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ㅇㅇ입니다. 반갑습니다.ㅎㅎ”
일요일 오전, 우리 네 가족은 사슴벌레를 방생하러 동네 공원에 갔다. 늦잠을 자고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아이가 둘이 되고 달라진 점 중 하나는, 화장할 의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첫째 때는 꾸민 듯 안 꾸민 듯 화장하고 등원할 때조차 치마를 입는 패기가 있었는데 말이다.
내 피부와 비슷한 참나무와 흙밭에서 아이와 함께 사슴벌레를 방생하기 적당한 나무를 찾았다. 사슴벌레가 참나무 진액을 먹고 산다는 걸 알리 없었던 30대 후반 여자는 유아용 곤충백과를 보면서 배우는 세상이 참 많다. 둘째는 맑고 깨끗한 표정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렸고, 남편은 우리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간단히 방생한 뒤 다시 집으로 가려던 참에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뉴뉴다!!!“
”뉴뉴!!! 뉴뉴!!!!!!!“
뉴뉴의 첫 어린이집 생활 중 사귄 첫 친구. 찰랑이(별칭)였다. 머리가 단발로 찰랑거리며 예쁜 핀을 꽂고 등원해 많은 엄마들에게 딸로 오해를 샀던 찰랑이. 오늘도 찰랑이는 잘 정돈된 머리로 차분하고 다정하게 뉴뉴를 부르고 있었다.
찰랑이의 엄마는 키도 크고 여전히 날씬하고 예쁘다. 긴 머리에 세련된 외모의 그는 아들 찰랑이와 블루 계열로 맞춰 입은 듯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분명 오전 11시 무렵이었는데, 아이와 엄마는 이미 예술의 전당에 가서 전시를 하나 보고 공원에 들렀다고 했다. 저렇게 단정한 모습으로, 아이와 둘이 전시를 보고, 일찍이 공원까지 오다니. 여신의 후광이 비쳤다.
세수를 했던가 떠올려야 알 수 있던 나의 몰골과 시밀러룩은커녕 양말도 짝짝이로 신은 우리 뉴뉴. 잔뜩 부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 네 가족과 찰랑이와 찰랑이 엄마는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나란히 앉았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래잡기를 시작했고, 파란 하늘에는 배달 드론이 날아다녔다.
찰랑이의 엄마는 회사에서 남편을 본 적 있다고 했다. 남편도 자신을 알아본 아이 친구의 엄마에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남편은 점점 더 뚝딱거렸다. 교과서적인 아빠 모습으로 아이에게 길쭉한 문장으로 말을 건네는 남편이 신기했다. 문득 그녀가 미인이라서 그런 걸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이 스쳤다.
사슴벌레 집에 남아있던 톳밥을 한참 조물락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을 남편은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 그는 사진을 주겠다며 그녀의 연락처를 물었다. 맨숭맨숭하게 웃는 남편의 얼굴에서 흘러버린 세월을 느끼고야 말았다.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웃던 그의 모습을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메신저 프로필에 걸려 있을 찰랑이의 사진이 궁금해 보여달라고 했다가 남편이 보낸 긴 인사말을 보고 또 한 번 우울해지고 말았다. 남편은 그에게 ’안녕하세요. ㅇㅇ입니다. 반갑습니다 ㅎㅎ‘를 보냈다. 무려 세 개의 완성된 문장에, ’ㅎㅎ‘까지 붙이는 정성이라니. 내게는 ’ㅇㅇ‘ 두 자음만 보내는 남편의 짧똥한 문자와 비교되면서 또 한 번 격세지감을 느끼고 만 것이다. 그도 분명 내게 정성스럽고 길게 문자를 남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난 9년 동안 우리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운하고 속상하다가 오밤중에 아이들을 재우고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남편이 컴퓨터를 하고 있는 서재실에 굳이 찾아가서 쭈구리처럼 바닥에 앉아서 울고 만 것이다. 대화의 시작은 “나 요즘 자존감이 떨어진 것 같아.”였고, 남편은 조심스럽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계기가 뭐야?”라고 물었다. “왜 나한테는 메시지 할 때 ‘ㅇㅇ’만 보내?”라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을 하며 훌쩍거렸다.
사실 그날은 그와 내가 만나기 시작한 지 9년이 되는 날의 다음날이었다. ‘내가’ 스스로 주문한 기념일 티라미수 케이크를 초도 켜지 않고, 우걱우걱 퍼먹은 바로 그 다음날 말이다. 남편은 이날 이후로 ‘ㅇㅇ’이라는 자음 대신 ‘웅웅’을 보내는 성의를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ㅇㅇ보다야 낫다 싶다.
* 글쓴이 - 보배
에세이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를 쓰고, 공저 프로젝트로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https://brunch.co.kr/@sele 인스타그램: @bobae.writing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