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삶은, 대개 몰입할 것이 없는 삶이다. 몰입할 것이 없기에, 아무 생각 없이 쇼츠와 릴스를 넘긴다. 몰입 대신 자극을 찾아서, 손에 닿는대로 아무거나 먹기도 한다. 달리 말해, 몰입할 것이 없는 삶이란, 진정으로 '매혹'되는 것이 없는 삶이다. 매혹될 것이 없다 보니, 괜히 연예인 기사 뜨면 욕하고 악플달며 시간을 떼운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자극적인 영상이나 소문만 쫓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몰입할 게 있는 사람의 마음은 투명하고 외로움을 모른다. 가령, 소설 창작에 몰두하는 한 작가는 저녁부터 시작된 영감이 새벽까지 이어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글쓰기에 몰두한다. 달리기에 매혹된 사람은, 매일 저녁마다 두 발로 달리면 마주오는 바람의 냄새를 잊지 못해, 매일 밖으로 나선다. 사랑하는 사람에 매혹된 사람은 내일 출근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늦은 밤까지 그의 집 앞에 머문다.
독일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에서 조각가 '로댕'을 만났던 일을 충격적으로 기억한다. 그는 로댕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로댕은 무척 겸손하고 친절하게 그를 맞아주더니, 작업실에 데려가 자신이 작업 중인 조각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자신의 작품을 보던 중,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이자 점토 한 줌을 반죽하여 그 부분을 고치게 된다. 그러더니, 30분,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그 부분을 고쳐나가기 시작한다. 옆에 츠바이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갑자기 작품 수정에 '몰입'해버린 것이다.
츠바이크는 그것이 자기 "인생 최대의 교훈"이었다고 말한다. 그 기적같은 순간을 엿보고, 그는 그 한시간에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집중" 즉 "몰입"이다. 자기의 작업에 몰입하는 사람, 무언가에 매혹된 사람, 주변의 시공간조차 잊을 정도로 집중하는 사람은 외로울 수 없다. 그는 삶의 마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 그에게는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몰입할 대상과 혼연일체가 된 자기 자신만으로 온전하다.
요즘을 비롯하여, 나는 바쁜 일들이 누적되다 보면, 그런 몰입의 순간을 실향민처럼 그리워한다. 온전히 몰입해서, 계속 나의 글만 쓰고 싶다. 세상의 거추장스러운 일들을 싹 지워버리고, 온종일 내가 써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것만을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삶이라는 게 그럴 수만은 없다. 먹고 살기 위해 해야할 일들, 또 여러 자질구레한 일들, 심지어 주위에서 떠들어대는 온갖 재테크니 세상의 사건사고니 하는 이야기들, 같은 것들도 머릿속을 긁어댄다. 온전한 몰입에 허기를 느끼는 일들이 계속 쌓여갈 때쯤, 나는 어느 새벽에 미친 사람처럼 책 한 권을 써내기도 한다. 더 이상 못 참겠다, 하고 그냥 저질러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일이주 정도는 꼬박 아프게 된다.
아무튼, 요즘은 몰입 주간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최근 드라마 '모자무싸'에 몰입하면서 글들을 꽤 써내긴 했지만, 사실 그조차도 온전한 몰입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 편 보고, 글 몇 편 쓰는 것이야, 평범한 일상 쪽에 가깝다. 6월도 바쁘긴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조금씩은 스스로 여력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당분간, 어쩌면 올해에는 더 이상 글쓰기 수업도 하지 않을 듯하다. 나는 최대한 나의 '몰입할 시간'을 만들어내려는 일을 눈에 불을 켜고 노리고 있다. 삶에는 몰입이 필요하다. 삶의 거의 모든 문제는 몰입하지 못해서 생긴다. 괜히 사고를 치고, 엉뚱한 것을 쫓고, 시간을 허비한다. 그 모든 게 몰입할 게 없어서다. 그리고 그 몰입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마음 먹고 몰입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몰입이 끝나면, 어떤 의미에서, 삶도 끝난 것이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 https://facebook.com/writerjiwoo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jungjiwoowriter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