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로 워크샵을 진행할 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처음에는 모두 당황한다. “직업이나 인생 목표 말고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삶이 끝날 때 어떤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설명을 덧붙여도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러다 서서히 눈빛이 달라진다. 한둘씩 되고 싶은 사람이라거나 꿈꿔온 삶에 대해 꺼내놓으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저는 누구의 이야기든 편안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제 삶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가족들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평소엔 잘 들춰보지 않았던 소망을 주섬주섬 꺼내본다. 볼이 발그레해진 사람,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활짝 웃어버리는 사람, 타인의 소망에 힘껏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풍등처럼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나는 그 분위기를 깨는 질문을 던진다. “그 바람대로 살고 있나요?” 또 한번 정적이 흐른다. “아니요, 일하고 육아하느라 너무 바빠서요”, “지금은 제 마음 가누기도 힘들어요”, “누구 때문에 매일 괴로워서 그럴 여유가 없어요.”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등불은 어느새 멀리 물러나 있다. 중요하고 불가피한 이유들 때문에,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나중의 과제가 되어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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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괴로움을 느낀다. 미국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E. Tory Higgins)는 이를 ‘자기 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으로 설명했다. 실제의 나와 이상적인 나 사이의 간격이 클수록 공허함이 커지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들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실제 삶이 멀어질수록 불안과 우울이 증가한다. 결국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사이의 거리다.
물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밀린 고지서를 정리하며 반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평소 관심 없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을 위해, 삶을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다. 하기 싫은 행동조차도 사실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위한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선택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이들 때문에’,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라고 생각하는 순간 삶의 주도권은 내 손을 떠난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도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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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에서 만난 K는 요즘 우울하다고 말했다. 곧 업무 강도가 높은 부서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지금 팀은 정시 퇴근도 가능하고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새 부서는 야근과 출장이 잦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여유로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여유로운 삶이 제가 원하는 삶인데, 이제는 그걸 잃게 될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만한 걱정이었다. 과연 K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걸까. 하지만 먼저 살펴볼 것이 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였다. 여유를 상실한다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종종 두려움에 상상을 덧입힌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 갇혀 버린다. 그러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조차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의 정체를 알고 나면 대응할 여지가 보인다.
“언제 여유롭다고 느꼈었나요?”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차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을 볼 때나 산책할 때’ 여유를 느낀다고 했다. 한참 생각하던 그는 말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을 볼 때요. 아니면 산책할 때요.” 잠시 침묵하던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에 30분 정도는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종종 현실 자체보다 ‘내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이다. 게다가 우리는 원하는 삶을 지나치게 거창하게 상상해버리기 쉽다. 여유로운 삶은 휴양지에서 보내는 일주일이어야 하고, 외롭지 않은 삶은 언제든 달려와 줄 친구가 있어야 하며, 안정적인 삶은 일을 그만둬도 될 만큼의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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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원하는 가치를 삶 속에서 이뤄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여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잠깐의 산책으로도 가능하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오랜만에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 한 통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은 행동 하나이다.
실제로 에딘버러 대학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가치를 탐색한 뒤, 그 가치에 맞는 작은 행동들을 2주간 얼마나 실천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보다 실제로 얼마나 가치에 맞게 살아가는지가 우울과 불안을 더 잘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가치 자체가 아니라 가치에 따른 행동 하나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은 단순한 행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선택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삶이 남이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율성(autonomy)이라 부른다.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율성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 중 하나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높다는 사실이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자신에 대한 만족감은 원하는 삶에 도착했을 때 얻는 보상이 아니라, 오늘 하루라도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감각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삶이 내가 바라던 모습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삶 전체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를 떠올려보자.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는 것, 하루중 10분이라도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 가족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먼훗날 도착할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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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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