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는 한동안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니, 시간이 뭉뚱그려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진통이 점점 강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동시에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창문을 가렸고 조명도 어둑어둑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도 가늠할 수 없었다. 진통은 점점 세져서 마침내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수준의 고통과 인내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졸고 있는 내가 참 신기하고도 웃긴다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산사 선생님이 힘주기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최종 리허설이었다. 대변을 볼 때처럼 힘을 줘야 한다, 호흡은 길게 해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머릿속에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며 준비했었는데, 고통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실전에서는 역시나 내 맘처럼 쉽지 않았다. 밀려들었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진통은 점점 더 잦아지며 강해졌고, 무엇보다 그 끝을 알 수 없어서 더 힘들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조산사 선생님의 호출에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짝꿍의 손을 꼭 잡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내 몸에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짰다. 드라마에 익숙하게 나오는 출산 장면과는 달리 소리는 한 번도 지르지 않았다. 원래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타면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숨을 삼키는 쪽이기도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면서 출산을 공포가 아닌 환희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덕분이었다. 최대한 차분하고 평온하게 아기를 맞이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리 지를 힘까지 모아 아랫배로 내려보냈다. 드디어 아기 머리가 보인다는 짝꿍의 말에 ‘한 번만 더. 조금만 더. 우리 같이 힘을 내자, 아가야!’ 혼자서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면서, 들이쉰 숨을 꾹 참고 있는 힘껏 밀어냈다.
미끄덩. 갑자기 무언가 크고 따뜻한 덩어리가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애앵’하는 가녀린 외마디 소리와 함께 아기가 내 뱃속이 아닌 배 위로 찾아왔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너무 작고 빨개서 손을 대기에도 조심스러운 아기를 끌어안는 순간, 조금 전까지 죽을 만큼 아팠다는 사실은 싹 잊고 그저 무사히 나와준 아기가 너무 신기하고 대견했다.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내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원래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감성 충만 울보인데, 그래서 아기가 태어날 때도 엄청나게 울 거로 생각했었는데, 정작 이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에 어찌 된 일인지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얼떨떨했고, 동시에 안도했다. 역시나 예상과 실제는 여러모로 달랐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간단하게 몸을 닦은 후 아기는 내 배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직 뛰고 있는 탯줄을 만져보라는 조산사 선생님의 말에 손을 아래로 뻗었더니 맥이 뛰고 있는 땡땡한 고무관 같은 것이 만져졌다. 처음 느끼는 묘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탯줄로 연결된 아기와 살을 맞대고 우리 세 식구만의 시간에 한창 빠져 있는데, 조산사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배에 힘을 줘보라고 했다. 다시 한번 뜨거운 미끄덩. 태반이 쑤욱 통째로 빠져나왔다. 뱃속의 아기를 감싸주던 검붉은색 주머니가 어찌나 신기하고 고맙던지, 아기와 나란히 놓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태반에 연결된 탯줄을 자르면서 아기는 마침내 홀로서기를 했다. 조금 더 자유로워진 아기는 아빠 배 위에서 살을 맞댄 채 캥거루 케어를 했고, 세상에 나와 처음 자기 힘으로 젖을 물었고, 그렇게 한참을 더 엄마 아빠와 함께 있다가 여러 기본 검사를 하러 이동했다. 우리가 원했던 대로 너무나 여유롭고 평온하고 온전한 첫 만남이었다. 엄마와 아기의 주체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경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