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
나에겐 1만 번 시도한 일이 있다. 바로 BTS의 노래를 1만 번 들은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대의 나는 대중음악 작곡가 겸 작사가를 꿈꾸었다. BTS는 나에게 최고의 레퍼런스였고 말이다.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꼈다. 강렬한 비트와 화려한 멜로디는 따뜻한 가사를 조화롭게 받쳐주었다. 따뜻해서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열렬한 응원을 건네받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에도 스스로 힘을 내어 버텨보기도 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켜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나에게 단순히 멋진 가수가 아니라,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 되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는 힘찬 비트에서 용기를 느끼며 확언하듯 가사를 되뇌었다. 나도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 치기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첫사랑에 빠진 미숙한 이처럼 처음으로 어떤 일을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다린다는 봄 왔으니, 이번엔 놓지 말라고.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 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입춘 - 한로로>
아직 시작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마음에 기타 소리가 잔잔하게 깔린다. 그러다 봄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리듬은 잘게 쪼개지고, 힘차게 드럼이 등장한다. 간주 부분의 두 옥타브를 넘나드는 기타 솔로가 백미인데, 비록 현재의 위치는 초라할지언정 마음과 열정만은 화려한, 설레는 봄의 시작이다. 그 마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해야 하는 일들만 있던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꿈이 생겼다. 하지만 생업을 놓을 수는 없었다. 취업의 과정이 쉽지 않았고, 취업하고 나서도 빚을 갚아야 했기에 돈 무서운 줄을 알았다. 혈기 왕성한 20대의 나는 마음만큼은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움켜쥐고 싶었지만,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생업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했다.
우선 음악의 기본 문법인 화성학과 코드를 익혔고, 이후 본격적으로 컴퓨터 작곡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웠다. BTS의 <Fake Love>를 따라 만드는 작업이 첫 과제였다. 전 세계의 유명 프로듀서들이 협업해서 만든 원곡의 ‘돈을 바른’ 소리와 달리, 500원짜리 코인노래방 반주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내가 놓친 소리가 많았다. 처음엔 강렬한 소리만 편향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선생님이 소리의 길을 안내하듯 구간을 반복해서 들려주며 소리를 잡아내자 숨어있던 악기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목소리를 짧게 잘라 악기처럼 만든 보컬 찹, 소리가 점점 커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라이저, 잔잔하게 배경처럼 깔리는 앰비언스까지. 그들은 엄연히 제 위치에 자리하며 노래를 완성하고 있었다. 광대하게 펼쳐진 악기의 세계 속에서 나는 세상 모든 소리를 다 들을 기세로 컴퓨터 속 가상악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곤 했다.
서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곡가들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에 근무지까지 변경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 수업을 받거나 작업실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야간에 운행하는 올빼미 버스를 애용하곤 했다. 작곡가, 가수, 악기 연주자 지망생들과 크루를 만들어 함께 앨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배울 게 참 많았다. 청음, 피아노, 보컬, 작사, 반주 작곡, 멜로디 작곡, 음악을 선명하게 해주는 음향 작업인 믹싱과 마스터링, 심지어는 앨범 기획인 A&R 업무까지.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비효율적이기 그지없고, 미련하고 답답하게도 무언갈 계속해서 배워나갔던 것 같다. 그간 내가 평생 해 온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공부밖에 없기도 했거니와 요령도 없었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서서히 마음속에 비교라는 것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다. 이미 나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들과 나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매년 음대 졸업생이 수천 명씩 쏟아졌고, 그들조차 생업을 위해 음악과 무관한 일을 하는 판국이었다. 전업하게 될 미래를 상상하면 막막하고 불안했다. 설렘을 느꼈던 멋진 노래들은 어느새 나를 옥죄어왔다. 그 노래들에 비해 내가 지은 노래들이 너무 보잘것없었다. 나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구겨진 종이처럼.
밤샘 작업과 스트레스, 거기다 간편하고 질 나쁜 식사까지 더해지자 갑상샘저하증이 발병했다. 피곤함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몇 개월 만에 완성될 예정이었던 음원 발매는 크루 내 의견 차이로 1년을 끌게 되면서 지쳐갔다. 앨범 작업을 한다는 설렘은 온데간데없었다. 매주 똑같은 노래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드럼 소리 하나에 얽매이는 과정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무언갈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좁은 작업실에서 혼자 악기 소리 하나하나 누르는 것이 이제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 라이프 스타일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그간 쏟았던 3년이라는 시간과 에너지, 돈 같은 매몰 비용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작곡과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고, 결국 끝이 도래했다.
