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 때엔 남편이 늘 함께했지만, 두 번째 임신에는 산부인과에 남편이 동행하기 어려웠다. 내가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 날이면, 남편은 첫째 뉴뉴의 등하원을 담당했다. 뉴뉴는 점심을 먹고 하원하기 때문에 밀린 치과, 산부인과 등 내가 병원 투어를 하다 보면 어느새 뉴뉴의 하원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만큼이나 산부인과 선생님도 바쁘기 때문에 두 달 전에 예약해둬도 어린이집 등원 시간과 겹치는 오전 9시 검진밖에 잡을 수 없었다. 종종 심각한 저출산이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실감이 안 날 때도 많다. 뉴뉴의 어린이집 1세 반 원아 모집에 340명이 몰렸을 때도 그랬다. 2023년생 아이만 340명이 신청했던 셈이다.
성별을 알 수 있는 16주차 검진일.
이날만큼은 남편은 휴가를 빼고, 나 역시도 산부인과 검진을 뉴뉴의 등원 후로 잡아 남편과 함께하기로 했다. 둘 다 산부인과 검진과는 무관한 이야기를 차 안에서 조잘거렸다. 심정이 어떠냐고 묻고 싶기도 했지만, 하지 않았다. 남편은 첫째 때부터 본인 닮은 아들보다 나 닮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늘 말 끝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모순되는 문장을 덧붙였다. 뱃속 둘째 아이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남편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둘째의 태몽은 남편의 바람대로 딸이라는 해몽이 많은 편이었다. 황금 귀걸이와 분홍 자개 조개. 여성용 액세서리와 ‘분홍’ 조개라니, 태몽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딸을 낳을 꿈이었다. 태몽을 꿔준 엄마는 산부인과 검진 전날까지 “고 녀석 딸일 거야”하고 설레발을 쳤다. 첫째 때보다 입덧도 심하고, 온몸이 예민한 게 아무래도 공주님 같다는 거였다.
남편은 첫째 뉴뉴의 물건을 살 때부터 동생에게 물려줘야 한다며 분홍색 아기용 콧물 흡입기와 샛노란 아기방 커튼을 사두었던 터였다. 이쯤 되니 나도 슬슬 딸이려나 하고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첫째 아들 뉴뉴를 보면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은 정말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매일같이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 딸 골고루 낳아 길러보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처럼 예민한 딸래미보다 남편처럼 무던하고 둥글둥글한 남자 아이들이 키울 때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복합적인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둘째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주변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딸 임신을 응원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나도 “그럼 좋겠네요.”라고 응수하고 있었다. 둘째가 아들이면 안 될 일이 벌어지는 걸까. 둘째가 아들이면 나는 과연 속상할까? 아들도 정말 너무너무 귀여운 걸 아마 세상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겪은 아기는 아직 성별 구분 없이 무성(無性)의 존재에 가까웠기에 실상 아들, 딸 구분이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초음파실
산부인과에 도착해 말없이 검진을 기다리고, 초음파를 보던 선생님이 무던하게 “아들이네요”라는 말을 던졌을 때 나와 남편은 서로의 눈을 보며 동시에 푸읍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약간 무방비 상태에서 맞는 잽잽 펀치 같기도 했다. 초음파실을 나온 남편은 태명 ‘새싹이’를 조금 더 부드러운 어감인 ‘새순이’라고 지었어야 한다며 통탄하며, 검진 후 점심을 먹으며 이른 셋째를 계획했지만, 나는 아쉽긴 해도 괜찮았다.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출산의 순간이 걱정되기는 했다. 3.78kg에 머리둘레 상위 1%, 24시간의 진통 끝에 태어난 첫째 뉴뉴보다 어쩌면 새싹이는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졌던 것이다.
둘째 출산은 더 수월하다길래, 딸이면 뼈가 더 말랑말랑해서 낳기도 쉽다던 조산사 선생님의 말이 귀에 쟁쟁한데, 둘째가 더 큰 경우에 대해서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주변의 아들 둘 엄마들이 체력을 기르기 위해 크로스핏을 하고, 역기를 들기 시작했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도, 아쉬탕가 요가 정도로 몸을 단련할 게 아니라 크로스핏을 시작하거나 무게를 좀 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딸의 손을 잡고 우아하게 카페에 가서 동화책을 읽고, 인형 놀이나 토끼 장난감 세트를 고르며 옥신각신하는 그런 환상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다. 산에서 우당탕탕 곤충 채집을 하고, 주차장에서 빠방이 홀릭인 아기 뒤를 뛰어 쫓아 다니는 그런 엄마가 되는 것이다.
아직 둘째 새싹이가 어떤 아이일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첫째 뉴뉴하고는 다르게 무모함을 즐기는 아이일수도 있고, 뉴뉴만큼이나 조심스러운 아이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성별이야 어떻든,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가 될지가 더 궁금하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과 마음은 아마도 부모의 품 안에서 형성되어 확장되어나가는 것이겠지 싶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새싹이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랑도 배려도 체력에서 나오는 만큼, 내가 가진 사랑을 반으로 쪼개 아이 둘에게 줄 생각이 아니라면 서둘러 체력이나 두 배로 길러야겠다. 아직은 아들 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기는 하지만, 아이 두 명의 안전한 울타리이자 포근하고 든든한 세계인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확실하다. 뉴뉴만큼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또 하나의 세계가 다시 한 번 열린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기도 한다.
정말 괜찮다. 우리 집에 공주는 나 한 명이면 된다. 남편과 아들 둘은 백설 엄마의 세 난쟁이 혹은 백마 탄 왕자님들이 되어 줄 것이다. 공주님처럼 우아하고 여유로운 육아를 위해 당장 운동을 알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