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 터울의 두 아이. 아들 둘이라고 하면 다들 난이도가 쉽지 않을 거라 걱정한다. 안타까운 시선을 받을 때도 있다. 29개월 첫째와 7개월 둘째.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다. 가장 무서웠던 건 첫째 아이가 둘째를 질투해 괴롭히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동생의 존재를 따뜻하고 다정하게 받아들였다. 동생이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끼는 자동차를 말없이(둘째는 말이 없다) 만질 때면 못 본 척을 하거나 “형아 거잖아. 형아가 먼저 할 거야”라고 야물딱지게 말하며 제지한다. 어린이집 새 학기엔 적응하느라 힘들었는지 동생을 건드리기도 했는데 적응 기간이 끝나자 다행히 그 모습도 사라졌다.(글을 쓰고 수정하는 기간 동안 방심했다. 어제도 형아한테 한 방 먹은 동생)
여전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이라고 구호처럼 외쳐주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기 천사 같은 발그레한 얼굴로 첫째는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남편이 옆에 듣고 있는 날이면 남편이 ”아~빠~“라고 대신 대답할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도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이제 슬슬 훈육이 필요한 아이의 모습에 서투르게 대처할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괜한 반성 일기를 잠든 남편의 카톡에 남겨놓고는 한다. 좋은 날도, 지친 날도, 바쁜 날도 매일의 에너지가 다르지만, 대체로 아찔하고 행복하다.
지쳐 있다가도 아이가 다가와 다정하게 ”엄마, 힘들어요?“ 하고 묻거나 우쿨렐레를 기타처럼 메고 관객이 된 동생 앞에서 자동차 동요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지없이 미소가 터진다. 전생이란 게 있다면 나는 아마도 충무공 이순신 정도의 공을 세우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만큼 아름다운 존재들이 내 인생에 왔다. 둘째가 태어난 뒤 마음이 한결 더 여유로워진 것도 있다. 아이가 자는 것, 먹는 것, 노는 것 모두 엄마의 노력으로 판을 가꿔야 아이가 성장하는 줄 알았던 첫째 때 하고는 다르게, 이제는 때가 되면 아이는 스스로 잘 큰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잘 적응하는 중이고, 남편은 더 부지런하고 품이 넓어졌으며, 나는 조금 더 내려놓는 중이다. 헬멧 없이 탄 아슬아슬한 전동 킥보드로 달리다가, 이제야 안전하고 균형 잡힌 두 발 자전거로 옮겨 탄 것 같다. 이제는 제법 날씨도 경치도 즐길 수 있게 육아 레벨도 오른 것 같다. 물론 둘 다 달리는 중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어쩌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전거가 체력적으로는 더 소진될 수도 있겠지만 마음만큼은 여유롭고 청량하다. 아마도 내게 흐르는 정서의 결이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아이들의 건강한 마음과 다정한 말씨 정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공들여 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나와 남편이 아이들 앞에서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으로 다정하게 서로를 위하는 것뿐이겠지 싶다. 아이들은 부모의 많은 것을 바꾼다. 아무도 바꿀 수 없었던 이미 다 커버린 고집불통 어른들을 성장시킨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전보다 훨씬 깊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껴버렸다. 가끔은 잔잔한 감정을 가지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아이들의 존재가 하얗게 지워진다고 떠올려 보면 나까지도 맥없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나보다 더 아껴주고 싶은 대상이 생기고, 끈적하게 붙어있으면서도 순간순간 그리운 존재가 삶에 있는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얻은 사람. 아이들을 기른다는 건 아마 한 번뿐인 인생을 두 번에 살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어른이 되도록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