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꽤 예측 가능했다. 중간고사를 보고 나면 기말고사를 봤고,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방학을 맞이했다. 학년이 끝나면 당연하게도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도 모두 비슷하게 살아갔다. 나이를 먹으면 다 같이 새로운 반에 배정되었고, 때가 되면 졸업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내 주변에서는 제각기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고, 내 인생의 경로 역시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선택의 자유가 생겨났다. 졸업을 위해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이 정해져 있기는 했지만, 그 밖의 수업은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물리학과 학생이었지만,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을 곧잘 들으러 다녔다. 동기들이 물리학 전공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다른 단과대학 건물을 기웃거리고 호주와 스위스로 교환 학기를 다녀왔다.
졸업을 위해 뒤늦게 전공 학점을 채우다 보니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군대에 갔다가 돌아온 복학생, 대학에 늦게 온 나이 많은 후배들과 뒤섞여 수업을 들었다. 졸업 후에 누구는 대학원에 가고, 누구는 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누구는 취직했다. 전공을 바꾸기 위해 편입 시험을 준비하거나,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제각기 자기 길을 찾아 가는데,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남들을 따라 변리사 시험을 준비해 보기도 하고,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물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길은 찾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마케팅 직군에서 일하고 있다. 물리학과를 졸업해서 마케팅을 한다니, 주변에서 의외로 여긴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내가 마케팅 직군에 종사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다른 학과 수업을 들으러 다녔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사소한 무언가가 지금의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효과가 증폭되어, 토네이도를 불러왔다는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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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나비의 날개짓으로 토데이도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카오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가상의 시나리오이다(출처: Unsplash의 Calvin M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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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츠는 날씨 예측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예측값이 제대로 나온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동일한 시뮬레이션을 한 번 더 돌렸는데, 처음과는 전혀 다른 그래프가 그려졌다. 도저히 동일한 조건에서 시뮬레이션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니, 원인은 아주 사소했다. 계산 속도를 높이려고 수치 하나를 소수점 넷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입력했을 뿐이었다. 그 미세한 차이가 완전히 다른 날씨를 예측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처음엔 있는지도 몰랐던 아주 작은 오차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몸집을 불려 나간다. 하루 뒤엔 티도 안 나던 차이가, 열흘 뒤엔 아주 다른 날씨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소수점 넷째 자리 숫자나 나비의 날갯짓 같이 아주 작은 차이로도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를 카오스라고 부른다. 나비효과는 날씨를 비롯해 초기 조건에 민감한 카오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여행을 가기 전 아무리 일기예보를 열심히 찾아본다고 해도 정확한 날씨는 당일이 되어야 알 수 있다. 보통 하루이틀 정도의 날씨는 무난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1~2주 뒤 날씨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분명 여행을 계획할 때는 날씨가 맑다고 했는데 막상 짐을 쌀 때가 되면 비 소식이 들려올 수도 있고, 남태평양 어딘가에서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구름 한 점 없을 수도 있다.
‘혼돈의 카오스’라는 동어 반복으로 장난스럽게 불리기도 했던 카오스는, 얼핏 보면 어떠한 질서도 없이 제멋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카오스는 사실 정해진 법칙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론적으로는 초기 조건을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론적인 시스템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초기 조건을 완벽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데에서 혼란이 발생한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30 cm 자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1 mm 보다 더 작은 단위로 측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정밀한 측정 장비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결과 눈에 보이지도 않던 격차가 시간이 흐르며 커다란 간극으로 벌어진다. 그렇게 카오스는 예측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우리 눈에는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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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듯이, 나의 인식 범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인생은 분명 내가 내린 수많은 선택으로 만들어졌지만, 순간순간의 선택이 어떠한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나는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러니 내 인생에는 나비의 날갯짓에 비견될 만한 수많은 사건이 있었던 셈이다.
대학에서는 철학, 음악, 영문학 등 다른 전공 수업으로 시간표를 채우기도 했고,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이 아닌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궁금해했다. 물리를 애정하기는 했지만, 내 관심사는 물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책모임을 운영하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생각의 지평을 넓혔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글과 강연, 영상으로 내 생각과 경험을 풀어내기도 했다.
이런 잡다한 활동들이 무언가 기념할 만한 결과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비효과를 떠올리면 물리학이라는 굵직한 흐름 말고도 내 인생에 수많은 소수점 숫자가 존재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입력값을 소수점 넷째 자리에서 반올림했을 때 완전히 다른 날씨를 예측했듯이, 내 인생에 잠시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마케팅이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마케팅을 경험해 보니 잡다해 보였던 관심사들이 뜻밖의 자리에서 쓰이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파고들던 습관은, 낯선 산업과 고객을 빠르게 이해해야 하는 마케팅 에이전시 업무에서 유용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로 생각을 풀어내던 일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마케팅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아무렇게 흩어져 보였던 관심사들이 나를 마케팅이라는 직무로 이끌고 있었던 셈이다.
카오스처럼 도통 예측하기 어려운 나의 인생이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나는 매 순간 어딘가에서 소수점 넷째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이, 예측할 수 없다고 해서 내 인생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두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고, 그 방향은 분명 과거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모인 결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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