 아빠가 이불장에다 나를 잠시 넣어 두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또 비위가 약한 아빠는 나랑 잘 놀다가도 똥 기저귀를 갈 때만 되면 꼭 엄마에게 나를 패스했다고 했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도 아기에게는 뭐든 다 해주고 싶었던 근검절약 아빠는 어느 날 꽤 비싼 유아차를 사 왔고, 엄마는 집 앞 언덕길에서 행여 유아차를 놓칠세라 힘껏 밀고 당기며 조심조심 나를 태우고 다녔다고 했다.
조금 더 자란 나는 호기심 대마왕이자 눈물의 여왕이었단다. 아빠의 출근 시간, 가방을 둘러매고 나도 나가겠다고 하는 통에 매일 아침 우리는 동네 시장 나들이를 했다고 한다. 엄마가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며 지켜보면 혼자서 끊임없이 쫑알대면서 골목골목을 돌아다녔고, 우리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다섯 살 터울 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나도 기억했다. 분만실 밖에서 졸고 있는 아빠 곁에서 혼자 엄마의 신음을 들으며 불안했던 나는, 출산하고 나오는 엄마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면서 ‘아빠는 계속 잠만 잤어!’라는 원망 섞인 고자질을 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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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는 처음 듣는 내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옛 사진을 보며 상상만 하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조금 더 생생하게 그려졌고, 그래서 더 궁금하고 그리워졌다. 비록 각색되고 희미해졌을지 몰라도 엄마 머릿속에는 30년도 더 된 장면이 아직도 한가득 남아있었다. 아마도 손주의 일상을 지켜보다 보니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것들이 하나둘 되살아나는 모양이었다. 그 신기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내가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매 순간이 그저 너무 소중하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아쉬워서 시간을 붙잡고 싶다. 최선을 다해 더 온 마음껏 사랑해 주고 싶다. 이 작은 생명체와 함께하는 젊은 나의 시절이 벌써 그립다. 그래서 눈으로, 또 마음속에 꾹 눌러 담아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너무 엄해서 무서웠던 엄마, 자식들에게는 그렇게 표현 못하면서 길고양이에게는 다정한 말과 미소를 건네는 아빠가 실은 얼마나 나를 애지중지하며 귀하게 키웠을지를 말이다.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중한 존재였으며, 또 푸르른 그들의 젊음을 어떻게 더욱 빛나게 해주는 아이였을지 말이다.
내 존재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무언가를 성취해서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사실 아기를 낳고 키우느라 잠시 일을 쉬고 있는 기간이 슬슬 길어지면서, 문득문득 도태되는 것 같은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사람을 하나 키워내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돈을 버는 종류의 일을 하지 않는 나는 어딘지 모르게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너는 지금 이대로 아주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매일 밤 잠자기 전 나의 아기에게 속삭이면서, 왜 나에게는 그 명제가 유효하지 않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생의 처음에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무조건적인 인정과 사랑을 받는, 누군가의 기쁨이자 전부였다는데 말이다.
나와 그들 모두 처음이던 때, 아마도 많은 것이 서툴고 서로 힘들었겠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고 애틋하게 그려지는 시절이 거기 있었다. 우리 엄마와의 한 달은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가 주었고, 지금 내 아이의 처음을 만들어가는 엄마의 마음가짐이 되어 나의 시작을 되짚어 보게 해주었다. 나는 내 아들이 사랑 가득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귀하게 여기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바람을 오래도록 잊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고, 이 바람을 나 스스로에게도 매일 같이 들려주는 어른이고 싶다. 무엇보다 나의 처음을 있게 해준 그들에게도 꼭 전하고 싶다. 나를 한없이 사랑해 준 당신들의 존재 그 자체로 참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이다. 무뚝뚝한 경상도 딸에게는 결코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말이지만, 너무 늦지 않게 꼭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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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하고 여행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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