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부고 앞에서 생각하는 동네 서점의 미래
사유와 자유의 시간
from. 강동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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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에서 책을 사는 손님에게 가벼운 안부를 묻듯 종종 질문을 건넨다. "이 책은 왜 고르셨어요?" 계산만 하고 나갈 생각이었던 손님들은 순간 당황하지만, 이 질문이 마중물이 되어 한동안 책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특히 10대, 20대 초반의 손님에게 자주 듣는 대답이 있다. "밀리의 서재에 없어서요." 나는 이 대답의 이면에 최근 독자들의 독서 습관과 종이책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책을 만나는 첫 번째 장소는 언제나 서점의 서가나 도서관의 책장이었다. 실물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고 겉표지를 살피며 목차를 훑는 행위가 독서라는 여정의 자연스러운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중의 독서 기본값은 디지털 구독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무제한 월정액'이라는 가성비와 편리함의 바다를 먼저 헤엄치다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거나, 미쳐 그곳의 물길이 닿지 않은 책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종이책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이라는 매체를 대하는 대중의 감각과 독서 생태계의 주도권이 역전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신호다.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손가락 몇 번의 스와이프로 수만 권의 책을 넘나드는 효율성의 시대.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텍스트에 즉각 접근하는 전대미문의 편리함을 얻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디지털 바다의 수면 아래서, 우리는 어쩌면 책과 사람이 마주하던 가장 고유하고 우연한 만남의 장소를 조용히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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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산: '종이책 고집'에 담긴 서점 생태계의 고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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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해진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별세 소식은 수많은 독자와 출판계에 깊은 애도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남긴 100권이 넘는 베스트셀러와 치밀한 미스터리 서사만큼이나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 것은, 그가 평생에 걸쳐 고집스럽게 지켜내고자 했던 '종이책과 동네 서점'에 대한 신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랫동안 자신의 모든 작품을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해 온 대표적인 작가였다. 디지털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그는 판권 계약서에 '전자책 불허' 항목을 단단히 붙들어 매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전자책이 보편화되면 마을 골목을 지키는 작은 동네 서점들이 설 자리를 잃고 빠르게 문을 닫을 것"이라는 깊은 우려 때문이었다. 서점원이 손으로 꾹꾹 눌러쓴 추천 메모를 보고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아이들이 서점 바닥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꿈을 키우는 그 물리적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던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본 전역에 외출 자제령이 내리고 동네 서점들마저 문을 닫아야 했던 비상 상황에서야 비로소 그는 35년 만에 대표작 7편의 전자책 출간을 한시적으로 '특별 해금'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답답해하는 젊은이들과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전하고 싶다"는 절박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결단조차 서점을 버린 것이 아니라, 독자를 향해 내민 한시적 구원의 손길이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펜을 쥔 목적은 단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에 있지 않았다. 자신의 글이 인쇄되어 동네 서점 서가에 꽂히고, 누군가 그 서점을 찾아가 책을 집어 드는 그 온기 어린 생태계 전체를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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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과 인터넷 플랫폼만 남은 세상의 삭막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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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그토록 염려했던 대로, 혹은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방향대로 골목길의 동네 서점이 모두 자취를 감춘다면 어떨까? 대형서점과 인터넷 쇼핑몰, 그리고 거대한 디지털 구독 플랫폼만 남겨진 세상의 모습 말이다.
대형 플랫폼과 온라인 서점은 철저히 자본과 데이터 알고리즘의 논리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책’, ‘남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 ‘수익성이 높은 도서’만을 매끈하게 선별해 화면 상단에 띄운다. 정교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곳에는 ‘뜻밖의 발견(Serendipity)’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모든 선택은 좁은 검색창을 거치거나 AI가 짜놓은 취향의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만 이뤄진다. 결국 독자들은 모두 비슷한 책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소비하게 된다.
반면 동네 서점은 ‘서점원의 취향’과 ‘지역사회의 숨결’이 살아있는 다양성의 보루다. 거대 베스트셀러 순위표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바꿀 독립출판물, 우리 곁에 가까이 가닿는 지역 작가의 목소리, 서점주가 밤새 고민해 배치한 독창적인 큐레이션이 손님을 기다린다. 동네 서점은 단순한 책 유통 공간이 아니다. 늦은 밤 골목길을 밝히는 문화적 등대이자, 낯선 이들이 모여 가치를 논하고 삶의 고단함을 나누는 물리적 공동체다.
효율성만 남은 도시는 정서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베스트셀러만 진열된 대형 매장과 화면 속 픽셀로만 존재하는 디지털 플랫폼 속에서, 책은 더 이상 깊은 대화와 사유의 매개체가 아니다. 그저 신속하게 소비되고 잊히는 일회성 콘텐츠로 전락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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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의 시대에 '존재'의 감각을 회복하기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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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 없어서" 종이책을 찾아 서점에 왔다는 손님의 고백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희망의 단서를 제공한다. 디지털의 바다가 아무리 넓게 펼쳐져 있어도, 그 수면 아래에는 데이터화될 수 없는 삶의 정수와 종이책만의 독보적인 가치가 여전히 단단히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접속'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수만 권의 책에 닿을 수 있어 모든 지식을 소유한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손에 잡히는 실물 감각과 깊은 몰입의 기억은 옅어져만 간다. 종이의 질감과 냄새, 인쇄된 문장 위를 지나가는 손가락의 감촉, 그리고 그 책을 만나기 위해 걸었던 골목길의 풍경과 서점 문을 열 때 느껴지는 고유한 공기는 결코 스트리밍 데이터로 환산될 수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떠났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이 사는 동네에는 아직 서점이 있습니까?"
동네 서점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가게 하나가 문을 닫는 일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우연과 다양성,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물리적 온기를 잃어버리는 문화적 참사다. 거대한 플랫폼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동네 서점이라는 작은 지킴이들을 지키는 일은, 종이책 몇 권을 더 사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사람답게 사유하고 교감할 '생태계의 다양성'을 수호하는 일이다.
오늘 저녁 퇴근길, 당신의 삶에 뜻밖의 행운(Serendipity)을 선물하기 위해 가까운 동네 서점의 문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서가 구석, 디지털 목록에는 없는, 오직 당신만을 인내롭게 기다려온 단 한 권의 종이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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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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