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다시 걷다.
좁은 길을 벗어나 차가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길가로 나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학교에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2주간의 캠프가 시작되었고, 그 날은 반나절 정도 하이킹을 하고 있던 때였다.
천천히 길을 걷다가 또 차가 오면 잠시 멈춰 서기를 반복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갈대가 무성한 너른 밭에 이르렀다. 아이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갈대를 손으로 만지며 나에게 매우 인상적인 말을 했다.
“얘는 길가에 피어있네요. 저기 갈대밭 무리에서 떨어져서요...엄마는 요즘 많이 외로워해요. 집에 돌아가 본지 2년이 넘었다고 하면서요..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외로워요..”
고개를 떨구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에 왠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나는 아이의 옆에서 잠시 동안 말없이 걷다가 이내 괜히 목소리를 높여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이반, 나도 엄마 아빠를 만난 지 1년이 넘었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만, 나에게는 아일랜드가 이제 집이니까 가족과 함께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의기소침한 이반을 위로하기 위해 나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면서 힘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반이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지나도 외로운 사람이군요. 엄마도 나도 그리고 레지나도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에요.”
그 아이가 연민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통해 순간 눈물이 왈칵 흘러나왔다. 그리고 언제나 안간힘을 써서 모른 척하려고 했던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나’라는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맞아. 나도 참 외롭게 살고 있었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동떨어져서 그렇게.’
먼지가 가득한 흙길을 이반과 함께 걸으며 나는 예상치도 않은 시간에 또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위로를 받고 또 상처가 치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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