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떠한 현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참과 거짓을 나눌 수 없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과거에는 옳다고 믿었던 일들이 오늘날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것들이 많아요. 혹은 지금 시대에 통용되는 가치일지라도 10년, 20년 뒤 폐기처분되어 버리는 것들도 있을 거에요.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데카르트의 논리에 완전히 수긍되시나요?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맞다고도 할 수는 없을 거에요.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후 정신과 신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심신일원론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어쩌면 이제는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상식이 된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병을 앓았던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무기력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오가면서 삶의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었죠.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병리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저는 몸에 대한 자각이 둔하고, 몸이 아픈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왠만큼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 편입니다.
건강한 체질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의지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무의식의 회로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병명을 진단받고 나서 덜컥 겁이 나는 상황이 생겼어요. 직장에 취업을 하기 위해 채용신체검사라는 것을 받아야 했는데, 검사 결과 결핵을 진단 받은 거였어요. 당연히 취업은 어렵게 되었고, 6개월간 결핵 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치고 기운이 없고 조금 피곤할 뿐이었는데, 폐결핵이라는 병명을 진단받으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다행히 결핵은 제대로 약을 복용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고, 2~3주 뒤부터는 굳이 격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요. 그렇지만 아이를 돌보는 엄마인 제가 결핵이라니 그것만으로도 걱정스러운 일이었어요. 집 안에서 마스크를 하고, 밥을 따로 먹고, 항상 수저와 그릇 등을 소독하고, 수건도 따로 쓰고 아이와 잠도 따로 자야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을 한 움큼씩 매 끼니 먹는 것이 고역이었어요. 지금은 약 종류가 조금 줄었다고 하는데, 당시 저는 매 끼니마다 20알 넘는 알약을 먹어야만 했는데 그것 때문에 소화가 잘 안되었어요. 아무래도 너무 많은 항생제가 한꺼번에 몸으로 들어오다 보니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죠. 약으로 인해 간에 부담이 가서 그런지 초기에는 누렇게 떠 보이기도 했고, 피부 발진도 있었어요. 약의 성분 때문에 소변이 빨갛게 나와서 속옷에 묻으면 피 같기도 해서 여러 번 놀란 적도 있어요.
결핵을 진단받고 치료를 하기 전에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 나의 몸은 오히려 결핵이라는 병명을 얻은 후 오히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약 먹고 치료하면서 피로감을 쉽게 느끼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통도 심해지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곤 했어요. 당연히 전염성도 있다고 하니 초기에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내가 결핵 환자다’ 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죠. 혼자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 자책하고 나를 비난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루 종일 잠을 자도 계속 잠이 오고, 날씨가 좋은 날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몇 달의 시간을 버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에요. 잊고 싶은 기억이라는 생각에 그 시절의 생활이 어땠는지 생각나는 일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뭏튼 몇 달 동안 약만 잘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니 열심히 약은 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X-레이를 찍을 일이 생기게 되면 꼭 한 번씩 의사는 “결핵에 걸린 적 있습니까?” 라고 물어 보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결핵을 앓았던 흔적은 폐에 자국을 남긴다고 합니다. 어릴 때 다친 흉터가 몸 곳곳에 흉을 남기듯이, 몸 속의 장기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팠던 자국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내 삶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체적인 질병 및 감정적인 경험까지도 어떤 패턴과 흔적을 남기게 되겠죠. 더 나아가서 이러한 흔적이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몸은 바로 존재의 증거이자 살아있음의 증표입니다. 몸이 없다면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게 되니까요.
마음챙김(mindfulness)은 현재 순간 일어나는 무엇이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과 몸의 상태를 알아차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날에 대한 후회에 빠져들어 우울감을 겪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불안감을 느낍니다. 우울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상태 속에서 현재는 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챙김은 지금-여기에 사는 법을 훈련하는 법이기도 하며,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현재에 머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재에 머물 수 있을까요? 과거나 미래로 달아나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충동을 인정하고 현재 순간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 중 가장 첫 번째는 자신의 몸을 관찰해 보는 거에요. 몸의 관찰 중에서도 기본은 호흡입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만 주의의 대상으로 삼아 봅니다. 바로 현존의 시간 속에서 고요하게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을 지켜볼 때 의외의 행복과 충만한 만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구요?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혹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무지함이 있을 뿐입니다. 막상 경험해 보면 ‘아하! 이런 것이었구나’하는 통찰과 함께 온전히 나로 사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자기돌봄은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잠시 멈추어 진짜 나를 인식하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의 삶에서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바쁘게 살다가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몸이 건강해지기 위해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을 하듯 자기돌봄을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서 끊임없이 현재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꾸만 다른 시공간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멈추고, 헤매이던 감정을 쫓아다니지 말고, 지금 이곳의 ‘나’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기 돌봄은 바로 이러한 자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책이 있는 명상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e수원뉴스 기자로 15년째 활동중이다. 좋아서 시작한 인터뷰로 인해 '사람'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10여년 전 타로상담을 공부한 이유 역시 누군가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때문이다. 현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심신통합치유 석사과정을 공부하며 마음챙김 명상을 안내한다.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오후의 시선』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15권 정도 다수의 책을 썼다.
https://blog.naver.com/sora7712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