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을 읽으면, 다정해지고 싶어진다 [사이에 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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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끊기” 버튼 하나로 단절되는 온라인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폰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진짜’ 친구를 만나라고들 한다. 하지만 20년 넘게 다양한 SNS를 경험해온 나로서는, 누군가를 ‘어디서’ 만났는지는 관계 유지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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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을 처음 만난 건, 페이스북에 공유된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캠퍼스는 달랐지만 같은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하다 졸업과 탈출, 그 중간 어디쯤의 선택을 먼저 했던 나로선 극심한 몰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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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글이 알려지면서 그는 대학이라는 섬에서 걸어나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자리에 앉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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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논문은 학회 간사, 심사위원, 그리고 저자 외에는 누구도 읽지 않을거라 생각하며 쓴다고들 한다. 몇 사람만 읽을 논문 대신 ‘우리’의 세상과 맞닿은 글을 매일 쓰는 삶을 사는 그가 부러웠다. 대학에선 주어지지 않았던, 그에게 처음으로 4대 보험을 제공해주었던 패스트푸드점에서도 걸어나와 운전자의 자리에 앉아 쓴 ‘대리 사회’의 이야기가 연재되는 동안 나는 실시간으로 그의 새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받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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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이후, 그는 계속해서 책을 펴냈다. 『고백, 손짓, 연결』은 일종의 ‘지방시’ 에필로그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망원동』에서는 나고 자란 동네 ‘망원동’ 이야기를 풀어냈고, 『훈의 의미』에서는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듯하지만 어쩌면 구속하고 있는지도 모를 학교, 회사, 아파트라는 공간의 훈에 대해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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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로 보았던 그의 얼굴을 실제로 마주한 건 2017년 겨울, 서울의 한 카페에서였다. 미국에 거주하다 잠시 귀국한 나, 각종 강연과 대리운전을 병행하던 그—‘언제 한 번 만나요’라는 인사치레로 끝날 수 있는 대화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서로의 일정을 조율하던 메신저 대화창을 다시 훑어보니 자꾸만 웃음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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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고, 무례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비슷한 이유로 반쯤 떠밀리듯 학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내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줘서 고맙다고도.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대리운전 콜을 기다리면서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논문 심사장에서 들은 교수의 무례한 발언에 “그건 정말 심한데요?”라며 공감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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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면, 하고 싶은 일보다 세상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김민섭은 ‘그렇지 않은’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 마음을 글로써 이어가고 있다. 나는 그가 잘되길 바란다. 그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는 삶과 글이 서로를 돕는, 글행일치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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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분노의 감정을 보내는 일은 쉽다. 화내고 목소리를 높이고,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건 사실 가장 간편한 일이다.
김민섭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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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적 입장에서 봐도 이 분석은 타당하다. 불쾌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사람은 자동반사적으로 화를 느끼게 된다. 그 부정적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을 멈추고, 상대의 상황을 헤아리고, 그를 배려하는데는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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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은 ‘다정함’을 단단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일이라 정의한다. 이만큼 어려우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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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어 버려질 뻔한 취소 불가 항공권에서 시작된, 같은 이름 가진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는, 졸업을 앞둔 ‘93년생 김민섭’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기회를 열어주었고, 숙소, 패스 제공 등 많은 사람들의 다정함을 이끌어냈다. 서구권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따뜻함’이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던 순간이 이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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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의 주인공, 83년생, 93년생 김민섭씨. 93년생 김민섭씨는 후쿠오카 여행 이후 삶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얼마전 결혼 후 유학길에 올랐다. 결혼의 주례사는 83년생 김민섭씨가 맡았다. 출처 김민섭 작가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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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작가는 자신이 들었던 이 말을, 다른 이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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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척’ 한다는 오해가 두려워 쉬운 선택을 하게 되는 우리에게, 그는 말한다. 착한 일이란 결국 우리를 사회적으로 연결시키는 일이라고. 그런 연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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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도 한국에 잠시 머물렀다. 친구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다정한 나의 친구는 “어디가 좋을까?”라고 말했다. 오픈했다는 말만 들었던 김민섭 작가의 북카페가 있는 강릉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근처의 숙소를 예약하고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강릉을 향해 4시간을 운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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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의 다정함을 타고, ‘당신의 강릉’에 도착했다. 김민섭 작가를 실제로 만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탁송과 강연,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부글부글 육아’로 분주할 거라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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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토요일 오전, 북카페 곳곳에는 그의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한켠엔 ‘대학에서의 김민섭’을 보여주는 코너도 있었다. 