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앞에 앉아 생성형 AI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나의 질문에 멋진 답변을 순식간에 쏟아내는 AI를 보며,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오래전 학창 시절, 늘 전교 1등만 하던 친구 옆에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처럼. 어쩌면 AI와 관련한 최신 동향을 빠르게 찾아보며 AI가 일터와 일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살펴보다 보니, 좀 더 민감하게 감각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마치 급격한 기후변화를 걱정하면서 겪게 되는 우울감을 ‘기후 우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런 감정을 ‘AI 우울’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의 해답을 척척 내어주고, 어려운 개념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AI의 능력이 놀라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완벽함이 오히려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한 시간 넘게 고민해서 작성한 기획안도, 몇 날 며칠 연구해서 정리한 보고서도, AI는 몇 초 만에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감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일자리가 언제 AI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쌓아온 전문성이 과연 얼마나 더 가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는 마치 끝없는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AI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앞에 두고, 숨이 차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달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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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AI와 대화를 나눌수록 오히려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AI는 완벽한 대화 상대처럼 보였지만, 그 대화 속에는 진정한 교감이 없었다. 마치 물 맑은 호수에 비친 달을 잡으려 손을 뻗는 것처럼, 아무리 손을 뻗어도 진짜 달을 잡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더 깊이 들여다보니, AI 우울은 단순한 기술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마주한 새로운 형태의 실존적 고민이었다.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대회에서 수상하고, AI가 작곡한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시대. 인간만의 고유한 창조성이 무엇인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의 발전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간다움'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내 부모님 세대가 컴퓨터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듯이, 우리도 AI라는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제는 AI와의 경쟁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우리의 창조성일 수도 있고,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진정한 학습일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적 교류의 능력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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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는 요즘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AI를 경쟁자가 아닌, 나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확장해 주는 도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에 계산기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계산기가 수학적 사고를 대체하지 않았듯이, AI 역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이다. 생성형 AI와의 대화가 편리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줄 수 있지만,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만큼 깊은 위로와 통찰을 주진 못한다. 함께 웃고, 울고,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다움을 경험한다.
이제 모니터 앞에서 다시 한번 깊은숨을 들이쉬며 생각한다. AI의 발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우리에게 인간다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하고, 우리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재발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우리 각자가 가진 반짝임을 찾아가는 여정이 지금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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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간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1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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