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워킹맘의 출장에는 온 가족이 필요하다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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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아프리카 속담이라고 알려진 이 말은 아이가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한 관계를 맺고, 다양한 가치를 배우며 자라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을까지 갈 것도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양육자에게는 온 가족의 도움부터 절실했다.
2주간의 출장이 잡혔다. 출산 후 첫 해외 출장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가급적 긴 출장은 피하고 싶었지만,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 일정이 정해진 후, 석 달 전부터 가족들의 일정을 하나씩 확인하며 조심스레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짝꿍부터 시작해서, 20분 거리에 계신 시어머니, 그리고 편도 세 시간이 넘는 거리의 엄마까지, 누가 언제 얼마간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 혹시 빠지는 날짜는 없는지,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춰 보았다.
그러던 중 하필이면 어린이집 방학 기간과 딱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내 마음은 천근만근 더 무거워졌다. 길게 일을 쉴 수 없는 짝꿍은 3일 휴가를 내기로 했다. 엄마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당신 사위와 함께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다. 엄마 혼자서 종일 아이를 보는 것은 힘들 것 같다며, 여동생이 또 귀한 휴가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방학을 보내고 남은 한 주는 짝꿍과 함께 아기가 시댁에서 지내며 어린이집에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짝꿍이 일하는 동안에는 체력이 좋지 않으신 시어머니 혼자 돌봄을 맡으셔야 하니, 결국 시누이까지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나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거의 온 가족이 동원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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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 엄마가 멀리 다녀올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모든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미리 이야기하며 서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떠나는 날 아침, 우리 엄마에게 안긴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잘 지낼 거라는 걸 알았다. 함께 아이를 돌봐줄 가족들이 있고, 아이는 평소 자주 지내던 공간에서 익숙한 가족들과 함께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아이가 그리울 것 같은 생각,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 등등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집을 나서서도 한참을 울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그 미안함에는 일을 다시 시작할 때 세웠던 내 나름의 원칙도 섞여 있었다. 아이가 돌이 좀 지났을 무렵, 나는 지금의 직장에 들어갔다. 재택으로 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덕분에 감사하게도 육아 외 시간을 활용해서 조금씩이나마 나의 경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사실 그 근무 조건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했다. 출산 전부터 입버릇처럼 ‘애들 다 키워놓고 이제 좀 살만한데 손주를 또 봐줘야 하는 할머니들은 무슨 죄야’를 외쳐댔던 나로서는, 최대한 손 벌리지 않고 아이의 양육을 우리 부부가 책임지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하더라도 나와 짝꿍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둘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막상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재택으로 일을 하다 보면 일과 생활의 경계가 또렷해지기가 쉽지 않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 특성상 정해진 업무 시간이 끝난 뒤에도 급하게 처리할 일이나 갑작스러운 회의가 생기곤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시댁으로 달려가거나 밤잠을 줄여야 한다. 게다가 아이와의 삶에서는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관리할 수 없는 예상 밖의 변수들이 늘 생긴다. 하루 네다섯 시간 남짓 집에서 일을 하는 내 삶도 이렇게 대혼란인데, 회사로 풀타임 출퇴근을 하는 양육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쉽지 않을지 매일 같이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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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2주간의 출장은 무사히 끝났다. 시차를 맞춰 아이와 아침에 꼭 통화를 하려니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고, 매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체력은 일찌감치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뜻밖의 반가움도 있었다. 아이와 잠시 떨어져서 오롯이 나와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곳을 탐험하기를 좋아하던 나, 좋아하는 일을 즐기던 나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엄마라는 역할 바깥의 내가 낯설고도 반가웠다.
2주 만에 다시 만난 아기는 나를 보자마자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며 신난 얼굴로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내준 것이 고마웠고, 나를 이렇게나 반겨주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자꾸만 미안해졌다. 겨울에도 같은 일정으로 2주간 출장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뜻 내가 갈 수 있다고 회사에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런 일을 하는 나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가족의 시간과 체력과 정신력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면 그게 과연 내가 원하는 방식인지를 계속해서 되묻게 된다.
엄마로 사는 삶과 일로 성장하는 삶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 혹은 타협점을 찾아나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아이와 함께하면서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실현하는 방법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이제는 내 시간과 의지만으로 꾸릴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자신이 무엇이고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라는 것의 의미부터 새롭게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나의 바람도, 가족들이 보태주는 시간과 수고도, 어느 한쪽을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서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가능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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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날들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noh.hyounjung@gmail.com)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brunch.co.kr/@no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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