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났다. 창밖으로 이전보다 한결 시원해진 바람이 불어온다. 매미 우는소리가 여전히 무더운 여름을 물고 늘어지는 것만 같다. 해남으로 이사와 시골 작은 학교로 전학 온 아이들의 첫 여름방학인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짧다. 한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2학년인 둘째 아이는 방학이라도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학교를 간다. 돌봄을 신청하지는 않았고, 고등학생도 아닌데 보충 수업을 받으러 가는 것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다행히 아이는 방학 중에 학교 가는 것이 그렇게 싫지가 않은 것 같았다. 늦잠을 잘만 한데도 아침 7시면 눈을 부릅 뜨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걸 보면 뭔가 달라지긴 했다.
작년 1학년은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한글을 무조건 때기보다는 12월생인 아이의 발달 과정을 고려해 아이 리듬과 욕구에 맞추어 그야말로 까막눈으로 실컷 놀면서 1년을 잘 살아왔다. 하지만 일반 공교육학교로 전학 오게 되면서 더 이상 한글을 더듬거리며 읽고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솔직히 이 개구쟁이 녀석이 수업 시간 동안 가만히 잘 앉아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면 늘 하시는 말씀은 “잘 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금세 따라잡게 될 거예요!” 하고 나를 안심시켰다. “몸으로 너무 잘 놀아서...” 하고 웃으셨다.
ⓒ 2026.윤경 All rights reserved.
그러다가 1학기 중반 쯤에 선생님 연락을 한 번 받았다. 한글을 보충할 수 있는 외부 도우미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한 번 신청해 보려고 한다고 했다. “경쟁이 좀 있어서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뭐랄까,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여태껏 한글이 안되는 아이를 보면서 참 난감했다. 그림책을 찢어져라 매일 보고 정말 좋아하면서도 한글을 배우려는 의지는 안 보이는 것이 참 이상하기도 했다. 옆에서 조금 알려 주려고 하면 다 안다고 자존심을 세우고 도망갔다. 뭐 이렇게 고집스러운 아이가 다 있나 싶어서 감정이 울컥 올라오기도 했다.
참다 못한 누나도 동생에게 한 소리를 했다. 2학년 친구들 사이에서 자존심도 안 상하나 싶었지만 친구들과 그저 놀기 바빴다. 저 당당함이란! 멘탈이 강한 건지 말을 안 듣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뭐든 다 때가 있고 좀 더 기다려보자 싶었다. 첫째 아이도 초등학교 전까지 한글을 못 뗀 체 무진장 놀다가 1학년에 입학했었다. 그럼에도 1학년 교과 수업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글을 배우고 뭐든 쓰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도 미리 익혀 온다고 해서 더 좋을 건 없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기까지 했으니, 내가 너무 천하 태평한 엄마도 아니라고 본다.
ⓒ 2026.윤경 All rights reserved.
둘째 아이도 2학년이 되어서야 이도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몸의 변화와 함께 아이의 배움의 세계도 달라졌다. 집에서 글자가 많은 책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 해도 중요한 신호였다. 뭔가 따라 쓰기도 했다. 그림만 주구장창 그리던 아이가 그림에 글자도 써넣으려고 내게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기쁘기도 했지만 담임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님도 이 아이의 변화를 같이 느끼고 있을까, 답답하지 않을까, 수고스러울까 봐 걱정이 서렸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내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면서 한글도 배우고 있다고 걱정 말라 했다.
생각만 해도 ‘하아’ 하고 뜨거운 한숨이 나온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이 여름 날, 우리 집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하나 생겼다. 바로 둘째 아이가 2학년 2학기를 앞두고 비로소 한글에 눈을 뜨고 무언가를 줄줄 읽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문자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지나가는 간판에 눈과 고개가 돌아가고 보이는 글자를 읽어대느라 연신 중얼중얼 거린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담임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시골 작은 혁신학교라 여러모로 배려가 있었을 거라 여긴다. 둘째 아이 말고도 한두 명 더 한글을 깨치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 참고로 아이 반 학생 수는 총 7명이다. 올해 담임 선생님 몸 속에 만들어졌을 사리도 비슷한 숫자이지 않을까 싶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열심히 하는 순우가 참 대견하고 예뻐요.” 한글 선생님께 온 것이다. 뜻밖의 말이라 고마운 마음과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 이사와서 아이에게 자기 속도대로 적절히 끌어주고 충분히 너그럽게 보아주는 선생님들 곁에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의지가 된다. 언젠가 더 빨리, 더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어린 시절을 충분히 누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어른들 품속에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힘을 잘 비축해 두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는 도움 선생님과 배우는 건 한글이 아니라 수학이란다. 한 아이의 시간을 믿는 일, 아이들은 기다려주는 시간 속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