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쾰른 지역 부근에 사는 사람은 한 번쯤은 가봤을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있다. 바로 카니발이다. 사람 많고 번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장 하이라이트인 “로젠몬탁 (Rosenmontag)” 하루 정도는 가볼까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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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은 카톨릭 전통에서 유래한 축제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지역 사람들의 광란의 즐거움에 좀 더 포커싱이 맞춰져있다. 금식과 절제를 실천하는 사순절이 본격 시작되기 전에 실컷 먹고 마시는 기간이며, 공식적으로는 11월 11일부터 3월 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그 중 몇몇 대규모의 축제가 특히 상징적이다. “로젠몬탁 (Rosenmontag)”은 사순절 주간의 월요일인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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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온 지 몇 달 안 되었던 어느 겨울 날, 저 멀리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한 무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공연이라도 했나 싶었는데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이상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지나갔다. 희한한 가면을 쓰고, 영화 주인공처럼 분장을 하고, 알 수 없는 탈을 쓴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했고 그들을 특별히 유심히 보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냥 일상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혼란스러웠다. 이 조용한 작은 도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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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쾰른 로젠몬탁 퍼레이드 현장, 직접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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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건 없고, 그냥 어떤 것이든 뒤집어 쓰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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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분장이라고 하면 아주 공들인 메이크업이나 명확한 컨셉, 누가봐도 알아볼만한 캐릭터를 떠올린다. 실제로 조커로 분장한 꼬마 아이는 몇 시간쯤 공들인 티가 날만큼 제법 근사했다. 그런데 반대쪽에는 마트 쇼핑백 같은 걸 뒤집어 쓴 사람도 흥에 겨워 있다. 보자기 하나 두른 사람도 있고, 미니언즈 인형탈을 쓴 사람도 있다. 누가누가 분장을 더 잘했냐는 기준보다는 그냥 뭐라도 비일상적인 것을 뒤집어 쓰고 본인이 신나면 그만인 것이었다. 심지어 서로에게 크게 놀라는 반응도 보이질 않아서, 한 번쯤 사놓고 입지 못한 괴상한 옷 같은 게 있다면 이런 날 한 번 꺼내입어도 되겠다 싶었다. 이왕이면 싸구려 왕관이라도 구하고, 나비 날개라도 등에 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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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퍼레이드가 있는 로젠 몬탁을 앞두고, 2월 초중순부터는 다들 안부 묻듯이 묻는다. 대체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기는 하다. 그 날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등교할 때 분장을 하고 가야 해서, 어떤 날은 피카츄로, 어떤 날은 나방으로 분장시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엄마도 있었다. 매년 있는 행사다보니 나름 어떤 분장을 할 지 고민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크게 공을 들일 일도 아닌지, 적당히 컨셉을 정하면 분장용 옷을 하나 사준다고 한다. 이 시즌은 어딜가나 카니발 의상을 판매하기 때문에 백화점부터 저렴한 마트나 생활용품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공식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휴무를 하는 회사도 많아서, 떠들썩한 인파가 싫은 직장인들은 도심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몸을 숨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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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게으름을 피우다 지나칠 우리 부부도 오늘만큼은 쾰른으로 향하기로 했다. 퍼레이드는 오전부터 시작해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다. 다양한 컨셉의 분장을 한 참가팀들이 행진을 하면서 과자, 초콜릿, 사탕, 꽃 같은 것들을 공중에 던지면 주변에 둘러싼 인파가 서로 받으려고 손을 뻗는다. 이 때 분장을 하지 않고 가면 약간은 소외될 수 있다. 분장을 한 사람에게만 골라서 간식과 꽃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손을 뻗으면 몇 개쯤 받을 수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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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있는 분장 중 하나, 슈퍼마리오 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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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인파는 어마어마했다. 중심지인 쾰른 성당 인근부터 구시가지, 신시가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퍼레이드는 정치 풍자도 꽤 많아서, 올해는 트럼프와 젤렌스키, 푸틴의 얼굴이 커다랗게 지나가기도 했다. 독일의 축제들이 빠짐없이 그러하듯이, 대부분은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며, 취기 오른 목소리로 환호가 가득했다. 최근 합법화된 대마 냄새도 거리에 꽤 많이 풍기는데, 이 모든 게 축제에서 허용되는 문화다보니 어느새 지독하게 섞인 여러 냄새에도 익숙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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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으로 묘사한 젤렌스키와 푸틴 인형 퍼레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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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의 성인들이, 중장년부터 노인까지도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돌아다닌다. 한껏 들떠있는 열기가 느껴져서 보고 있기만 해도 덩달아 피가 빠르게 도는 느낌도 든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있던 건지, 오후만 되어도 분장을 한 사람들이 어쩐지 지친 얼굴로 골목마다 혼자 앉아서 쉬는 모습도 꽤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다가도 다시 인파에 합류해 맥주를 마시고 날아오는 사탕에 손을 뻗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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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시간 정도 구경하다가, 적당히 조용한 카페로 피신하자”고 했던 말은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퍼레이드로 인해 대부분의 도로가 통제되어 코 앞에 있는 카페도 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돌고 돌다 발이 닿는 카페로 향했지만 꽤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 사실 다리를 다쳐 걸음이 영 편하지 않던 나로써는 살기 위해 앉을 곳을 찾아야 했다. 결국 세 시간을 걷고 또 걷다가, 퍼레이드가 잠시 멈췄을 때 후다닥 막힌 도로를 넘나들면서야 겨우 빈 카페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축제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쉬엄쉬엄 노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리 체력 충전이 필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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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퍼레이드가 잠잠해지고 나면, 또 한 차례 피크 타임이 온다. 아침부터 분장을 한 사람이든, 아니면 저녁에서야 느즈막히 나온 사람이든, 맥주 한 병씩 들고 도로에 서서 수백명이 빽빽하게 담소를 나눈다. 퍼레이드로 인해 통제된 도로는 마치 거대한 클럽이라도 된 듯이, 옆 사람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빽빽하게 인파로 가득찬다.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며 본격적으로 카니발의 밤을 시작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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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지역의 대표 맥주, 쾰시 맥주 캔으로 분장한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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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맥주병이 널부러져있는 바닥을 조심조심 피해다니며, 밑창 두꺼운 신발을 신고오길 다행이라며 겨우겨우 인파를 헤치고서야 집에 오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분장한 어린 아이들도 정말 많은 축제인데, 술과 담배, 대마가 가득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열광하고 즐기는 축제라니. 그것도 심지어 종교적 유래를 가진 축제라는 게 영 아이러니하면서도 쾰른만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언젠가 다시 쾰른 카니발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 땐 나도 좀 더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좀 더 튼튼한 두 다리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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