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왜 아침부터 산통 깨냐” “산통깨는 소리 그만해.”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뭔가 일이 갑자기 어긋나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때 쓰는 ‘산통(算筒)’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옛날에 점을 칠 때 사용하던 나무조각을 담은 대나무 통을 말한다. 그 대나무통이 부서지면 점을 치지 못하게 되므로, ‘산통 깬다’는 말은 계획이나 분위기를 망친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사실, ‘산통’ 은 말(horse) 관련 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로 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말이 아무래도 산통에 걸린 것 같아요.” “산통끼가 있어요.”
말(horse)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자마자 그야말로 머리가 곤두서며,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때의 산통(疝痛)은, 배가 극심하게 아픈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출산처럼 극심한 통증을 일컫는 것이다. 말은 사람보다 훨씬 길고 생김새가 복잡한 내장을 가지고 있어서, 장이 꼬이거나 변이 정체되고, 가스가 차기 쉽다. 이런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말은 갑작스럽게 산통에 걸린다. 앞발로 땅을 긁거나, 구르려 하고, 땀을 흘리며 매우 아파하므로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진짜 긴급 상황이다.
그해 여름,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긴 연휴를 앞두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나 역시 아주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려는 여행 준비로 신나 있었던 어느 날, 그야말로 ‘산통을 깨는’ 전화가 울렸다.
“과장님, 휴일에 죄송합니다만 말이 산통에 걸린 것 같아요.”
서둘러 마방에 출동을 했다. 직장검사 (항문에 팔을 깊게 넣어서 손으로 내부를 살펴보는 검사)를 해보니, 저 앞쪽에서 두둑한 변이 가득 찬 거대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변이 빠져나오지 않아서 생기는 산통이라고 진단을 했고, 공격적인 수액 치료나 변비를 완화시키는 약을 먹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냉정하게 빗나갔다. 며칠이 지나도 호전이 없고 직장검사를 하며 손을 넣으면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변이 분명 버티고 있었다. 며칠을 운동시키며 치료하면서 사용한 수액 박스만 늘어났다.
아침마다 마방을 찾아도, 그토록 기다리던 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의 통증이 심하지 않기에, 어떻게든 약으로 치료를 해보려고 위 안으로 넣어보던 액체가 점점 잘 넘어가지 않았다. 단순 변비가 아니라 뭔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배를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많은 산통 수술을 보조했지만, 직접 집도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긴 휴일이 겹쳐 주변에 수술이 가능한 인력이 없었다. 결국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 약물치료로 휴일을 버틸까, 아니면 내가 수술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왜냐하면 수술 없이 이 상태로 긴 휴일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와줄 시설과 야간 인력이 협조가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나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나는 그저 진단과 진로진 섭외에만 신경 썼지 내가 주체적으로 배를 열어 원인을 찾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마치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무수히 산통 수술 장면을 돕고 눈으로 거치며 공부했던 산통 수술이지만 칼을 직접 쥐어보니 나는 완전히 신생아가 되어있었다. 일단 말을 눕혀 수술대에 올렸다. 배가 위로 가게 눕히니 복부의 한쪽 부위만 도드라지게 불쑥 튀어나와 있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배의 형태를 보니 역시나 수술 결정이 옳았구나 안도했다. 허나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심호흡을 하고 처음으로 피부를 절개했다. 그 안에서 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분명 정중라인을 따라 가만히 가면 되는데, ‘백견이 불여일행’ 일 뿐 난 다시 신생아가 되었다. 우여곡절 복강을 열었다. 맹장이 먼저 까꿍 하며 인사하듯 쑥 튀어 올라온다. 손을 깊이 넣어서 좌대결장 굽이를 찾아서 빼냈다. 날씬한 모습으로 그냥 쑥 빠져나왔다. 아니 그렇다면 그동안 직장검사로 수차례 만져졌던 그곳은 좌대결장 굽이가 아니고 어디였단 말인가.
