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통역?” 잠시만.
잠시 귀를 의심했다. 통역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으니. 통역?!이라는 단어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네..."
하고 대답을 한뒤, 그 분에게 가서 업무에 필요한 일이야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슷한 일이 또 발생했다.
”우리 통역이에요. 인사 나누시고 업무 의뢰하시면 됩니다.”
그 뒤로 나는 1년 내내 ‘통역’으로 불렸다. 이름도, 직함도 아니었다. 그저 역이었다.
‘님’이라는 글자 하나의 위력을 속이 뒤집어지는 듯한 불편한 감정으로 그렇게 배웠다.
통번역사. 통역사. 영문에디터. 내가 일했던 회사에서의 나의 직함이었다. 직원들이 나를 부르는 방식도 이에 따라 다양했다. 통역사님, 번역사님, 에디터님 등등. 하지만 통역! 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호칭하는 분에게 어떠한 이의 사항이나, 개선요청등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계약연장 여부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가장 막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주말에 데이트는 안 하냐. 남자친구는 안 만나냐. 자신의 친구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데 소개팅을 할 생각이 혹시 있냐.등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부류. 해외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회사에도 이런 사람은 있기 마련인 거였다. 사고의 수준이 언어의 수준이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어디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 오늘의 주제인 한국사회에서의 호칭에 대해 생각하다 고민하다가 숨어있던 묵음 감정과 묵은 기억이 같이 떠올랐다.
"통역사님", "통역가님"이라고 까지 불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통역님!" ‘님’ 하나만 붙여주길 바랐다. ‘통역’은 내가 하는 일이지 사람을 칭하는 단어는 아니다.
인하우스 통역직으로 여러 회사를 치면서, 프리랜서로 다양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불리우긴 처음이었다.
그가 같은 소속의 다른 동료, 아래 직급의 직원들에게는 그러지 않는 그의 모습에 인간적인 모멸감이 올라왔다. 나는 계약직 직원이었다. 그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방법 중 하나였던것 같다. (나의 오해일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의 나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기분이었고, 식사할 시간조차 여유롭지 않아 김밥을 먹고, 스터디 파트너와의 약속을 위해 지 허철을 기다리면서 성경책만 한 통번역 사전을들고 외웠던, 나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1년내내 통역이라 불렸고, 약속한 계약 기간을 채우고, 연장하지 않고 그만뒀다.
통역 전 중요한 사전 준비? 직책과 이름의 완벽한 매칭!
통역 전에 사전 준비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참여 인사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을 때 직책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를 역임하는 담당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매칭하는 것이다.
대표인지, 부대표인지, 이사인지 등등. 실수로라도 이사님을 부장님으로 소개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회사소속으로 일했다면 이사님에게 미운털이 박힐 것이고, 프리랜서 현장이라면 다시 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직위를 잘못 불리는 개인의 기분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와 해외 측 회의 참석자들이 직접적으로 업무를 해야 할 사람, 즉, 임원급은 임원급을, 실무자급은 실무자급을 파악해야 한다. 물론 그 외의 관계도 파악해야 실수 없이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직책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면 업무상 상대인, 카운터 파트(Counterpart)를 찾는데 오류를 심어버리는 것이다.
통번역 일을 하기 전 나는 공기업에서 직원으로 일을 했다. 70여 명의 동기들과 두 주간의 숙박 교육기간 때부터 호칭의 중요성을 파악했고, 적절한 사용을 배웠다. 그중 무엇보다 뇌리에 남은 것이 있었다.
담당 일을 처리하면 막내 주임은, 과장, 차장, 부장, 그리고 건의 중요도에 따라 지사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한다. 전자결재와 별도로 보고가 필요했다.
내가 일하는 곳의 최고 장인 지사장님께 보고할 때, 간혹 하위 결재라인의 의견을 첨언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의 상사일지라도 "‘김 부장’ 의견은 이러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부장님'을 '부장'으로 불러본 적이 없어서 무척이나 어색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 기분이 아니다. ‘지사장님’의 입장에서 '김 부장'은 님을 붙일 직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호칭은 때로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자 노력의 결과
인사철이 되면 수군수군 사무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누군가는 입사동기 중 가장 먼저 승진이 되었고, 누군가는 누락이 되었다는 등등의 이야기들이 대나무숲에서처럼 퍼져나간다. 승진이 결정된 사람은 회사생활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며 기쁨을 만끽한다. 승진자는 승진턱을 쏘고, 직원들은 축하의 인사들을 건넨다. 정식 승진일이 남아있지만 직원들은 벌써 부장님으로 불러드린다. 부장님은 멋쩍어하면서도 만연한 미소를 숨기지 않는다.
