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좀 뒤척였다.
요 며칠 사람들이 “집에 가니 너무 설레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어떨 때는 과장해서 ‘매우’나 ‘정말’이라는 말을 덧붙여 설렌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말하기 편안한 상대에게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라는 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커다란 수화물 가방을 다락에서 꺼내, 하루 이틀 문 밖에 두어 묵은 습기 냄새를 최대한 없애고 색깔이 다른 수납용 파우치에 가족 각각의 옷과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서 여행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한국으로 향하는 짐을 1-2년에 한 번은 싸게 되어서인지 이제는 따로 필요한 물품 목록을 쓰지 않아도 중요한 것을 빠트리지 않고 짐을 챙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올해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로 가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2년 전 한국에 다녀온 이후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온전히 내 몫’의 돈이 생겼고, 그래서인지 마치 사회초년생처럼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면서 약간 들뜨기까지 했던 것 같다.
얕은 잠을 여러 번에 나눠 잔 나는 새벽 5시 즈음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지난밤에 평소와 다르게 먹은 것도 아닌데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서 너무 이른 시간에 잠이 깨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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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떠나는 나와 우리
그렇게 다시 잠이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 아이가 방문을 두드렸다.
“엄마, 머리가 아파.”
평소에도 참을성이 좋아서인지 아픈 내색을 하지 않다가 열이 38도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아픈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라서, 새벽 5시에 깨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아이를 살폈다. 처음에는 나만큼 아이도 긴장하고 또 기대했기 때문에 잠을 뒤척이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온계로 아이가 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충혈된 두 눈으로 ‘엄마..’를 부르는 아이를 보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나와 아이가 먼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남편은 한 주 뒤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었다. 전날 마지막으로 짐 싸기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아이도 많이 컸으니 긴 시간의 여행 우리 둘이서 잘 버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조금 놓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행히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라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남편이 나도 좀 자야 한다면서 본인이 아이를 돌보겠다고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방으로 돌아가 걱정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어렵사리 잠든 아이는 10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일어났고, 다른 종류의 해열제를 한 번 더 먹인 뒤 열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부드러운 음식으로 아침을 먹인 뒤 다시 침대에서 쉬게 했다. 해열제라는 녀석의 위력이 대단해서 열이 떨어진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감기를 털어버린 것처럼 집안 곳곳을 다니며 공항에 가져갈 자기 가방에 간식을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살짝 머리가 어지러운지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다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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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먼저인데.
누운 채로 “엄마. 감기약 먹으니까 이제 괜찮아. 한국에 가는데 문제없겠어.”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아이를 보면서 “몸이 아픈데 그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는 건 너무 힘들지 몰라. 계속 열이 나면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이 먼저지.” 하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부끄럽게도) 이 여행을 강행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Chatgpt, Gemini에게 복용하고 있는 약으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열을 떨어트리면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를 물었다. 한참을 이 녀석들에게 문의하고 조언을 구하면서 마음 한 편으로 ‘아이가 먼저인데, 한국을 가는 것이 맞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도 아이는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기압의 차이 때문에 통증을 쉽게 느끼는 편이었는데 감기에 걸린 상태라면 더욱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엔 여행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니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잠시 안방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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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괴로운 만큼 나 역시 긴 여행을 아이를 돌보며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이 없기에 어느 나라에서든 환승을 해야 하고, 환승을 한 후에도 11시간 정도 걸렸던 길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13시간으로 또 최근의 중동사태로 15시간 가까이 걸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아이의 방으로 가서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 한국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먹을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고 구경도 하고.’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에 핀 ‘기대감’을 보면서 아이가 바라는 일들을 같이 하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자 하필 이럴 때 이런 마음이 들까 싶을 정도로 한국에 가는 것에 ‘설렘’과 ‘기대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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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갔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기도했다. 아이가 잘 견디면서 갈 수 있도록 엄마로서 최선을 다 할 테니 도와달라고. 남편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만약 비행기를 놓치게 되거나 한국에 갈 수 없게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는 아이를 꼭 안아 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잡지 한 권과 음료수를 사서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시간상 해열제를 하나 더 먹여도 좋을 시간인데 아이가 괜찮아 보여서 나중에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첫 번째 비행기에서 비행시간의 반 정도가 지나자 아이는 열이 오르면서 매우 괴로워했다. 나는 아이가 구토할 때를 대비해 봉투를 준비했고, 그런 아이의 모습에 승무원들이 오가며 걱정하고 또 봉투 등을 가져다주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주위의 승객들은 달랐다. 처음 비행기에 올랐을 때부터 우리를 흘깃 쳐다보던 독일인 여성은 바스락 소리만 나도 우리를 불편한 듯 쳐다보았고, 아이가 불편해하는 상황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가족들에게 불평을 하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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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맞대응이라도 하려 했을 텐데, 내게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환승을 앞두고 미리 신청해 둔 노약자 서비스를 이용해 환승터미널까지 움직였고, 그 사이 아이의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15시간의 여행을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아이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나는 아이의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함께 웃었고 걱정이 줄어들면서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여행 내내 마스크를 쓰는 것이 불편했을 텐데도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나 감기를 옮기면 안 되잖아.’라며 어른스럽게 견디는 모습에 나는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엇보다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나누는 한국말로 가득한 기내 안에 도착했을 때 큰 안도감이 들었다. ‘아. 나는 지금 한국으로 나의 집으로 가고 있구나.’라고.
자리에 앉아 혹시나 하고 아이를 위해 약을 먹이고, 또 봉투를 준비하고 귀가 아플까 봐 사탕도 물려주면서 아이를 연신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분이 아이 좌석 밑에 있던 (미처 짐을 보관함에 올리지 못했던) 가방을 올려주겠다고 몸을 덮고 있던 담요를 걷고 안전벨트를 풀고 우리를 위해 벌떡 일어서 주었다. 아이는 급하게 환승을 한 탓인지 여러 개의 해열제를 계속 먹어서인지 속을 아파하면서, 약간의 헛구역질을 했는데 아이만큼 주위의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 둘러보니 모두들 알면서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들의 성격이나 인격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성’이 한국인과 비슷하고 친절하고 따뜻하다고 알려져 있는 아일랜드에 살면서도 늘 한국인들의 배려심과 친절함이 그리웠었다. 무엇보다 아일랜드에서 어느 곳에서나 ‘이방인’으로 느꼈던 어색함과 구별됨에 늘 쓸쓸했었다. 국민성이라는 것,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10여 년을 아일랜드에 살면서 늘 느끼곤 했는데, 아픈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 반대로 이방인이었던 내가 다시 나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나 쉽게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며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던 적이 많았는데 아이를 반쯤 안고 토닥이며 아이가 잠들 때를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함께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아이가 주스를 조금 먹고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안심을 하며,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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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행기가 한국 땅에 내려앉았다. 승무원이 도착을 알리며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비행기에서 걸어 나오자 아이는 “아~한국 냄새.”라고 말했다. 긴 비행 끝에 마주한 한국의 공기는 또 냄새는 아이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고유한 그것이 있었고, 3월의 저녁, 여전히 찬 기운이 있었지만 다정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입국장을 나서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조건 없이 품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온기 속에서 잘 지낼 수 있겠구나 라는 사실을 말이다. 열이 내리고 다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이 먼 길을 달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들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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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 http://brunch.co.kr/@regina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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