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세요?” 이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곤란할 때가 있다. 특히 내 전공과 일하는 기관에 대해 알게 되면 궁금증이 더해진다. “국어학과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이 국제 금융기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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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조차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하는 일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라는 한국에선 다소 낯선 명칭으로 불린다.
내가 하는 일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레깅스를 입고 호텔 연회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고, ‘행사장 안에서 하루 만 보 이상을 걷는 사람’이다.
행사가 시작될 땐 풀정장을 입고 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러, 필요한 물품을 잔뜩 들고 갈 땐 편한 복장이 필요하다. 행사가 시작되면 자리 지키는 것보다 뛰어다니는 일이 더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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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서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차질 없이 운영되도록 ‘판을 잘 깔아주는 일’이 행사 진행자로서의 내 역할이다.
장소를 섭외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참석자의 여정을 조율하며, 행사 당일에는 크고 작은 돌발상황을 처리하고, 이후에는 각종 비용 정산을 챙긴다. 가용 예산을 확인하고 다음 행사 진행을 계획하는 것은 행사장 밖에서의 일이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 영어로는 ‘무대 뒤(backstage) 스태프’라 부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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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공기관에서도, 미국의 대학에서도, 지금 내가 일하는 국제기구에서도 행사 진행 업무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사를 설계하고 방향을 잡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늘 ‘그 사이’였다.
생각과 실행, 계획과 현실, 요청과 가능 사이. 언제나 그 사이 어디쯤 있는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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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행사 전문가’로 성장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필리핀 관광청에서 봉사단원으로 일할 때, 크고 작은 행사들을 돕다 보니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귀국 후 첫 직장으로 한국의 공공기관에 입사했는데, 행사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국제교류팀에 배치되었다.
처음으로 맡았던 행사가 기억난다. 베트남에서 온 직업학교 교장단을 인솔해 국내 교육기관을 시찰하느라 서울 토박이인 내가 가본 적 없는 산업 현장을 섭외하고, 그들과 함께 지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정책 책임자들이 찬여하는 포럼도, 수백 개 업체를 초대한 해외 취업 박람회도 치렀다. 국제기능올림픽 현장에서는 대한민국 명장을 초대해 한국 전통기능 홍보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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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쌓이면서 점점 더 많은 행사들을 경험했고,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게 됐다.
행사진행자로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조율’이다.
섭외된 장소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주최 기관이 의도하는 행사 취지 사이의 간극, 그 사이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핵심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잡음 없이’ 행사를 치러내는 것이 목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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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어떤 사람과도 빠르게 팀워크를 이뤄야 한다. 처음 만나는 외국 기관의 공동 주관자, 현지 오디오·비디오 테크니션, 호텔 이벤트 매니저, 외부 사진기사, 때로는 건물 경비 인력까지. 누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를 넘어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늘 발생하는 의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두 번, 세 번 재차 확인하고, 현장에 뛰어가 진행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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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국제기구에 와서 겪게 되는 행사 차질의 단골 주제는 ‘비자 문제’다.
특정 국가 참가자들은 해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여권 파워가 강한 대한민국 국민은 잘 겪지 않는 일이지만, 초청 레터를 보내고 모든 절차를 다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출발 직전까지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참가를 취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엔 비자 발급을 위해 우편으로 보낸 여권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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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모든 준비가 다 말끔하게 완료되었다고 생각한 어느 주말, 당혹스러운 이메일을 받았다. MS 시스템 오류로 공항 수속 시스템이 마비되어 다수의 참가자가 공항에서 체크인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 하얘졌던 기억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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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도 변수에서 자유롭지 않다. 워싱턴에서 한 시간 거리인 보스턴의 한 대학 교수는 오후 강연이었기에 아침 비행기로 오겠다고 했지만, 그날 아침 비행기가 결항되었다. 급하게 화상 연결로 대체하긴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초긴장이었다. 잘 도착한 강연자가 비슷한 이름의 다른 건물에 가 있는 경우는, 이제는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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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기획자도, 결정권자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실무자라고나 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일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요구와 제약 사이, 기대와 현실 사이, 그런 애매한 틈에 서 있는 느낌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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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관 내에서 부서를 옮겼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라는 역할은 비슷하지만, 참여자의 프로필이 중앙은행 관료에서 기후변화 프로젝트 담당자들로, 교실형 배치에서 그룹 토론 위주로, 실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실행 중인 프로젝트 사이트를 방문하는 현장 중심의 구성으로 바뀌었다.
행사의 목적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준비하는 방식도,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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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바뀌어도 본질은 같다. 낯선 상황에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예상 밖의 변수에도 담담하게 대응하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움직여 ‘문제가 생기지 않게 만드는 일’을 마치는 게 내가 하고 있고, 해야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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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에도 분명하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고, 나는 그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애매한 사이를 오늘도 오가며 일하고 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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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브라질 북동쪽의 한 작은 해안 도시에 있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일주일째 머물고 있지만, 아직 모래사장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내일 체크아웃 하기 전, 잠시라도 이 곳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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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
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https://brunch.co.kr/@nowhere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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