문제는 우대결장이었다. 변이 꽉 차있고 변위까지 와서, 직장검사에서 좌대결장이랑 착각이 되었던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똥은 그곳에 있었다. 왜 말은 심한 통증 표현을 안 했는지 탄식이 나왔다. 다행히 장 괴사는 크지 않았다. 변위된 장을 풀어 제자리로 되돌리고, 장을 절개해서 일주일간 정체가 되며 쌓여있던 숙변을 물리적으로 빼냈다. 그간 나의 포지션은 변을 빼는 동안 장을 잡아주거나, 찌꺼기를 닦아주는 등의 보조 역할이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직접 장을 절개하고, 또 정확히 봉합해야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늘상 해보았던 바느질도 영 어설프고, 수술 바늘을 기구로 집는 것조차 헛돌았다. 다행히도 옆에서 침착하게 나를 안내하고 도와준 진료진 덕분에, 나는 어떻게든 수술을 끝냈다. 농담 한마디 못하고 어색한 자세로 장과 복벽, 피부까지 봉합을 마치니, 저린 등줄기의 느낌이 이제야 온다.
몇 시간의 수술이 끝났고, 말을 회복실로 옮겼다. 누워있는 말의 땀을 닦아주며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되어간다. 말 한 마리의 산통 발생으로 여러 인력이 휴일 날밤을 새고 있는 것이다. 그냥 이 시간과 장소에서 내가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시설과 인력의 협조가 안되었다면, 이 말은 지금 이 시간에 수술대에 누워있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 회복실에서 수액을 다 달고 집에 돌아와서 누웠다. 눈을 감아도 떠도 바로 직전의 수술 장면이 천장에 떠올랐다. 내장을 만지던 그 감촉은 더 선명해진다. 내가 처음으로 온전히 술식을 따라 해 보며, 나만 알고 있는 그 못 미더운 내 손놀림과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걱정인형이 되어서 천장에 떠다녔다.
'괜찮을까? 잘 아물까? 다시 꼬이지 않을까? 합병증이 생기면 어떡하지?’
수없이 이불킥을 하고 아침을 맞았다. 뜬 눈으로 입원실을 찾아가니 나의 첫 산통수술 환마는 영민하게 살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술은 퍼즐의 작은 한 조각에 불과했고, 기나긴 술후 관리가 남아있었다. 다행히 이 말은 우리 부서 소유의 말이었기에, 동료들이 진심을 다해 이 말을 돌봐주었다. 내가 다소 과하게 요구한 관리일지에는 정말 놀랄 만큼 세세한 배뇨, 배변 기록과 투약기록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동료들은 이 말을 수술받은 한 명의 부서원처럼 대해주었다. 식사 때마다 이 말의 회복 상태가 주제거리였고, 끌기 운동을 어떻게 시키고, 건초량을 어떻게 늘리고,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를 중량까지 재어가며 정말 정석적으로 관리했다.
수십억짜리 가치의 말도 아니고, 다소 못생기고 평범한 승용마였지만, 이 말은 우리 모두의 식구였던 것이다. 수술 후 합병증은 안타깝게도 하나씩 거쳐갔다. 항생제 기인 설사도 있었고 장무력증도 약간 있었고 미열도 있었고 뒷다리를 좀 절기도 했으나 우리는 크고 작은 파도를 하나하나 넘겼다. 2주가 지나고, 3주가 되자 공식적으로 치료 종료를 선언했다.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그 후에도 많은 종류의 수술과 긴박한 상황을 다양하게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먼저 산통으로 떠오르는 건 그 해 여름, 그 밤의 공기다. 유난히 그 해 여름이 여전히 내 마음 안에 뜨거운 건, 비단 첫 집도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며, 갑작스럽고 피곤한 그 망쳐진 분위기를 다 주워 담아서, 어떻게든 잘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던 그 마음. 지금도 여전히 술 한잔 들어가면 그 이야기를 꺼내며 그 긴박한 상황을 추억하는 그 똑같은 마음. 그 같은 마음은 살면서 항상, 쉽사리 오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산통깨는 산통 응급전화는 말 병원에서 느닷없이 울릴 것이다. 그 전화는 늘 갑작스럽고 피곤을 동반한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그 망쳐진 분위기를 다 주워 담아서, 어떻게든 잘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해 복구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복구를 위해서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애를 쓰고 경험하고 또 마음을 쓴다. 그게 산통(算筒) 깨는 산통(疝痛) 응급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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