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매우, 무척, 정말 (폭싹), 수고하셨습니다(속았수다) 라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이다. 낯설고 강렬한 한 마디가 머리와 마음 안을 헤집고 다녔다.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드라마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폭싹’ 궁금해졌다. 공식 영문 제목을 보고는 한 참을 바라보다가 미소가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저 한 줄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과 이야기들이 오갔을 과정이 드라마처럼 그려졌다.
'When Life Gives You Trangerines' 이 타이틀로 타이핑되기까지의 과정이 생각의 나무가 뻗어나갔다.
‘수고’는 ‘일을 하느라 힘을 들이고 애를 씀’이라는 의미
수고했습니다의 한국어 한국어, 중국어 辛苦了,일본어(お疲(つか) れさまでした. ご苦(くろう) さま. )로도 있는데 영어에는 없는 표현이다. 굳이, 짜고 짜내어 화자 간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서 쓰일 수 있는 표현들은 있다.
어떤 일을 잘 해냈을 칭찬하는 표현 Good job! 공동의 프로젝트나 작업에서 노력을 인정하며 Thanks for your hard work.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I appreciate your effort.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어 힘들게 한 일을 인정하는 의미로 You’ve worked hard. That must have been tough.
하지만 원어 사용자가 그 단어를 사용할 때 전달하는 의미와, 정서 등을 최대한 담은 최대한 등가(Equivalent) 표현을 찾자고 하면, 영어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다. ‘수고하셨습니다’와 ‘수고하세요’의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한 원어민 영상을 보고 ‘수고하세요’를 들었을 때 원어민이 '수고'를 받아들이는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 "(그럼 수고하고 고생하세요)..Well…Work hard and suffer well!"라고 직역해서 말하면, "계속 생고생 해라!!!" 라고 받아들인다며 효과음에 어울어진 연기에 한참을 웃었다. 미국에서 귀화한 한 방송인도 왜 한국에서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전에 우리나라와 동양권 국가에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부터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동양권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여 공동체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 안에서 개인의 노력을 인정하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발달해 왔다. 일본 드라마에서도 누군가의 ‘공’을 인정하고 돌리는 일을 중요시하는 장면들을 종종 봤다.
관계중심의 문화적 요소도 있다. 상대방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 한 사람으로서 결과와 상관없이 함께 무언가를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서로 인정하고 그 과정을 같이 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감사의 의미도 담겨있다. 나도 회사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면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동료들에게 종종 이야기했다.
반면, 개인주의가 강한 영어권에서는 Good Job! (잘했어)처럼 개인의 성취 결과 자체를 칭찬하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다. 이는 결과 중심적인 사고와도 이어진다. 전체 팀의 일원으로서의 관계적인 표현보다 구체적인 성과에 대한 표현이 자연스럽다고 추측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표현에 대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이 표현의 사용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기사부터 인터넷에서도 왜 어른이나 상사에게 쓰면 안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댓글까지. 국립 국어원에서도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수고하다'나 '고생하다'와 같은 표현은 노고를 평가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수고하셨습니다/고생하셨습니다'를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안녕히 계십시오.', '고맙습니다.' 정도로 바꾸어 쓰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에는, 사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넘어선, 노고를 평가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의미를 담아 쓰여왔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의 그 의미는 더욱더. 숨을 참고, 목숨을 담보로 몸을 던지는 물질만큼 수고로운 일이 있을까. 또한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찬란하게 아름답지만 언제라도 그들의 숨을 끊을 수 있는 바다. 서로가 서로를 살피며 필연적으로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로운 일을 마치고,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살피고, 내일도 같이 함께 하자는 의미로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은 인사를 넘어서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주고, 서로의 삶을 연결해 준 사랑의 말이 아니었을까.
영어에 없는 ‘수고하셨습니다’, 어떻게 번역했을까?
한국어 제목 그대로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한국인이 봐도 낯설고 신선한 제주 방언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심연에서부터 궁금증이 올라왔다. 영문제목을 찾아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를 보는 순간 잘알려진 구문인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이 떠올랐다. 이 표현은 1915년 작가 엘버트 허버드(Elbert Hubbard)가 왜소증 배우 마샬 핀크니 와일더(Marshall Pinckney Wilder)를 기리는 사망 기사에서, 와일더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간 것을 칭찬하며, "그는 운명이 보낸 레몬들을 집어들어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시작했다”(He picked up the lemons that Fate had sent him and started a lemonade-stand)"고 쓴 글에서 유래한다. 이후, 1948년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가 그의 책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에서 사용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 출처:위키피디아)
레몬(lemon)은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역경, 고난, 실망스러운 상황, 또는 원치 않는 결과를 상징한다. 이러한 난관에 머물지 말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맛있고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어려움을 활용해 더 나은 결과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라는 의미이다.
레몬(lemon)은 부정적인 의미이다. 레몬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Sour’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봐도 ‘시다’는 의미 외에 부정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영어 단어 공부할 때 1:1로 매칭해서 외어서 안 되는 이유다)
"I got a lemon."이라는 문장도 불량품을 샀다거나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긴 레몬을 그대로 먹었을 때를 떠올리면 신맛이 주는 고통. 일그러지는 표정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니, 역경이나 불운의 상징이라는 것이 충분히 납득 된다.
레몬(Lemon) 대신에 제주도를 상징하는 귤(Tangerines)을 넣다니!
수입서적<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Large Lined Journal Notebook > 표지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고? 아니 이렇게 창작할 수 있다고?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감탄하고 말았다. 기존에 있던 유명한 문구에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색깔이지만 전혀 다른 맛을 가진 단어를 포함한 인생에 관한 문장에 제주도의 상징인 귤(Tangerines)을 넣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의 변주를 만들었다.
제주도의 귤은 달콤하고, 향기롭고, 탱글 하다. 신(Sour)과 오히려 반대라고 할 수 있는 단맛(Sweet)에 가깝다. 드라마는 다 반영되지 않아 그 안의 내용을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문장인, ‘수고’에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는 “폭싹 속았수다”에 달콤한 귤을 더하고, 제주도 섬의 이미지까지 담아냈다.
혀에 닿자마자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을 주는 레몬과 달리, 행복감을 주는 달콤한 맛과 상큼할 정도로 살짝 신 맛있는 제주의 귤과 같은 인생이 제주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을 읽고 이어지는 문장이 떠올랐다.
Just peel and enjoy!
인생이 달콤한 귤을 줬으니까 그냥 까서 맛있게 먹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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