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울해.'
'나 혼자 있고 싶어.'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라는 말을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그 깊이에 경중이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우울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 숨이 전혀 안쉬어져. 심장이 자기 마음대로 꿀렁거려.'
'귀신이 나를 노려보고 있어.'
'나를 비웃는 목소리가 자꾸 들려.'
라는 말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낯설 수도 있지만, 사실은 공황장애,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 병에서 헤어나오고 싶어서 온갖 노력을 해보지만, 밖에서 보면 그저 무기력하고 인생을 포기한 것 같이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고백컨데,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떤 날은 죽어보기로 결심했다. 어떤 날은 너무 서러워서 손님 앞에서 무방비로 눈물을 쏟았다. 어떤 날은 허공에 대고 계속 항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방은 쓰레기장이었고,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보다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좀 걸어봐.'
'우울은 수용성이래. 샤워나 한번 해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꺼야. 조금만 더 버텨봐.'
그 조언을 인지하고 행할 능력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우울의 한복판 속에서는 도무지 그럴 힘이란게 생기지 않았다. 사실 나는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고, 용기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고, 모든게 무의미했다. 나는 종종 살고 싶지 않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표현 자체가 어쩌면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뮤지컬 더라스트맨(The Last Man) 은 정체 불명의 좀비 바이러스로 멸망의 기로에 선 세상에서, 이 사태를 철저히 예견하고 준비해서 방공호에서 버티고 있는 생존자에 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이며, 90분 동안의 1인 뮤지컬이다. 2021년 초연을 시작으로, 배우마다 달라지는 생존자의 이야기로 대학로에서 입소문을 타며 점점 많은 회전러(같은 뮤지컬을 n회차 보는 뮤덕을 칭함. 배우따라 다르고, 회차마다 다르고, 자리마다 다르니 어쩔 수 없는 현상)를 양성했다. 2026년 현재 더라스트맨은 3연으로 돌아와서 대학로에서 현재 공연 중이다. 또한, 올해 5월에는 영국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Southwark Playhouse Elephant)에서 초연을 올리게 되는 좋은 소식이 있다. 유럽에서는 이 스토리가 어떻게 읽힐 지 벌써부터 두근두근 하다.
주인공 생존자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를 외치며 어디엔가 살아있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 계속 무전으로 교신하려 애쓴다. 밖에는 좀비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생존자는 좀비가 아닌 인간을 만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생존자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일까?
어쩌면, 현재의 나도 '생존자' 덕분에 지금껏 잘 살아있는 것 같다. 타인을 향한 적절한 위로라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숨쉴 힘도 없는 듯한 사람에겐, '힘내'라는 말이 잘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 처한 상황이 다르고 처한 고통의 크기도 다르다. 그 사람이 되지 않고서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뮤지컬 속 생존자는 본인도 힘들고 괴로울 텐데 끝없이 어딘가에 있을 또다른 생존자와 교신하려 애쓴다.
그 시절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힘내.' '시간이 약이야.' '괜찮아.' 라는 말도 아니었다.
사실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 지도 몰랐다. 내 마음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뮤지컬을 보다가 생존자가 벙커 밖 어딘가에서 자기처럼 살아있을 누군가를 향해 허공에 외치는 듯한 이 말을 듣고 내 안의 수십개의 빗장이 풀리며 펑펑 울어버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스포방지를 위해, 많은 분석과 해석을 생략했습니다. 부디 따뜻한 올 봄, 1인 뮤지컬의 진수인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으러 대학로에 한번 들른 후, 해석과 분석을 찾아 헤메이다 저를 다시 만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월에는 관람 후 스포가 가득한 후기를 개인브런치에 가져올 예정입니다.) 머지않아 해외로 뻗어나갈 또 하나의 K뮤지컬을 너무나 추천하고 싶어서, 이번 연재에는 참 애정하고, 때마침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더라스트맨' 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 작가명 - 김아람 /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20년 차 말(horse) 수의사입니다. https://brunch.co.kr/@aidia0207
* 글 소개 - 말수의사의 덕력 가득한 뮤지컬 관극기 / 덕후가 현생과 밀당하며 살아가는 비법을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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