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이 미쳤다는 걸 알기 전에 샀어요(I Bought This Before We Knew Elon Was Craz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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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이 문구가 적힌 테슬라 범퍼 스티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으로 이 스티커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18,000개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출퇴근길에도 이런 스티커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테슬라를 소유하고 있지만, 기업 오너인 일론 머스크의 행보와는 거리를 두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문구도 다양하다. "환경 친화적이지만, 일론 친화적이지는 않은(Eco Friendly, not Elon Friendly)" 같은 스티커는 나도 우리 테슬라에 붙이고 싶을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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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혼자 운전하는데, 옆 차선의 차량이 갑자기 경적을 울렸다. 차에 문제가 생겼나? 내가 차선을 잘못 탔나? 순간 긴장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창문을 내리더니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고 "테슬라" 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주차된 테슬라가 파손당한 사건을 다룬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나도 ‘테슬라 테러’의 대상이 되는 걸까. 그 차를 피하고 싶었지만, 도로 상황상 불가능했다. 결국 신호 대기 중 나란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조심스럽게 창문을 살짝 내리자,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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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테슬라 잘 고쳐. 앞 범퍼 망가진 거 내가 수리해 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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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했던 마음이 순간 피식 풀려버렸다.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서둘러 그 차를 떠나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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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를 탄 지도 4년이 되었다. 사실 그때도 일론 머스크의 ‘오너 리스크’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직원들을 소모품처럼 대하고,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면, 자율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가 필요했고,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는 변명을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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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같은 직장에 취직했다는 기쁨도 잠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 차로 15분 거리였고, 지하철만 한 시간 넘게 타야 했다. 매일 30km 이상 출퇴근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우리는 전기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휘발유 파동이 계속되던 시점, 한밤중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 긴 줄을 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동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미국 소도시에서 전기차는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충전기 인프라도 갖춰져 있었고, 전기차 구매 시 주차장 우선 배치 같은 혜택도 있었다. 당시 전기차 시장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언제 출시될지도 모르는 애플 전기차를 기다리느니 당장 이용 가능한 자율 주행 기능이 있는 테슬라가 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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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론 머스크의 돌발 행동이 계속되면서 불편한 마음도 커졌다. 트위터 (현 X) 인수 과정에서 벌어진 대량해고에 실제로 영향을 받은 지인도 있었다.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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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의 사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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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람’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테슬라 오너들이 일종의 신도처럼 비춰지는 걸 볼 때마다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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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의 프로듀서 마이클 슈어는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How to Be Perfect)>에서 소비자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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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비할 때, 기업 윤리적 가치를 과연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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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어는 문득 "내가 사용하는 은행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당 은행이 2021년 미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극우 집단에 수백만 달러를 후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괴물들이 운영하는 은행에 더 이상 돈을 맡겨두고 싶지 않았던 그는 계좌를 옮기려 했지만, 문제에 봉착한다. 창립자, CEO, 이사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결과 정도의 차이지 모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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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아닌 사람이 운영하는 은행은 존재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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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찾아도 그런 은행은 없었다. 그렇다면, 은행 계좌 없이 살 수 있을까? 돈을 장판 밑에 깔아두고 생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아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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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브랜드의 경영진의 사상을 완벽히 파악한 후 물건을 사지는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어떤 기업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비윤리적인 생산 과정을 거치고, 또 어떤 기업은 특정 정치적 이념을 지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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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선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저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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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이 운영하는 회사의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치자. 그런데 그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나쁜 놈’일까? 내 가족이, 내 친구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들은 윤리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착한 CEO가 운영하는 회사는 언제까지 착할 수 있을까? 착한 CEO의 회사에는 ‘나쁜 놈’이 한 명도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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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결국 “아,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될까?”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모든 소비에서 윤리적 잣대를 고려하기엔 삶이 지나치게 피곤해진다. 슈어는 소비자 윤리를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에너지 소모의 과정을 “도덕적 탈진(Moral Exhaus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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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에게 "악덕 경영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비윤리적인가?"라고 묻는다면, “완벽한 경영 윤리를 지키는 기업만 소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라고 되물어야 한다는게 슈어의 결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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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테슬라 범퍼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테슬라를 선택했지만, 일론 머스크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다. 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나름의 고민이 있었음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조차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스티커 하나 붙인다고 해서 테슬라와 나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 테슬라를 탄다는 사실 자체가 머스크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티커를 붙인다고 해서 머스크의 기업 운영 방식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그는 계속해서 돌발행동을 할 것이고, 그 방향이 ‘윤리적’으로 돌아 설 것 같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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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표현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몸짓,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신호, 그런 작디작은 저항. 이런 작은 저항들이 모이다 보면, ‘나쁜 놈’들이 적어도 움찔하게 되지는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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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머지않아 나도 그 스티커를 붙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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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
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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