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 그건 너무 정신분석학적이다.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롤랑바르트, <애도일기>, 김진영 역, 걷는나무)
소중한 존재와 이별에서 오는 슬픔은 사실 대상을 상실한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애도하며 운다. 나는 프로이트가 밝혀낸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애도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애도작업이란, 상대에게 투여했던 내 존재의 일부를 회수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소중히 여기면, 나의 존재 일부를 잠시 빌려준다. 그리고 그가 떠난 이후, 나를 다시 회수할 때까지는, 슬픔 속에서 애도 작업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다. 슬픈 건 그 존재 자체라기 보다는, 그 존재와 내가 맺은 관계다.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가 내게 해주었던 말, 그가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었던 그 마음에 내가 담겨 있다. 나는 나를 바라봐주던 그 방식, 내가 기거하던 하나의 세계, 즉 나의 일부를 잃었음을 애도한다. 마찬가지로 내 세계에 그를 들였던 일, 그리하여 내 삶의 일부가 되었던, 나와 함께 꿈꾸고 느끼며 이 세계를 이루었던, 어찌 보면 나의 일부를 잃었기에 슬프다.
슬픔은 그렇게 내주었던 '나'를 다시 되돌려받을 때쯤, 끝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떠올려도 그렇게 슬프지 않다. 그와 나는 분리되었다. 그와 함께였던 과거, 그와 함께 이루었던 세계도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 자리는 대신 다른 것이 채웠거나, 내가 스스로 채웠다. 아버지를 잃은 자녀는 스스로 아버지가 됨으로써, 그 자리를 채움으로써 애도작업을 끝낸다. 하림의 노랫말처럼, 많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 애도작업이 끝나고 나면, '당신이 알던 나를 이제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알던 당신도, 내가 알던 나도 분리된다.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가끔은 삶이라는 게 참 허무하기도 하다. 사랑이 다 뭔지, 이별은, 슬픔은 또 다 뭔지, "시간이 결국 다 해결한다."라는 말은 마치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격렬했던 감정이나 욕망, 그 절실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다 똑같은, 그저그런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모든 인간은 그냥 리비도(사랑 에너지)를 타인에게 투여했다가 회수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리비도 기계'로서의 인간 삶은 어느덧 끝이 난다.
아마 삶이란 허무한 게 맞는 것 같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생을 걸고 함께했던 이들도 결국 모두 떠나가고, 나도 이 세상을 두고 떠날 날이 온다. 그토록 절실했던 나의 모든 감정들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선 또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똑같은 일들을 반복할 것이다. 사랑했다가 이별하고, 잊고 다시 사랑하고, 슬픔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희미한 기억이 되어갈테지.
하지만 허무하다고 하여,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그 무엇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그럴 수 없다. 슬픔이 올 걸 알고, 허무할 것도 알지만, 그래도 오늘 사랑하는 것이다. 오히려 허무하기에, 할 것은 사랑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한 만큼 슬퍼하다, 다시 사랑하고, 그런 일들도 이제 지쳐갈 무렵, 이 삶과의 최종적인 작별을 하면 된다. 이제 더 사랑할 일도, 슬퍼할 일도 없겠구나, 이렇게 나의 삶도 끝에 다다랐구나, 하며. 내게도 그 수많은 기쁨과 슬픔을 지나, 결국 이 삶과 이별할 날도 올 것이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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