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그린 이미지 @gemini
어느날, 그가 동영상 링크 하나를 보내 주었다. 유발 하라리의 영상이었는데, 제목만 보았을 땐 무서웠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무서운 심리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부터 경고뿐만 아니라 고민 포인트까지 던져 주는 것 같았다.
https://youtu.be/C8dig2h8cvU?si=bOyxFTMcGELM4bYf
(영상 유튜브 링크)
- 우리보다 말을 더 잘하는 '이민자'의 등장
"인간이 강한 건 힘이 세서가 아니라, 수십 수억 명을 설득하는 능력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이 능력을 빼앗을 존재가 나타났다. "
하라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핵심 동력이 무기가 아니라 ‘언어’ 능력이라 말했다. '대화로 수십 수백만의 낯선 이들을 설득하고 협력해 세상을 움직였는데, 인간보다 더 말을 잘하는 AI가 등장했다. 그는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결정하는 '에이전트(Agent)'라는 점을 강조했다. 칼은 주인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 타인을 공격할 무기로 쓸 지 용도를 정하는데, AI도 스스로 결정할 능력을 가진 것이다.
더해서 그는 AI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할 새로운 형태의 '이민자'로 비유했다. 이 이민자들은 빛의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고, 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쓰고, 교묘하게 거짓말도 할 줄 아는데 만약 10년 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지닌 AI가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섬뜩했다.
- '인지적 마찰(Cognitive Friction)'은 사라진 '네버스킬링(Never-skilling, 무無숙련)'의 시대
수많은 자료들이 AI에 의존하면 좋지 않다 말을 하지만, 내용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신경과학자들은 무분별한 AI 사용을 '헬스장에서 로봇이 나 대신 덤벨을 들어주는 것'에 비유했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없이 몸이 좋아질 수 없듯, 우리의 뇌 역시 노력과 시행착오라는 '인지적 마찰(Cognitive Friction)'을 겪어야만 사고가 확장된다.
물론 AI가 편한건 사실이다. 나 역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거나 외국어를 번역할 때 AI를 사용한다. 하지만 모든 순간 AI에게 의존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이 뇌파 검사(EEG)를 활용해 AI로 에세이를 쓴 사람들을 살펴 본 결과, 인지 처리와 관련한 뇌 네트워크 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해서 하버드 연구진은 이런 상황을 '네버스킬링(Never-skilling, 무無숙련)'으로 설명했다. 이는 사람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능력을 잃어 버리는 '디스킬링(Deskilling)'을 넘어, 기초 역량 자체를 배울 기회조차 박탈되는 상태를 뜻한다. AI에게 쉽게 질문만 하고 끙끙대며 답을 찾는 고군분투 과정을 생략하면, 결국 우리 뇌 밑바닥은 와르르 무너지기 쉬운 '속 빈 비계 구조물(Hollowed-out scaffolding, 건물을 올릴 때 세우는 뼈대)이 되는 것이다.
- 거대한 심리 실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까?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지 능력과 학업 성취도가 낮은 세대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유발 하라리의 경고가 섬뜩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최근 발표된 의학 교육 연구(Ke et al., 2026)에서는 네버스킬링(Never-skilling)을 넘어 인간의 주체성을 지키며 AI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도 순차적 단계가 있듯, AI 사용에도 학습 수준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말한 연구 내용의 일부를 공유해 본다.
(1) 1단계, AI 청정구역(AI-Free Zone)에서 기초 역량 다지기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AI를 차단해 볼 것을 제안한다. 조종사가 자동비행장치 없이도 비행하는 능력을 지녀야 하듯, 우리도 모호함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생산적 고군분투'를 겪어야 탄탄한 인지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나 첫 문장을 고민하며 하얀 모니터 앞에서 버티는 인내의 시간이 결국 좋은 글을 만들어 내듯, 내 친구가 종이 논문에 필기했던 과정이 지금의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2) 2단계, 유도된 통합과 보정 훈련(Guided Integration and Calibration)하기
두번째는 AI가 던진 결과를 그냥 믿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보는 것이다. 연구에서는 의대생 훈련 과정에 AI의 오진을 일부러 찾아내는 ‘적대적 교수법(Adversarial Pedagogy)'과, AI 도움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결과를 비교하는 훈련을 제안한다. 또한 스스로 고민한 순간이 없다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하지 못해 AI의 오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조정의 역설(Calibration Paradox)’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도 가끔 AI에게 네가 말한 것이 진짜 팩트가 맞아?라 되 묻는데, 앞으론 의식적으로 더 자주 시도해야 겠다.
(3) 3단계, AI와 통합해 연습(Integrated Practice with AI)하고 주도권 쥐기
마지막은 앞선 두 단계를 거쳐 AI를 실전에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다. 논문은 이 단계를 단순히 AI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도권을 쥔 채 AI와 통합하는 '인간-AI 협력을 통한 최상의 성과 도출(Maximal human-AI system performance)'과정이라 정의했다. 여기서 ‘주도권’이라는 단어가 와닿았다. 유발 하라리도 AI가 생각하는 인간의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했는데, 문득 우리 존재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생각해 볼 순간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