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때론 요란하게, 때론 찬란하게. 모래시계가 흐르듯 시간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랙이 걸리듯 멈춰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 시간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시간과 함께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아득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다음 장면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마음에 각인된 이미지.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어른의 시간을 무심코 멈추게 만드는 강렬한 힘이 있다.
아이들이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나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가 현실 세계로 뚫고 오는 요정들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순수한 세계가 품고 있는 작고 눈부신 결정체가 단단하게 껍질을 싸고 있는 어른의 마음을 슬그머니 벗겨 놓는다. 그 기분이 딱히 싫지가 않다. 나름의 질서 정연한 일상의 속도를 아이들이 마음대로 조정하는 걸 보면서 나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순수하다는 건 가끔 위협적이다. 나를 지배하고 있던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살리는 돌봄의 삶을 살아간다. 식물을 심고, 사람들을 만나고, 장을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운전을 하고, 사색에 잠기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숲을 거닐다가, 글을 쓰면서도 나는 보살피는 영역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만다.
매일을 살아가며 몸에서 감각되는 느낌이 들어 올리는 진실은 그동안 머리에 정리되어 있었던 것들을 새하얀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것만 같다. 나는 역시나, 확실히, 돌봄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홀로 어딘가 처박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와도 그 사실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삶 곳곳에서 점점 더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존재로 되어간다는 감각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그건 아이들을 돌보는 나의 사회적 역할, 자연에서 치유를 받는 돌봄의 힘 때문 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돌봄의 손길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비추어주는 길은 어떤 곳일까.
'새삼스레'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알던 것을 새롭게 알아차리는 감각.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리송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이 느낌들이 돌봄의 세계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본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일같이 새 아침이 열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매일 보는 아이들과 사람들에게서 내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공기의 흐름은 더 다정해지고 세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