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물리의 시선, 노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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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다해 엄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시선이 달라졌다고 하며, ‘다해 엄마’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에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뿌듯함은 부담으로 바뀌었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엄마에게 의논하기보다는 혼자 끙끙 앓았다. 엄마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길로 가면 죄책감이 들었고, 더 이상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라는, 자격 미달인 기분마저 들었다.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타이틀은 어느덧 나를 옥죄고 있었다.
‘아빠랑 이혼하고 싶어도 너희 때문에 살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없었으면 엄마가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내가 엄마에게 못 할 짓을 한 것 같았다.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만큼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에게서 몸도 마음도 멀어지며 엄마와 나를 분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가 이해되지 않고 서운할 뿐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부모님을 뵈러 갔다. 엄마는 남편에게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불편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20대 중반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내게 틈만 나면 교회에 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남편에게까지 그렇다니, 엄마는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더 나아가 남편을 빌미로 내게도 교회에 나오라고 할 것이 눈에 선했다. 내가 싫다고 해도 엄마의 뜻을 강요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자꾸 나를 가까이에 두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나는 반발심이 든다. 엄마가 생각하는 적당한 거리가 나는 너무 가깝다고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거리는 엄마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듯하다. 엄마와 나는 적당한 거리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갈등이 생겨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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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 이 세상은 다양한 형태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기본 구성단위인 원자는, 그 자체로는 불안정하다. 수소, 헬륨, 리튬 등 주기율표에 나열된 원소들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결합하여 안정적인 상태를 이룬다.
원자는 양전하(+)를 띄는 원자핵과 음전하(-)를 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수소의 원자핵은 +1의 전하량을 가지고, 헬륨의 원자핵은 +2, 리튬의 원자핵은 +3의 전하량을 가진다. 전자는 -1의 전하량을 띄는데, 수소 원소에는 전자가 한 개 있어 +1인 원자핵과 전하량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헬륨도, 리튬도, 다른 원소들도 마찬가지로 원자핵의 전하량만큼 전자를 가지고 있다.
다만 전자는 짝수로 존재할 때 안정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전자가 두 개인 헬륨은 그 자체로도 안정적이지만, 전자가 한 개인 수소와 세 개인 리튬은 다른 원소와 결합해 전자를 짝수로 맞추어야 한다. 수소 원자는 또 다른 수소 원자와 만나 서로의 전자를 공유하며 결합한다. 이렇게 형성된 수소 분자에서 양전하는 +2, 음전하는 -2이기 때문에 전하량은 균형을 이루고, 전자도 짝수를 이루어 안정적이다. 이렇게 서로의 전자를 공유하여 결합하는 경우를 공유결합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공동명의로 적금을 든다든지, 함께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경우를 공유결합의 형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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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수소 분자의 공유결합. 두 수소 원자가 서로의 전자를 공유하여 결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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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원자가 결합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아무리 원자 하나로는 불안정하다고 해도 다른 수소 원자가 너무 멀리 있으면 결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반대로 너무 가까워지면 반발력이 생겨난다. 양전하(+)와 음전하(-)는 서로 끌어당기지만, 양전하(+)와 양전하(+)는 서로 밀어낸다. 수소 원자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있을 때는 공유되는 전자(-)들과 수소 원자핵(+)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더 우세하다. 하지만 수소 원자끼리 너무 가까워지면, 원자핵(+)끼리도 가까워지기 때문에 밀어내는 힘이 세지게 된다. 그렇게 공유결합에서 두 수소 원자는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거리를 유지한다.
사람 관계도 너무 가까우면 힘들다. 나는 남편을 무척 좋아하지만 24시간 매일 붙어 있을 수는 없다. 평소에는 낮에는 서로 떨어져 있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니 서로 반갑다. 하지만 여행 가서 24시간 내내 붙어있다 보면, 조금은 진이 빠진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숙소 침대에 드러누워 각자 핸드폰을 보거나, 카페에 가서 각자 아이패드로 이것저것 한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붙어 다닐 힘이 생긴다. 가장 가깝고 친밀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부 사이도 이런데, 다른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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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관계도 물질세계처럼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물질세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지 의견이 나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감정과 기억, 맥락이 뒤얽혀 서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거리가 달라진다. 그렇지만 물질세계라고 해서 원소들이 언제나 서로 동일한 조건으로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수소는 공유 전자가 두 수소 원자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하지만 물(H2O)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물도 수소 분자와 마찬가지로 공유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유 전자들이 원소들의 정중앙에 위치하지는 않는다. 수소의 원자핵은 +1의 전하량을 띄지만, 산소 원자핵은 +8의 전하량을 띈다. 물 분자에서 산소와 수소는 분명 전자들을 공유하지만, 산소가 수소보다 조금 더 강하게 전자들을 끌어당긴다. 마치 회사에서 주식을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물 분자 전체로는 전하량이 0이지만, 산소가 전자들을 더 가깝게 두기 때문에 산소는 부분적으로 음전하(-)를 띄고, 수소는 부분적으로 양전하(+)를 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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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물 분자의 공유결합.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한 산소 원자가 공유 전자를 더 가까이에 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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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관계도 꼭 수소 분자처럼 완전히 대칭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 분자처럼, 한쪽이 전자를 조금 더 끌어당기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안정된 구조가 될 수 있다. 엄마는 나보다 이 관계를 더 가까이 느끼고, 나는 그보다는 조금 멀리 느낄 수도 있다. 그 차이가 꼭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엄마도 이 거리감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가 이 새로운 형태의 결합을 받아들일 시간과 여유를 드리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 몫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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