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쓰라
사유와 자유의 시간
from. 강동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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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는 척박한 출판 토양 위에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묵묵히 '책'이라는 세계를 일궈 온 이가 있다. 지역 출판의 자부심을 지키며 수많은 저자의 탄생을 돕고, 스스로도 치열한 기록자로 살아가는 호밀밭 출판사의 장현정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최근 펴낸 『일인일서』는 단순히 책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왜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기록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서점 크레타는 이 뜨거운 문장들이 태어난 궤적을 쫓기 위해 그를 초청하여 아주 특별한 북토크를 열게 되었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표정에는 저마다 읽히지 않는 서사가 서려 있었다. 어떤 이는 일과를 마치고 남은 피로를 겉옷처럼 걸치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기대 섞인 호기심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날 장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목적 없는 대화'의 가치에 대해 먼저 운을 뗐다. 효율과 성과가 지배하는 일터의 언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는 행위는 낯설고도 두려운 영역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문학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북토크는 단순히 기술적인 글쓰기 강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가 어떻게 문장으로 치환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깊은 파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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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표는 '글', '그림',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모두 '긁다'라는 뿌리에서 왔음을 설명하며 청중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 존재의 표피를 걷어내고 진피를 긁어 흉터를 드러내는 일이다. 긁으면 상처가 나고 피가 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매끈하고 예뻐 보이기만 하는 문장은 사실 진짜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상의 목적 있는 글들이 피부 겉면을 스치는 표피의 언어라면, 진짜 글쓰기는 세포를 깨우고 존재를 흔드는 진피의 언어여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자기 안의 밑바닥을 긁어내어 그 아픔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었다.
책 쓰기는 단순히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그것은 집을 짓는 '글 짓기'와 같아서, 어떤 판형의 집을 지을지 규모를 가늠하고 문단이라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설계도 없이 흘러가는 블로그나 SNS의 글이 책이 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 대표는 매일 원고지 5매를 채워가는 '신독(愼獨)'의 시간을 강조했다.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문단이라는 기본 단위를 성실히 쌓아가는 과정이다. 보통 원고지 15매 정도가 한 호흡에 읽기 가장 좋은 분량인데, 이런 밀도 있는 글들이 30개 정도 모였을 때 비로소 500매 내외의 나만의 언어로 된 단단한 성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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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돌로 성을 쌓는 기록의 힘
퇴고의 과정 또한 요리사가 식재료를 다듬듯 불필요한 부사와 형용사를 걷어내는 인내의 시간이다. 장을 봐온 모든 재료를 냄비에 쏟아붓는다고 좋은 요리가 되지 않듯, 글 역시 아까운 문장들을 과감히 버릴 때 비로소 비린내가 가신다. 특히 남들이 다 쓰는 뻔한 수식어는 글을 게으르게 만든다. 내가 겪은 특별한 노을 앞에서 '슬프다'는 단어 대신 나만의 문장을 찾으려 애쓰던 그 순간들, 장 대표는 그것이 바로 작가로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이자 '신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사물과 현상에 대체 불가능한 올바른 이름을 붙여주는 '정명(正名)'이야말로 인문학의 출발이기 때문이었다.
글은 나를 마주하기 위한 도구이자,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기록으로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유한성 때문에 초월을 꿈꾸거나 기록을 남긴다. 서구의 초월적 사유가 아닌,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치욕 속에서도 기록을 충실히 멈추지 않았던 동양의 인문 전통처럼, 우리도 각자의 상처를 돌로 삼아 단단한 성을 쌓아 올려야 한다.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내가 세상에서 걸려 넘어진 돌들을 버리지 않고 하나씩 모아 세운 성, 그것이 바로 한 권의 책이다.
지금 당장 쓰라. 당신의 삶은 당신만이 가장 정확하게 마주할 수 있고, 당신만이 가장 깊이 있게 기록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존재를 긁어내는 과정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끝에는 엉킨 실타래가 풀린 듯한 개운함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긁힌 흉터 위로 피어난 문장들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자기만의 글을 쓰고, 세상을 향해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지침서가 된다. 20년의 치열한 경험이 녹아든 장현정 대표와의 대화는 나만의 마침표를 찍고 싶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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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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