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벚꽃이 팝콘처럼 터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펑펑 터지는 꽃잎을 보며 유난히 길었던 겨울과 드디어 작별한다. 작별이라는 단어는 참 이중적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은 쓸쓸하기 그지없지만 차가웠던 겨울이나 지독했던 병상 생활과의 작별은 아주 시원하다. 나는 암과의 완전한 작별을 고대하고 있다. 암이라는 병은 완전 관해 상태에서 오 년을 지나야 비로소 완치라고 한다. 이제 일 년 남았다. 사 년 전, 흐드러진 벚꽃이 한 잎씩 떨어질 때 내 눈물도 한 방울씩 떨어졌었다. 무엇이 나를 다시 일으키고 살아가게 했을까? 그중에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마음이라니. 비타민도 아니고 기적의 주사도 아니고 고작 마음 이야기라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환우들에게 비밀스럽게 알려주고 싶은 나의 최종 무기는 바로 마음이다. 몸이 무너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몸이 쓰러지면 마음도 함께 몰락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모든 사람에게 질투와 분노가 일었다. 특히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화가 치밀었다. 누구 때문에, 누구에게 속상했기 때문이라는 미움이 병보다도 더 나를 괴롭혔다. 서운함이 태풍처럼, 파도처럼 나를 덮치고 함부로 패대기쳤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일상을 사느라 바쁜 모습들이 병상에 있는 내 모습과 비교되었고 나만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널부러져 있는지 자꾸만 슬퍼졌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항암 중에는 입맛이 통 없지만 반드시 잘 먹어야 한다. 주사 후유증으로 굳어진 팔을 수건으로 감싼 채 냉장고를 열고 혼자 식사를 챙기다가 반찬통을 떨어뜨렸다. 한쪽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어설프게 들다가 떨어뜨렸는데 마루에 흩어진 반찬들을 닦고 치우다가 문득 화가 났다. 평생 뼈가 부서지도록 열심히 살았는데 대가가 겨우 이렇다니.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 없이 바닥에 떨어진 반찬이나 치우구나!' 하며 분노와 슬픔 그리고 설움에 겨워 초저녁 나절 동안 한참을 울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요동쳤고 살아온 인생 전체가 원망스러웠다. 마치 돌림 노래처럼 요란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찾아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어떤 통증보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살고 싶었다.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나에게 벌어진 모든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암에 걸렸고 내가 무한대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며, 누구나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거짓 위안도 하며, 나는 내가 살리기로 마음 먹었다. 가족들이 염려해 주는 것은 덤이며 거기에 온전히 기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들도 자신의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매일 생각했다.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순애보적 남편은 그야말로 드라마 속 인물이며 허구라고 매 순간 각성했다.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야 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이라고 일 초마다 되뇌었다. 나머지는 덤이라고도.
효과가 있었다. 한 손으로 밥을 차리다가 밥을 엎어도, 먹을만한 음식이 없어서 누룽지만 끓여 약을 먹어도 그 전만큼 괴롭지 않았다. 주인 정신 같은 거였다. 내 몸 내가 살리기 운동이랄까.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사람을 참 외롭게 만든다. 몸도 아파 죽겠는데 외롭기까지는 안 하고 싶었다. 이 모든 문제는 모두 내 상황이고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마음을 바꾸고 나니 전사 같은 용기가 생겼다.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글을 읽는 환우 가족들은 환우가 이런 마음을 가지도록 일부러 냉정하게 굴 필요는 없다. 그러지 않더라도 환우는 이미 차가운 동굴에 홀로 갇힌 듯한 두려움에 충분히 떨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갈 때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항암 주사를 맞을 때는 하루에 두 번씩 병원에 왔다 갔다 했는데 가족들이 함께 움직였다. 병원은 여전히 무서운 곳이었고 주사는 천 번을 맞아도 아팠다. 가족들도 은연중에 여기까지는 해준다는 마지노선이 있다. 우리 집의 경우는 병원을 함께 가 주는 선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아서 더욱 기대했다. 항암에 좋다는 음식이라도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사서라도 차려주기를 바랐고, 밤이고 낮이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붙잡고 괜찮을 거라고 한정 없이 위로해 주기를 바랐으니 병원 동행쯤은 크게 감사하지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내 몸 내가 살리기 작전으로 방향을 잡은 뒤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병원을 함께 가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병원에 가면 혼자 오는 환우들도 많다. 가족들도 조금씩은 생활의 한 부분을 돕고 있었는데 암이라는 충격적 한 방에 자립심까지 망해버려서 결국 내 자존감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아마 나와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환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름 짓자면 가족들에 대한 서운한 대폭발 증후군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돕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그래야 환우 자신이 덜 지치고 삶을 놓치지 않는다. 병든 아내의 밥상을 차려 주는 남편 이야기 같은 것은 당분간 듣지도 보지도 말아야 한다. 서운해지면 속상하고 속상하면 몸에 통증으로 나타난다. 어떠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살아남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좀 낫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마음의 힘은 세다. 생각보다 훨씬 세다. 내 마음이 원하면 온 우주가 응원한다. 병보다 더 처절하게 나를 넉다운 시켰던 수많은 외로운 시간을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위해 돌아가지 않더라. 마음. 내 마음은 언제나 내 편임을 기억하자. 모든 환우님의 완치를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cesil1004
코너명 소개: 슬기로운 항암 생활:
암에 걸렸다. 대장암 3기였다. 명랑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완치까지 1년 반이 남았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출근도 한다. 아직, 절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