예전의 일이니 지금은 달라졌을 수 있다. 호칭을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은 통번역직으로 다양한 회사에서 일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
|
|
|
당시에는 '호칭이 대체 뭐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업무에만 신경 쓰기도 벅찬데 뭐라 부르는 게 뭐가 중요한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카카오 등에서 직원들 사이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호칭 파괴를 시도했다. 영어이름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영어이름뒤에 선배, 매니저, 님과 같은 호칭을 따로 부른다는 당시의 뉴스를 읽고는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직급 없이 이름뒤에 ‘님’만 붙이는 회사도 생겼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차장님!', '부장님!' 그렇게 상사를 부르는 순간 다음의 모든 말들 이 조심스럽고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평호칭이 파격적이라는 뉴스들이 인터넷을 도배했는데, 그러한 보도들 자체가 우리 나가가 얼마나 호칭에 연연하는지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뀐 호칭을 되돌린 기업들도 있었다. 이유는 기존의 호칭의 쓰는 회사가 대부분인데 외부 업체와 업무 할 때 혼선이 생기는 것이다. 카운터파트를 빠르게 찾지 어려워지고, 각각의 직책이 갖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적은 인구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서 발전하고 구동되는 사회에서는 일부만 변화해서는 효율화가 힘든 것이다.
언니, 누나, 여동생, 오빠, 남동생. ‘오빠’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영어에서는 Brother, Sister의 개념이다. 심지어 호칭도 아니다. 형제, 자매 간에도 이름을 부른다. Bro(ther), Sis(ter)! 는 친근한 사이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법적 구속적 관계를 맺으면 호칭은 눈덩이가 불듯 늘어난다. 올케, 동서, 처남, 처남댁, 아주버님. 도련님…. 한국인들도 헛갈릴 정도로 많다. 한국은 참으로 호칭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인간과계를 중요시한다. 나를 이해할 때도 타인을 이해할 때도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소개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 중의 하나가 있다. "무슨 일 하는 사람이야?"
뭐 는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 속해있는 집단, 그 집단 내에서의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속한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규정하고 파악하는 것이 익숙하다. 이에 전통적 유고사상이 더해진다. 각 개인의 위치를 드러낼 수 있는 예절과 어법이 발달해 왔다.
동과서라는 책에 따르면 동양인들은 사회조직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개인은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개인이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속한 조직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수많은 호칭법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역할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는 소개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도 이러한 호칭과 경어, 예절문화이다.
동과서라는 책에 따르면 동양인들은 사회조직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개인은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개인이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속한 조직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수많은 호칭법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역할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는 소개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러한 연구와 해석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한국어를 빨리 배우고 싶다면,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싶다면 철학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면 그 속도가 빨라지고 쉬워질 것이다
|
|
|
|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나의 완벽한 비서’이다. 한국회사의 호칭사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이다. 물론 이 드라마 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님이었던 강지윤은 "우리 이제 퇴근할까요?"라고 말하며 비서인 실장이라 부르던 그에게 "은호 씨"라고 부른다. 게다가 경어를 집어던지고는 "배고파..."라면 사적인 관계 속으로 그를 확 잡아당긴다. 한국사람이라면 설렐 만한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그 딱딱한 관계가 말 한마디로 변해버리는 그 짜릿함을, 영어로는 맛깔나게 표현할 수 없다. 호칭은 사회적 경직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관계사이의 벽을 허물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불려지고 싶은 호칭이 있다면, 그 이유가 있다면, 누군가에게도 불려지고 싶은 호칭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야 한다. 호칭은 단순히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역할 책임에 대한 존중이고,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나와 누군가의 관계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
|
|
|
코너소개 - 언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통번역가로 두 언어를 연결하며 경험한 일과 언어가 만나게 해준 세상의 매력들을 나눕니다. 작가소개 - 통번역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통역사로 먹고살기’의 저자이며, 마음이 통하는 작가들과 공저<세상의 모든 청년>에도 함께하였습니다 엘리 계정 :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크드인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