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상담> 수업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보웬의 책
기대를 벗어난 하루들
내 안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원인은 지인과의 관계가 틀어져서였다.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편하지 않았다. 여행을 가도 그 지인과 함께 간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 지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가, 내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가, 둘 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가, 어쩌면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뒤늦게 심리학에 빠져들었다. 나와 지인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도서관에서 심리학 책을 빌려서 한 권 한 권 읽어 나갔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웠다. 책은 재미있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중구난방으로 읽다 보니 새롭게 배운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좀 더 학문적으로 깊게 배우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기도 했다.
사이버 대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집에서도 편하게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단다. 대학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시험도 보고 학점도 나오는 것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경험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고민하던 중에 모 사이버 대학에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추첨하여 뮤지컬 티켓을 준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상당히 비싸고 유명한 뮤지컬인 데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나오기도 했다. 나는 고민을 그치고 그 대학에 지원했다. 인간은 때로, 아주 사소한 이유로 중요한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뮤지컬에는 당첨되지 못했고 나는 사이버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억울할 것도 없는데 억울해서 그 뮤지컬은 내 돈으로 보았다.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내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곡이 생각보다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이 뮤지컬 때문에 대학까지 다니게 되었는데 말이다. 진작에 이 뮤지컬을 봤으면, 대학은 가지 않았을 것을.
등록을 하고, 수강 신청도 했다. 가장 관심이 갔던 과목 두 과목을 먼저 선택하고 나서 나머지 과목들을 고민했다. 가장 마지막에 선택한 과목은 <가족 상담>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딱히 들을 과목이 없어 넣은 과목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난 후에는 그 평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일단 가장 관심이 있었던 과목은 의외로 수업 내용 중에 통계 정보가 많아서 지루했다. 또 다른 과목은 세부적인 정보가 많아서 시험 준비가 고생스러웠다. 그 정보가 딱히 내게 필요한지도 잘 알 수 없었다.
<가족 상담>은 상담을 할 때 개인에게서 그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바탕으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상담이다. <가족 상담>을 배우면서, 나는 이 교수님이 우리집에 왔다 가셨나 싶을 만큼 ‘용하게’ 나와 우리 가정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심지어 교수님은 우리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인, ‘내가 너 때문에 산다’는 말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명확히 지적해 냈다. 그 말이 사랑을 담은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녀들을 부모와 융합시켜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그 말을 들었던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관계의 문제에 시달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타인을 만족시킬 때에만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왔다. 엄마는 비단 말로만 ‘내가 너 때문에 산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의 말과 행동으로, 내가 엄마의 마음에 만족을 줄 수 있도록 길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나는 타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때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에게 나를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지인과의 관계가 힘들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따져볼 수 있다. 나는 그가 내게 실망하고 멀어지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내가 누구에게 미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가 나를 대하는 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 같아서, 그가 내 인사를 한 번 받아주면 기쁘고 무시하면 마음이 무너졌다. 이렇게 흔들리는 스스로가 더 싫었고 어디 가서 이야기를 하기도 부끄러웠다.
<가족 상담> 수업을 통해서 내가 가장 싫어했던 나의 모습이 나의 가족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더는 부인할 수 없는 나의 근원이었다. 먹먹하고 답답했다. 어느 드라마나 웹툰에서처럼 회귀라도 해야 하나 싶었을 때 교수님의 말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그렇게 살았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복의 근원이 될 겁니다.’ 복의 근원이라니, 내 근원이 썩어버렸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나의 근원을 끊고 나의 아이에게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확실한 근거가 있어서 한 말도 아니었다. 그저 수업 중에 지나가는 말이었고, 그러고 나서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말, ‘복의 근원’이라는 데에 멈추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 이 근원만큼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럼에도 무의식 중에 나 역시 내 엄마처럼 아이를 구속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 말이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악이 아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너는 너의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될 것이라고. 그 말이 내게 깊은 위로로 남았다.
지인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괴로워하며 상담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사이버 대학의 문을 두드렸을 때, 아무 정보 없이 수강 신청을 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나는 그것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두드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나의 아주 깊고 아픈 부분을 건드릴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은 그런 예측 불가능한 것들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 2회차가 아닌 이상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모르는 것이니 그저 나는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발을 내딛어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되는 첫 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살아갑니다. 학창시절에는 늘 시키는 것만 잘했는데, 이제는 안 시키는 것도 찾아 보고 해 보면서 삶이 이런 온도였는지를 새삼 매일 알아가고 있습니다.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