뒤늦게 도착한 의미
그만두기로 한 건 난데, 처음엔 이별 노래를 들을 때 음악을 떠올릴 정도로 꿈을 놓친 것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음악에 실연당한 이처럼 굴었다. 한동안 노래를 듣지 않았지만 결국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음악이란 실패가 아니라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꿈꾸는 듯한 전자오르간 소리 뒤에 꿈을 지나온 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드럼은 그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는 많은 가사를 급하게 내뱉지 않는다. 대신 차분한 속도로 자신의 마음을 읊조린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본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이다. 비효율적이라고, 낭비했다고 느껴졌던 시간에도 진심은 결국 무언가를 남긴다. 바로 사랑과 배움을. 뒤늦게 지난 경험을 따라가며 이 경험이 나에게 남긴 의미를 받아들여 본다. 나와 맞지 않는 선택임을 깨달았다면 욕심, 불편함, 피로감은 내려놓고, 나와 맞는 일, 즐거움과 평온함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를 채울 것은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 노래 덕분에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멋진 노래를 만드는 유명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 있었다. 그 두 번째의 마음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그 마음은 나와 함께 갈 수 없는 마음이다. 반면, 나의 첫 번째 마음은 자유롭다. 언제든 실현할 수 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건 음악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게 나를 채워야 하는 마음과 행동이다. 마음에 드는 곡을 코드 반주를 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거나, 진실의 미간을 지어 보이면서 감탄하며 노래를 듣는 것, 노래에서 매료된 점을 글로 옮기는 것들 말이다.
“당신의 사랑은 늘 내 마음속에 있어요. (...) 이제 기억 속에서 그대를 찾아요. 그것만으로 괜찮아요. 이별을 이겨낼 힘을 그대가 주었으니까.” <눈을 감고 - TAKUYA, SHU, Shin 커버(원곡 Hirai Ken)>
아련한 피아노 선율, 이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리는 현악기의 섬세한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음악이 마냥 흘러가지만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드럼까지 더해지면 반주가 완전해진다. 여기에 세 가수의 조화로운 음색, ‘정말 그 만남은 아름다웠었지’하고 미소 지으며 회상하는 듯한 가수의 표정, 그리고 아름다운 가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별의 과정에서 내 속에서는 수많은 질문이 일었다. 왜 좋았던 일을 계속 좋아하면 안 되는 거지? 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기죽은 채로 살아야 하지? 꿈은 꼭 이루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인지 해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 일인지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꿈을 놓치는 건 필연적인,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게 아닌가. 꿈에는 애초에 짝사랑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진짜 내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를 알아가는 이 과정은 진짜 나의 꿈을 만나게 되는 더 큰 과정 속의 일이다. 이것까지가 내 꿈의 여정인 것이다.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놓쳐야 하는 게 있었다. 꼭 붙잡지 않고 자유롭게 흘려보내어 내 곁을 지나치다 또 불어오는 바람 같은 존재가 음악이었다. 뛰어들고, 또 놓쳐버려야 하는 것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뛰어들어야만 온몸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삶의 가능성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노래 취향이 조금 바뀌었다보니, 그 시절 듣던 노래들을 우연히 플레이리스트에서 듣게 되면 당시의 풍경들이 펼쳐져 향수에 젖게 된다. 그 시절은 노래처럼 끝나는 법이 없고, 재생버튼을 누르면 다시금 재생된다.
지금은 음악을 작업실이 아닌 차에서, 방에서, 또 여행지에서, 어디에서나 듣는다. 또 낮이건 밤이건 행복하건 슬프건 언제나 듣는다. 이제 음악은 소리라는 형태로 나에게로 들어와 글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저마다의 개성을 갖춘 음악들은 다양한 감정과 새로운 생각,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쯤 되면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살아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음악에서 무엇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소모하지 않고 지켜내는 방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비난하며 몰아붙이는 대신, 사랑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 마음을 아끼고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 당시의 나는 시간도, 에너지도, 나도 버리지 않았다. ‘나에겐 꿈이 있으니까!’하고 나를 둘러싼 힘겨운 일들을 버텨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조차도 버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음악을 더 깊이 즐기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나를 지킨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지켜나가기로 했다. 사랑과 나는 서로를 지켜나간다.
다소 무모했지만, 내 인생의 수록곡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폭발하는 열정의 시간은 일상을 고요하게 관찰하는 나날들과 어우러지면서 내 인생에 화음과 리듬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한다. 청자에서 독자로 변경된 것일 뿐,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웃음과 안녕을 바라며 곡을 짓듯 글을 짓는다. 아름다웠던 봄을 품은 채 이제는 여름으로 나아간다. 아직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 글쓴이 - 이우연
십 년간 매일 아침 차가운 숫자의 세계로 출근하지만, 하루의 끝에는 글을 쓰며 아직 완전한 동충하초가 되지 않은 자신을 확인한다. 우연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사람. 우연한 만남에 기뻐하면서도, 삶이 주사위 굴리는 것처럼 우연적으로만 느껴질 때는 주사위를 수백, 수천 번 굴리겠다고 다짐한다. 그것도 재밌게. 브런치 https://brunch.co.kr/@thiscoinc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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