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골골댄 지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출산하고 한 해 동안은 우리집에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세 식구 모두 감기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과 뉴뉴는 코가 약한 편인지 코감기로 왔고, 나는 목이 약해서 그런지 목감기로 왔다. 감사하면서도 억울하게 나만 열이 났다. 아마 둘째 새싹이(태명) 임신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탓도 있는 것 같다. 여전한 입덧 때문에 먹는 것도 부실하고 말이다.
뉴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짧은 두어 시간의 자유, 알차게 보내고 싶지만 영 속도가 붙지 않았다. 학생들 시험 기간이라 수업 준비도 가열차게 해야 하고, 첫 단독 저서 출간으로 흥분된 마음도 온몸에 가득한데, 그보다 강한 것이 감기 놈이었다. 가열차게 수업 준비를 하려고 해도 머리가 몽롱하고, 단독 저서 홍보도 열심히 하고 싶지만 방구석에 누워서 공주님처럼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내 모습에 한숨이 났다.
“오늘 자유시간도 끝났네. 망했다 망했어.”
뉴스레터 발행 전날, 눈을 다 떴지만, 반 정도 떠진 눈으로 우롱티, 보리차, 루이보스티 각종 따뜻한 차는 다 마시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아기 하원 시간이 다가왔고, 졸음이 쏟아졌다. 크지 않은 몸에 안고 품고 사는 게 참 많다. 감기, 16개월 된 뉴뉴, 그리고 뱃속에 새싹이까지. 아기를 기르면서 유독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좀 다부지고 단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 몸은 건강한 1인분 몸인 것 같다. 플러스 일이 되면 신체의 균형이 금방 무너져버리고 만다. 그래도 뱃속 새싹이도, 귀염둥이 뉴뉴도 잘 자라고 있으니 마음만큼은 5인분으로 행복하다. 정말이다. (일 시작하고는 스트레스로 갑상선이 늘 문제였는데, 아기가 태어난 뒤부터는 갑상선 수치가 오랜만에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몸이 비실거려도 누워 있을 수는 없다. 뉴뉴 저녁 맘마를 만들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 충분히 낮잠을 자고 일어난 뉴뉴도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책을 챙겨 내게 안겼다. 엄마 아빠 무릎에 앉아 따뜻한 물 마시면서 책 읽는 걸 가장 좋아하는 아기. 나의 첫사랑.
기저귀를 찬 나의 첫사랑 뉴뉴는 요즘 엄마를 도와주는 일에 열을 올린다. 빨래는 빨래통에, 책은 책장에, 장난감은 교구장에 넣고는 신나게 박수를 친다. 삶은 달걀을 한 땀 한 땀 까서 아빠를 주기도 하고, 씻어놓은 양배추를 냄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 넣는 일을 나와 함께 하기도 한다. 세상에 모든 일이 신기하고 즐거운 뉴뉴는 뱃속에 동생이 있는 걸 알까.
아기는 아기를 알아본다고, 어쩌면 뉴뉴는 뱃속 아기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배 위에서 놀다가 잠드는 걸 좋아했던 뉴뉴인데, 임신 후에 “뉴뉴야,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어.“라고 하면 곧 배 위에서 내려와 내 옆구리에 파고들어 잠에 든다. 덕분에 첫째 때문에 임신이 힘들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은 아직 없다. 오히려 임신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종종 찾아오는 구역질에 그제야 ‘아 참, 조심해야지’ 한다.
둘째가 태어나면 어떤 세상이 열릴까. 두 살 터울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우리 부부의 호기롭던 마음이 금방 꺾여 기진맥진해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아마도 뉴뉴를 키운 첫 일 년처럼 많은 걸 포기하고, 조그맣고 깜깜한 상자 안에서 반짝거리는 아기만 바라보며 행복해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주름살도 흰머리도 왕창 생겨버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존재는 까맣게 사라지고 아기만 새싹처럼 반짝반짝 자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얻으려면, 가장 어둡고 힘들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내가 반짝이는 순간이기보다 나의 봄, 나의 새싹들이 조금 더 푸르고 무성해지기를 바라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자 지금 이 순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 글쓴이 - 보배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다가 23년 12월 출산 후부터 <육아에 바나나>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탱고에 바나나는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공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https://brunch.co.kr/@sele
인스타그램: @bobae.wri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