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알리기협회 정기추천]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_추천위원 정지우
- 자본주의에서 ‘겸사겸사’ 인간성을 갖고 살아가는 법
지금까지 읽은 인류학 책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오가와 사야카, 지비원 역, 갈라파고스)를 꼽는다. 처음에는 의구심 반으로 ‘청킹맨션’이 뭐야, 그런 다른 나라 한 구석의 이야기가 와 닿을 리 없잖아, 하는 마음으로 펼친 책이었다. 그런데 막상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몰입해서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이야기는 일본의 인류학자인 오가와 사야카가 홍콩의 ‘청킹맨션’에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킹맨션은 탄자니아에서 온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저자는 그곳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가지만 한동안 별다른 실마리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청킹맨션에서 ‘자칭’ 보스라고 하는 카라마를 만나면서부터다. 카라마는 저자가 자기를 알게 된 게 “정말 행운“이라고 하면서, 저자를 데리고 다니며 맨션 곳곳과 생태계를 알려준다.
책은 그렇게 보스와 함께 청킹맨션을 탐사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임기응변이고 ‘겸사겸사’로 이루어진다. 가령, 상인은 중고차를 거래하면서 건축자재를 구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으면 그것도 함께 알아보고, 마침 다른 사람이 보내는 컨테이너에 빈자리가 있으면 거기에 건축자재를 끼워 보내기도 한다. 탄자니아인들이 모인 조합에서는 누군가 병들거나 죽으면 동포들이 돈을 모아 돕지만, 그 관계가 꼭 ‘내가 너를 도왔으니 너도 나를 도와야 한다’는 식으로 계산되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는 사업가와 브로커, 전과자와 성매매 여성, 미등록 이주민, 심지어 마약상까지 뒤섞여 있다.
이들은 친구인지 거래처인지 경쟁자인지 도무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로, 서로 필요할 때는 돕고, 필요 없을 때는 각자의 길을 간다. 철저한 계약도 아니고 순수한 우정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름다운 공동체도 아닌 이 기묘한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살려준다. 특유의 느슨한 유대로 매일을 살아내는 이들의 생존기는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박진감 넘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도 단순 기록에 불과했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책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저자만이 갖고 있는 관점이다.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추적해나가면서도, 그 이야기에 대한 본인만의 해석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양한 측면에서 이들 공동체가 조명되는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타자의 ‘사정’에 개입하지 않고, 구성원 사이의 엄밀한 호수성이나 의무와 책임도 불문한 채, 무수히 확대 증식하는 네트워크 내 사람들이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이들은 부담 없는 ‘서로 돕기’를 촉진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안전망safety net’을 만들어나가고 있다.“_96-97p
그들은 철저히 각자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가며 서로 ‘겸사겸사’ 돕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서로를 위하기만 하는 너무 착한 이웃도 아니고, 집단에 봉사하는 철저한 집단주의자들도 아니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 서로를 마음껏 짓밟고 이용해도 좋다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겸사겸사’ 서로 도움이 되는 선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 모습이 참으로 미묘하고도 신비한 구석이 있다.
”돈벌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서로 승인함으로써 타자와의 농밀하고 성가신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거나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드나들고, 상대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자신이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서로 허용하고 허용받는다. (...) 돈벌이야말로 사회를 만드는 놀이라는 것이다.“_282-283p
돈벌이를 너무 당연한 삶의 전제조건이자 ‘놀이’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은 나름의 ‘즐거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어쩌면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참고할 만한 모델처럼 느껴진다. 이익 추구를 터부시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자기 이익만을 위해 모든 인간성을 버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필요한 건 함께 놀듯이 돈 벌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때론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어주기도 하면서.
* 추천위원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을 썼다. jiwoo9217@gmail.com
* ‘좋은책알리기협회’는 좋은 서평과 함께 좋은 책을 알리고자 여러 추천위원들이 모인 협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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