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가슴 깊이 남았던 시 한 소절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구절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마음은 움찔했다.
내가 뜨거운 적이 있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뜨거움에 대한 동경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된 나는 열정이 많다는 소리를 적지 않게 들어오며 살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마음이 뜨거워야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그 인식이 박혀서 더욱더 삶을 치열하게 살려고 스스로를 채근했던 것 같다.
열정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전공 분야 중 한 부분만 깊게 파기도 했고, 누군가를 뜨겁게 깊게 파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다 보면 무언가에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주인공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나는 여러 뮤지컬을 보며 그 불씨를 쫓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열정이 많았던 나는, 그만큼 큰 충격도 많이 받았다. 모든 일은 당연히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고, 나는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데 풀리지 않는가에 대한 억울함과 좌절감 역시 남들보다 컸다. 그럴 때는 뮤지컬을 보며 주인공이 되어 죽어도 보고, 성취도 해보고, 배신도 해보고, 질투도 해보며 그 순간의 마음을 원 없이 불태웠다.
그동안 내가 접했던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불씨가 활활 타올랐던 뜨거운 뮤지컬을 꼽아보라면, 나에게는 단연 뮤지컬 '곤투모로우'다. 뮤지컬 곤투모로우는 한국의 대표 창작뮤지컬로 2016년 초연 후 올해 10주년을 맞는 동안 수 많은 팬덤을 양산한 극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용부터 출연진, 그리고 무대연출까지 그 모든 게 빨간 열정 그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곤투모로우는 갑신정변을 일으켰어나 3일 만에 실패하고 결국 암살당한 김옥균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재창조한 이야기다. 휘몰아치는 격변의 시대의 혁명가와 조선의 마지막 왕, 그들이 꿈꾸던 내일에 대한 이야기는 느와르 같은 전개와 흡입력 있는 무대예술에 강력한 넘버와 주인공간의 밀도 높은 심리묘사까지 그 무엇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특히, 현장의 예술이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을 것 같은 리와인드씬이나 총격신을 이렇게도 쫀득하고 밀도 높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충격과 감탄이 정말 컸다.
만약 좋아하는 배우가 이 극에 나온다면 더욱더 이 극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의상변화와 넘버, 그리고 안무와 대사까지 대놓고 '멋짐' 그 자체여서 심장이 진정이 안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극의 첫 등장신부터 그냥 한마디로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이유 없이 극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
주인공을 더없이 멋있고, 더없이 처연하게 만든 건 뭐였을 까. 겉으로 보면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그 마음 안을 보면 '신념'과 '사랑'이라는 것이 그 뿌리가 돼서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새로운 개혁을 꿈꾸는 신념, 내가 가진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신념, 나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주인공들 사이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극이 휘몰아치듯 끝나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극을 보고 나오면, 마치 안도현 시인의 시구절을 처음 만났던 그 시절처럼 왠지 움찔하고 작아지며 숙연해진다. 그리고 집에 조용히 걸어가면서도 아직도 온기 가득한 연탄재를 결코 내려놓지 않고 낮에도 밤에도 품고 앓다가 결국 다음 관람일자를 찾아 헤맨다.
넘버 '죽어 얻는 삶' 중
빛이 보인다 내 두 눈에
가슴이 뛴다 내 심장에
또 다른 시간
죽어 얻는 삶 빛을 향하여
다시 얻는 삶 빛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