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하늘색, 딸은 분홍색이라는 암묵적인 공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파란색과 초록색을 좋아하는 여자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인식이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을 제한하는 것이 그리 건강하지 않다고 믿어서다. 그래서 특정 성별에 연결 지어지는 여러 종류의 고정관념을 계속 알아채고 거스르며 살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러던 내가 아기를 낳았더니, 파란색 옷을 선물 받고, 미니카를 한가득 물려받고, ‘아들한테 뭔 핫핑크 내복을 입혔노!’라는 우리 엄마의 반응을 마주했다. 사실 아기 물건을 고르다 보면 ‘이건 꽃무늬에 레이스인 게, 딸들 건가 보네’하고 나도 모르게 구분 짓는 순간을 종종 발견하며 흠칫 놀란다. 그럴 때마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노랑, 분홍, 연보라 같은 색깔을 일부러 더 집어 든다. 아들이 자기만의 취향을 찾을 때까지는 다양하게 노출해 주고 싶어서이다.
대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실제로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별에 대한 색깔 구분은 없었고, 오히려 지금과 반대되는 이미지였다고 했다. 분홍색은 단호하고 강인하며, 푸른 계열은 섬세하고 예쁜 느낌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자들과 마케터들이 소비 촉진을 고민하면서, 특정 색상을 특정 성별에 연결 짓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성별의 형제자매들에게 옷이나 물건을 물려주는 일을 꺼리게 되었고, 결국 더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얄팍하고도 무시무시한 배경이 있었다니, 더더욱 아들을 알록달록하게,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게 키워보겠노라 오기 섞인 다짐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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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15개월에 접어든 아들이 별안간 바퀴 달린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다. 아들은 자동차와 공룡이고 딸은 인형놀이라는 셈법 역시 어른들이 만든 환경의 결과라고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인형과 책이 훨씬 많고, 탈것 장난감은 원목 기차 두어 개가 전부인 집에서 이토록 바퀴에 집착하는 아기가 자라났다니, 신기하고 허무하고 궁금했다.
시작은 주차장이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차 앞에 멈춰서서 한 대 한 대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이내 바퀴를 만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20분 정도는 주차장을 돌아다니고 나야 어린이집 등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집 앞 도로에서 만나는 트럭과 버스는 매번 그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린다. 역시나 손가락질로 가리킬 때마다 ‘커다란 트럭’, ‘커다란 버스’라는 말을 계속해 줘서 그런지, 아기가 ‘아빠’ 다음으로 처음 내뱉은 단어는 ‘엄마’가 아닌 ‘커’다. 애착 인형이 아니라 애착 자동차가 생겨서, 노란색 타요 버스는 어디든 우리를 따라 온다.
이 난데없는 집착은 어쩌면 난데없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날 문득 스쳤다. 딱히 차에서 놀거리나 볼거리가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차로 세 시간 걸리는 할머니 집까지는 꽤 긴 여정이었다. 카시트에 대한 인식 따위 없던 그때, 앞으로 곧 튀어나올 듯한 자세로 뒷좌석 가운데에 걸터앉은 나는 틈만 나면 자동차 이름 맞히기 놀이를 했다. 맞은편 도로에서 달려오는 차의 앞모습을 보고 내가 답을 말하면 아빠가 딩동댕 혹은 땡을 외치는 식이었다. 주차된 차를 한 대 한 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 아! (=이건 뭐냐! 저건 뭐냐!)’를 외치는 아기에게 처음에는 차의 색깔을 말해주다가, 점점 색깔과 차종을 함께 말해주게 된 것도 그때 생각이 나서였다. 아빠와 내가 같이 즐기던 놀이를 어느덧 나와 내 아기가 함께하게 된 기분이 참 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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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조사도 차종도 너무나 다양해졌고, 덕분에 잘 모르던 차 이름을 엄청 많이 익히고 있다. 매일 주차장을 배회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다. 자꾸 남의 차 바퀴를 만지려는 아기를 쫓아다니며 보니, 거의 모든 차량 바퀴의 휠은 5개 축으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5개가 아니면 10개였다. 평소에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주제면서, 이 사실을 발견한 날 내 자신이 얼마나 신기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또 레미콘이 콩글리시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레디믹스(ready-mixed, ‘미리 만들어진’) 콘크리트’의 앞 글자를 딴, 일본어에서 넘어온 말이라는 것이다. 표준어는 믹서트럭 혹은 트럭믹서라고 아기 낱말 카드에 적혀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표현이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엄마는 아기 덕분에 색깔 구분의 유래도, 자동차 휠에 대해서도, 레미콘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우며 자라고 있다. 아마 이제 막 주변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한 아기의 머릿속, 마음속에서는 더 폭발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때 충분히 파고들 수 있도록 해주라는 육아 지침을 되새기면서, 오늘도 주차장을 돌고 또 돌고, 같은 단어를 말하고 또 말한다. 어린이집에 안 들어가고 마당에서 장난감 차를 타고 있는 아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유아차에 안 타고 자기가 밀면서 걷겠다는 아기를 이해하고 또 이해해 본다. 다시 말해, 매일 참고 또 참는다.
한때 눈에 보이는 모든 꽃을 만지고 뜯어 봐야 했던 아기는 이제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퀴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이렇게 하나둘씩 아이템 카드를 모으듯 자기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아기의 모험이 참 귀엽고도 뭉클하다. 대 바퀴의 시대가 과연 언제 끝날지, 그다음에는 무슨 시대가 열릴지,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공룡의 시대만큼은 피해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아는 공룡이라고는 티라노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이름 외우기는 공룡 이름 외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이 아들 엄마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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