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는 호밀빵을 사러 다녀왔다. 꽤 무거워진 배를 이끌고, 호밀빵 하나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프랜차이즈 빵집 말고, 처음 보는 상호의 빵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현재 위치로 빵집을 검색해서 호밀빵을 파냐고 물었다. 한 군데의 빵집에서 통밀 식빵을 판다고 대답해 왔다.
호밀빵과 통밀 식빵은 엄연히 달랐는데도 나는 그냥 통밀 식빵 하나를 사러 나섰다.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걷고 싶었고, 햇볕을 쐬고 싶었고, 바람을 맞고 싶었다. 식빵을 사러 가는 일은 그 모든 것이 충족되는 일이다.
사실은 집에서 나선 후에 전화를 했으니 그냥 무작정 나온 셈이다. 나오면 걷게 된다. 새벽 내내 갖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 책이라도 한 권 내고 싶다, 요가 수업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연어 덮밥을 먹는 나에게 엄마는 밖에 좀 나갔다 와, 네가 행복해야 아이를 챙기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왜 푹 찔리는 느낌이 들었는지, 나는 응, 대답하곤 정말 밖으로 뛰쳐나와서 걸었다. 통밀 식빵을 팔고 있다는 빵집까지는 걸어서 십사 분이 찍히는 거리다. 이것마저 적당해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늘로 가면 바람이 불어 춥고, 햇볕 아래로 가면 바람을 뒤덮을 만큼 더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씨였다. 나는 니트 가디건을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가, 다시 입었다가 했다.
브래지어를 안 한 지는 벌써 칠 년째가 된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내 가슴팍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을 만난다. 나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편이다. 가슴을 흘깃거리는 아저씨를 만났을 때는 고개를 거북이처럼 쭉 빼고 눈을 부릅뜬 채 발을 빠르게 굴러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이 구역의 미친년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어떤 아줌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왠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호밀 식빵은 투명한 비닐에 1차 포장되고 2차 포장지인 비닐도 상표 없이 투명하기만 해서 사람들은 내가 무얼 사고 걸어가는 중인지 다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개인정보를 흔들면서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옷 바깥으로 비치는 젖꼭지보다 그게 더 야한지도 몰랐다. 식빵이 벌거벗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벌거벗은 느낌이었다고 쓰고 싶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오늘 하루를 식빵을 사러 간 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매일의 기도에 가까운 일이다. 매 순간의 행위로 오늘이 정의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곤 한다. 하루가 큰 원이라면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냥 작은 원을 만든다. 그러다 보면 우울해진다. 큰 원을 포기하는 것 같아서다.
호밀빵을 사러 갔다가 통밀 식빵을 사왔다. 나는 자주 이런 식이다. 원하는 것과 얻는 것이 다르고, 가려던 것과 도착한 곳이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긋남이 틀린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호밀빵을 원했기 때문에 걸었고, 걸었기 때문에 오늘의 운동량을 충족했다. 의도가 삶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의도와 삶 사이의 틈에서 하루가 생겨나는 것 같달까.
큰 원을 만드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닐지도 모른다. 큰 원이란 만들어지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그냥 만들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내 의도와는 상관 없이 어느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식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통밀 특유의 텁텁하고 묵직한 맛이 혀에 퍼졌다. 호밀빵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오늘 내가 걸은 십사 분과, 가디건을 벗었다 입었다 한 일과, 이 식빵이, 오늘은 오늘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 통밀 식빵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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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서나연*코너소개 - 몸이 단단해져야 마음이 마음껏 약해질 수 있다고 믿기에,강해지는 몸의 감각과 약해지는 마음의 물성을 매달 전합니다.*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