메모가 빼곡한 논문을 보며, 미국 이사길에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들고온 내 석사논문과, 공학 전공인 남편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고서점 냄새 나는 문법책들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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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당신의 강릉>에서 발견한 '대학에서의 김민섭'의 흔적 출처: 직접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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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선 배울 수 없었던 글쓰기를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정지우 작가의 책도 있었다. ‘글쓰는 나’는 ‘정지우 크루’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정지우 작가를 알게 된 건 김민섭 작가와의 연재-공저 프로젝트 <내가 당신의 첫 문장이었을 때>를 통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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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경을 한참이나 하다가 계산대로 향했는데, 거기 김민섭 작가가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먼저 알아봐 주는 그의 얼굴에는 다정함이 배어있었다. 인사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비밀처럼 간직해왔던, 김민섭 작가로 인해 정지우 작가를 알게 되었고, ‘쓰는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그에게 전했다. 그 날은 김민섭 작가의 책,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가 서점에 입고되던 날이었다. 나는 이 책의 1호 싸인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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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1호 싸인을 기념하며, 북카페 당신의 강릉에서 출처: 직접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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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글로만 보았던 그의 가족도 있었다. 아내, 김대흔 씨, 김린 씨에게 ‘작가’ 혹은 ‘아빠 친구’로 소개되었을 때, 덕후로서 제대로 계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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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작가가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그의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언젠가는’ 이 공간에서 내가 쓴 책을 발견하고 싶다는 소망을 떠올리며 카페를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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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당신의 강릉 외부의 벽화 출처: 직접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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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닮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그가 매일 실천해보려는 다짐이다. 베풀 수 있는 것을 잊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때를 기다려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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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강릉>에 낯익은 이름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허태준 작가. 같은 결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담을 하거나, 공저를 내는건 봤지만, 북카페 앞에서 책굽는 붕어빵이라니, 이건 정말 김민섭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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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지내보는 건 어때요?” 강연차 강릉에 온 허태준 작가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현실이 되기까지, 그 사이엔 수많은 다정함이 켜켜이 쌓였다.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작가가 있으면 이 집을 내어주면 좋겠다는 어떤 부부의 다정함, 이런 기회에 뭐라도 좋은 일을 해보겠다는 허태준 작가의 다정함.
2025년 1월 9일부터 3월 31일까지, 52 일, 356시간 동안 당신의 강릉 앞에서 붕어빵을 구우며, 판매하며 나눈 #책굽는붕어빵 이야기가 곧 책이 되어 나온다고 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읽는 사람들도, 모두가 서로에게 한 줌의 다정함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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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차 독일의 한 도시에 왔다. 시 중심에 있는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데 주말 마라톤 결승점이 시청앞 광장에서 있었다. 모두가 긴장한 채 들떠 있던 역력했던 시끌시끌한 아침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여전히 뛰는 사람들이 있는 오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피켓을 들고 가족과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 내가 기다리는 ‘나의 사람’ 말고, 나의 사람과 같은 길을 뛰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김민섭 작가가 말한 ‘조금 더 다정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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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끝날 즈음 결승점에서 출처: 직접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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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지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마라톤에 출전하는 동료를 위해 팀원들이 피켓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사진을 Chat GPT를 통해 그림으로 변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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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 ‘몰뛰작당’을 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당잘런’(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뛴 만큼 기부하는 러닝)을 이어가고 있는 김민섭 작가, ‘3보이상 운전’이라는 미국을 벗어나 걷는게 일상인 유럽에 머문 기간만이라도 마음을 보태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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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로 끝난 후쿠오카 여행 이후, 그는 과연 해외여행을 갔을까? 독일 출장길에 이 책을 가장 먼저 가방에 넣으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켜고 일하던 라운지, 비행기 안, 도착 첫날 잠시 시내를 둘러보러 나가면서도 그의 책을 챙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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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작가는 카페에서, 숙소에서 글을 쓴다. 나도 그를 따라 출장길 혼밥 중 이 글을 쓰고 있다. |
독일 커피숍에 간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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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일정이 어제 끝났고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숙소 앞 독일의 서점, Thalia 한켠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책을 옆에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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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서점 체인 Thalia 한 켠에 김민섭 작가의 책을 살포시 놓아보았다. 언젠가는, 한국어로 쓰인 책도 이 곳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출처: 직접 촬영 |
언젠가는, 한국어로 쓰인 책도 이 곳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출처: 직접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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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작한 비영리법인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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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필요한 날, 나는 김민섭을 읽는다. 김민섭의 글을 통해 더 많은 우리가 좀더 다정해져도 괜찮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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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서서] 황진영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https://brunch.co.kr/@nowhere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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