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Have a good day!'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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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를 마친 아이를 데리러 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별다른 말이 없이 두어 번 엄마를 불렀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떨어진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아이가 내려오는 길에서 눈을 떼지 않다가 멀리서 아이의 밤송이 같은 머리가 빼곡하고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데 그 시간은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그런 순간 중에 하나이다.
언제나 나와 눈이 마주치면 무지개 같은 웃음을 짓는 아이가 오늘은 웬일인지 가볍게 손만 흔들어 보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저 멀리서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신발 끝만 바라보며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상념에 젖은 철학자 같아 보였는데, 사춘기를 목전에 둔 소년의 반쯤 굵어진 목소리로 눈도 보지 않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눈치 없이 아이의 교복에 묻은 볼펜 자국을 보며 잔소리를 몇 마디 했다. 그 순간 아이는 굵은 눈물방울을 안경 아래로 떨어트렸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엄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이는 이제 소리 내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기도 했고, 뒷목이 찌릿해질 만큼 미안해져서 아이에게 재빠르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 6학년 애들 중에 ㅇ와 ㅇ가 있는데, 걔들이 요즘 계속 나를 아시아인 유튜버 이름으로 불러. 그리고 못생긴 아시아인이라고도 하고, 중국인이라고도 불러. 나는 중국인도 아닌데 말이야.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언젠가 한국인들 모임에 나갔다가 학교에서 자신의 아이가 놀림을 당했다는 말을 하며 속상해하던 사람의 얼굴이 기억났다.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보니 그 모습이 내 얼굴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지, 그 아이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등을 천천히 물어보았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축구카드를 하나 사주고 또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며 아이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했다.
그날 밤 나와 남편은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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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어진 쇼핑센터에서 필요한 몇 가지를 샀다.
전과 달리 화장실이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에 있어서 1층에서 계산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히려는 찰나에 나는 버튼을 눌러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때 엘리베이터 안에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3명의 남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명이 문 앞에 서며 나에게 "당신은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말했다. 다른 한 개의 엘리베이터는 운행을 하지 않는 상태였고, 평소 같으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잡지 않았을 테지만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 급하게 버튼을 눌렀던 상태였기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행동이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무서웠다.
내가 그들에게 "why?"라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그들은 "그냥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라. 이곳은 우리들만 이용한다."라고 했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는데 결국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고, 그들 중 한 명은 내게 세 번째 손가락을 들며 욕을 했다.
그 순간의 내 감정은 마치 누군가가 길고 예리한 칼로 나를 베어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영어를 굳이 고쳐주는 사람, 무례하게 말을 자르는 사람, 북한에서 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계속해서 중국은 어떤지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며 작은 상처들을 받고 있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말하자면 상처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당장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쇼핑몰을 나와 거리를 걸었지만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는 모두 무음이 되었고, 오직 두근거리는 내 심장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거실에서 남편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시 뒤 아이는 방으로 들어와서 가만히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 나에게 "엄마 지금 우리가 한국이라면 이런 날은 무슨 음식을 먹고 싶을 것 같아?"라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를 아이도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나는 아이를 쳐다보며 당연히 "떡볶이지..."라고 했다. 아이는 왠지 그럴 것 같았어 라고 말하며, 내 옆에 누워서 “우리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엄마.” 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해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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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동네를 걷다가 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한 발짝을 더 내딛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것인지 아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물었는데, 학교에서 자기를 놀리는 아이 중의 한 명이 우리가 가려는 상점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을 확인했고, 아이를 잠시 바깥에서 기다리게 하고 상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다가가 최대한 공손하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남자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이라는 말과 함께 아이를 잘 타일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다행히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자기를 놀렸던 아이들이 찾아와서 사과를 했고, 이제 별명 대신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안도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사실 운이 좋게 말이 통하는 부모를 만나서 다행이지만, 내심 그 반대의 결과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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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good day
아직은 서툰 운전자인 나는 시골길에서 큰 도로로 나가는 교차로 앞이나 로터리 같은 곳에서 잔뜩 긴장하는 편이다. 시골이라 신호도 없고 그야말로 타이밍을 잘 잡아 용기를 내어 차도로 진출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다른 운전자들의 배려를 바라야 하는 때가 많다. 말하자면 꼬리를 무는 차들 사이에 누군가가 나를 어여삐 여겨주어 넣어주어야 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10분이 넘게 그런 기회가 올 때를 기다리기도 할 때도 있다.
그날은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이라 시간이 꽤나 빠듯했다. 나는 교차로 앞에서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계속 돌려가며 내가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있었다. 그때 그런 나를 보고 자동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고 내 앞에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때 다른 차선에 오는 차들도 그런 나를 발견하고 속도를 줄여 공간을 내어 주었다. 그들의 배려심에 나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도로로 진출했고, 나를 위해 공간을 만들어준 아저씨는 나보다 먼저 손을 들어 마치 "Have a good day."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바로 그 순간에 내 마음의 그 어떤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무례한 행동으로 나 있던 깊은 상처가 또 누군가의 배려와 친절함으로 어루만져지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저녁 식사를 하며 오늘 경험했던 사람들의 친절함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아이는 내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더니 "엄마가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잠들기 위해 누워 있는 아이의 옆에 살짝 누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요즘 그 아이들은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는 이제는 잘 지낸다고 말하며, 그 아이들이 오늘 점심시간에는 먼저 와서 축구를 하자고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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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자
나는 아이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또 얼마 전에 내가 겪었던 엘리베이터 사건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서 어쩌면 우리가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겪어야 할 사람들의 불친절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함으로 채워지는 우리의 삶에 대해 또 이야기를 나눴다. 말하자면 온도계처럼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불친절함으로 차갑게 변했다가도 또 누군가의 친절함으로 다시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우리도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라고 하며 서로를 꼭 껴안았다.
나는 잠든 아이의 방을 나오면서 아이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불친절함보다 친절함을 더 많이 경험하길 그리고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 방의 불을 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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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 http://brunch.co.kr/@regina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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