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명사가 된 남자, 오디세우스
필멸의 인간에서 불멸의 이름으로
올여름 가장 핫했던 남자는 누가 뭐래도 오디세우스다. 태어난 지 3천 년도 넘은 고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에 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언론이나 서점, 유튜브와 인스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이 들려오곤 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그의 이름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한 계절 동안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것만은 틀림없다.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 키워드의 검색량과 시간 경과에 따른 추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디세우스’라는 키워드의 검색량이 급증한 시점은 8월 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가 개봉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검색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대중이 영화 관람 전후에 영화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1년 전보다 검색량이 무려 5,000% 이상 증가했으니 그의 인기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책부터 읽고 가는 게 좋다는 조언에 따라 먼저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오디세이아>부터 읽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역시 오디세우스다. 어쩔 수 없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해 10년 만에 가까스로 전쟁을 끝냈는데 집에 도착하기까지 또 10년이 걸린 그 불운한 영화의 주인공 말이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책 <오디세이아>가 영화 <오디세이>의 원작이니 각색이 있을지언정 줄거리도, 주인공도 같을 수밖에 없다.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 오디세이.
이 세 단어를 수차례 반복해서 발음하다 보면 궁금해지지 않는가? 똑같은 이야기인데, 왜 영화는 <오디세이>고 책 제목은 <오디세이아>일까? 언어의 변화무쌍한 변신술이랄까, 끝없는 진화랄까, 한마디로 맨 처음 생겨난 모습 그대로 멈춰 있지 않고 끝없이 변화하는 언어의 놀라운 유연성에 그 답이 있다. 같은 말인데 나라마다 철자나 발음이 달라지는 단어도 있고 국경을 넘을 때마다 이름이 달라지는 물건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다. 고향 이타카섬을 떠난 오디세우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무려 20년이 걸렸다. 외눈박이 거인에게 부하들을 잃고, 돛대에 몸을 묶은 채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쏟고, 기억을 잃고 님프의 품에서 7년을 허송세월하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는 등 그야말로 길고 긴데다 파란만장하기까지 한 방랑이었던 셈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20년 만에 끝이 났지만, 그의 여정을 단 한마디로 압축한 ‘오디세이아’라는 고유명사는 진화를 거듭했다. 고대 그리스어 ‘오디세이아(Ὀδύσσεια)’는 라틴어 ‘Odyssea’로 변신했고, 다시 ‘긴 여정’이나 ‘오랜 방랑’을 뜻하는 영어 단어 ‘Odyssey’로 발전했다. 무더운 여름 전 세계인이 열광했던 바로 그 영화 제목 <오디세이(The Odyssey)>에 이런 진화의 결과가 반영돼 있다.
한마디로, 고대 그리스어를 한국어로 옮긴 책은 <오디세이아>로, 영국인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는 <오디세이>로, 각각 원문에 맞게 번역된 것이다. 만약 놀란 감독이 영어식 표기보다 고대 그리스어식 표기를 따르겠다고 결심했다면 극장에 걸린 영화의 제목이 <오디세이>가 아닌 <오디세이아>였을지도! (국립국어원은 ‘오디세이아’를 옳은 표기로 제안하지만, 고대 그리스 원음 표기 규칙에 따르면 ‘오디세이아’보다 ‘오뒷세이아’가 좀 더 정확하다는 설명도 있다.)
특정한 문학 작품을 일컫는 고유명사 ‘오디세이(Odyssey,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영어식 표기)’가 일반 명사 ‘odyssey’로 발전한 것 또한 진화의 결과다. 실제로 흥미롭고 모험 가득한 여정이라는 의미를 재치 있게 전달하기 위해 ‘odyssey’를 일반 명사 형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물섬>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소설 <납치(Kidnapped)>에서 ‘odyssey’를 ‘길고 긴 여정’이라는 의미의 일반 명사로 사용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오디세이아>에는 여러 신과 수많은 인간이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마치 ‘너희 인간한테는 절대로 넘지 못할 한계가 있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은 듯 신과 인간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수식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신’, 그리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필멸의 인간’이 호메로스가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기어이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영웅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필멸의 인간일 뿐이다. 간절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고. 신의 결심에 따라 운명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필멸의 존재, 그것이 바로 오디세우스의 실체다. 그러나 몸은 사라졌을지언정 그는 문학 작품 속에 새겨져 3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불멸의 이름이 되었다.
몰라도 괜찮지만, 알아두면 좋은 자투리 이야기
오디세우스 외에도 일반 명사, 형용사, 동사 등 다양한 형태로 영어에 각인된 신화 속 인물들이 있다.
* mentor
오디세우스가 떠나고 없는 이타카에서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던 멘토르를 기억하는가?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난 이후 줄곧 텔레마코스를 돕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영어 단어가 바로 우리가 흔히 ‘멘토’라고 부르는 mentor(조언을 건네고 도움을 주는 스승)다.
* tantalize
아가멤논의 증조부 탄탈로스에서 유래한 영어 동사. 신을 시험에 들게 하려 한 죄로 영원한 공복과 갈증으로 고통받는다. 눈앞에 음식이 보이지만 잡을 수 없고, 목까지 물이 차 있는데 마시지 못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 탓에 탄탈로스의 이름에서 비롯된 동사 tantalize가 ‘감질나게 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 herculean
놀라운 힘과 용기를 가진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에서 비롯된 단어. 형용사 herculean은 ‘초인적인’, ‘힘이 장사인’, ‘엄청난 힘이나 노력이 필요한’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김현정
읽고 쓰는 삶을 좋아하는 번역가입니다. 주로 경제경영 서적을 번역하고, 가끔 제 글도 씁니다. 취미는 책 사들이기입니다. 한강 작가가 어딘가에 적어둔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많은 책장’이라는 글귀를 가장 좋아합니다. 오늘도 책을 향한 저의 짝사랑을 불태우며 당당하게 책을 주문합니다. 이상은 높고 실천은 덜 하는 편이지만, 두루 책이라도 읽어두면 언젠가는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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