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건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친절에 빚지며 살아가는 일이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적응해야 했던 건 남에게 부탁하고 신세질 일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던 나는 까다로운 독일의 행정 처리를 전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해야 했다. 남편은 자신만 믿고 온 나를 위해 기꺼이 적극적으로 일 처리를 해주었지만, 공무원과 남편의 대화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어쩐지 마음이 위축됐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남편의 도움으로 서류를 작성했고, “서명”이란 단어도 몰라서 공무원의 언성이 높아졌을 땐 식은땀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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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독일어에 익숙해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집 수리를 해야할 때, 계약을 해지할 때, 택배가 분실됐을 때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난처해졌다. 한국이었다면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도 있었겠지만, 타지에서 외국어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건 해결해 줄 수 없어요”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같이 밑도 끝도 없는 무책임한 답변에도, 아쉬운 건 나라서, 정중하고 친절하게 수차례 설명하고 재차 부탁해야만 했다.
별 거 아닌 일로도 신경을 다 쏟다보면 일을 처리하고 나서도 진이 빠진다. 한국이었다면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이 끝났을 일들이다. 아프면 즉각 점심 시간에 병원가서 수액 맞기, 건강 검진 받고 보험 처리하기, 통신사 바꾸기, 계약 해지하기 등 한국이었으면 별 거 아닌 일도 독일에서는 유난히 복잡하고 어려웠다. 지금은 애초에 오래 걸릴 일인 걸 알아서 마음을 비우고 적응을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이까짓 일로 끙끙댈 때마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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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을 못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더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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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행정 처리가 느리고 복잡해서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을 어렵지 않게 뚝딱 해내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은행, 병원, 관공서, 계약서 등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크고 작은 성취감이 있었나보다.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어 차근차근 할 일을 끝내다보면 비로소 제 할 일을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처음부터, 상대의 말을 혹시나 놓칠까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듣고, 처음 접하는 복잡한 행정 처리에 허둥지둥 대는 것이 인생의 몇 걸음을 뒷걸음질 치는 기분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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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쩐지 전보다 아쉬운 소리도 많이 하고, 신세도 많이 지는 외국인으로 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한 친절과 호의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느낌도 들었다. 집 앞 마트를 가는 길, 건널목을 건너기 전 차가 오는지 좌우를 살피는데 갑자기 달리던 자전거가 내 앞에서 멈췄다. “도와줄 일 있을까요? 어디 가시나요?” 좌우를 살피는 내가 마치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던지, 중년의 남성이 물었다. 그냥 마트 가는 길이라고 하자 그는 갈 길을 갔다. 이런 일은 꽤 자주 있었다. 길을 조금만 헤매도 달리던 자전거를 유턴해서까지 내 앞에 와서 길 찾는 걸 도와준다는 사람, 잠깐 발을 삐끗하니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와주려는 사람 등.
“절대 어리버리한 표정 짓지마. 또 누가 도와줄라” 남편과 길을 걸을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누가봐도 ‘까만 머리의 동양인’이다 보니 몇 년을 한 동네에 살아도 어쩐지 외지인 같고 도움이 필요할 것만 같은지 생면 부지의 사람들이 친절을 건넸다. 자꾸 도와주겠다고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안 물어볼 길도 물어보기도 하고, 배 부른데도 서비스로 주신 케익을 끝까지 먹는 일도 있었다. 친절한 호의에 거절을 하는 건 어쩐지 익숙해지지 않지만, 요즘은 “고맙지만 저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요”도 말로 꺼내보고 있다.
일상 속에서 친절과 호의를 자주 접하다보니, 별 거 아닌 일로 남에게 말을 걸거나 부탁을 하는 일이 조금은 쉬워졌다. 내가 정중하기만 하다면 대체로 친절하게 답이 돌아왔다. 물론 서로의 이해 관계가 걸린 일이라면 감정이 상하는 일도 없진 않지만, 처음이라 잘 모르는 일이라고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은 쉽게 호의를 베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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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 너무너무 친절해” 라며 첫 한국 여행을 다녀온 독일인 친구가 연신 감탄을 쏟아냈을 때 갸우뚱했다. 서울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도 정말 많지만 특히 사람들이 친절해서 좋았다고 했다. 한국만큼 무표정하고 남한테 관심없는 곳이 있었던가, 약간의 아리송함으로 함께 있던 한국인 친구들과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그 친구에게 물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카페에서 주문을 하려는데 버벅이면 직원이 끝까지 친절하게 도와줘서 주문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골목에서 귤 한 봉지를 떨어트렸는데 갑자기 사방의 아주머니들이 귤을 같이 주워주셨다고 했다. “그 골목에 아주머니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 다들 앞만 보고 가는 것 같았는데 외국인 청년이 길에 과일을 쏟자 몰려들어 도움을 주신 것이다. 지하철에서 노선도를 보며 헤매면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줬고, 심지어 영어를 못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힘써 도와줬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끝까지 친절하고, 처음 보는 사람을 잘 돕고, 어려움에 처하면 길을 걷다가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는 말에 다소 놀랐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의 나는 늘 바쁜 걸음을 재촉하느라 주변을 돌아본 적도 없고 친절을 겪을 일도 없었다. 이름 모를 타인을 떠올리면 급히 걷다 부딪히고, 만원 지하철에서 서로를 견디는 사람들 뿐이었다. 스마트폰만 보며 익숙한 곳만 다니다보니 타인의 표정을 볼 일도, 용기내어 말을 걸 일도,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고 할 일도 없었다. 한국을 방문해 본 독일인 친구들과 대화하면 늘 “독일이 더 친절해” “한국이 더 친절해”로 이견이 생기는데, 어쩌면 이건 어수룩한 이방인으로써 겪는 친절에 대한 같은 의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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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수많은 친절과 호의에 기대어 살았다. 비오는 날 또래 여성분이 같은 방향이라고 우산을 씌워준 일, 갑자기 지하철에서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지팡이를 휘두르던 노인을 신고하고, 역무원이 달려오자 나보다 먼저 다른 아주머니들이 “저 아가씨한테 못 들어줄 쌍욕을 하더라니까!” 라며 상황을 설명해줬던 일도. 그런데 돌아보면 고마운 일들은 두고두고 곱씹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억울한 일들은 며칠을 이야기하고 분이 풀릴 때까지 씩씩거렸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건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친절에 빚지며 살아가는 일이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처음 겪는 상황들마다 크고 작은 좌절을 겪는데 그 때마다 운이 좋게도 친절한 타인의 도움을 받았다. 모든 것을 내가 완벽하게 했을 때보다 빈틈이 있을 때 타인의 친절을 겪을 기회도 생긴다.
빈틈없이 반복적이고 계획적인 일상을 보낼 수록 서로의 친절을 인식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모두가 나에게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타인의 호의와 친절을 포착하고 기억하는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정작 무표정이고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독일에 와서 온갖 호의를 경험하고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건, 분명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타인의 친절이라 낯설었고, 서투른 나의 빈틈을 채워주는 경험이 쌓였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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