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좋아서
봄바람처럼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단어는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말 중, 우리를 가장 설레게 하는 단어는 단연코 ‘왜’다. 별것 아닌 일도 “왜 그럴까?” 하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금세 흥미로워진다. 밋밋한 흙무더기처럼 보이는 땅을 조금씩 파내, 오랫동안 그 안에 잠들어 있었던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랄까. ‘왜’라는 질문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들을 가장 지루하게 만드는 단어는 뭘까? 아마도 ‘공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자란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명문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잘 살 수 있다’라는 게 우리 사회가 매일같이 외우는 만트라다. 한순간이라도 멈칫하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살벌한 경고에 등을 떠밀려 학생들은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한다. 그러니 다들 찌든 얼굴로 “나는 공부가 너무 싫어!”라고 외치는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사전에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공부라고 정의돼 있다. 넓은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참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공부의 정의와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결국 “왜?”라고 묻는 일이다. 궁금한 것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 그 과정 자체가 공부 아닐까?
내가 공부를 좋아하게 된 건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정확히는 번역가가 된 이후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는 대신 궁금한 걸 좇아가는 과정을 즐기게 되어서다. ‘영어에서는 왜 이렇게 표현할까?’라는 호기심이 공부에 흥미를 불어넣었던 셈이다. 더불어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아차’ 했다가는 오역의 길에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아주 원초적인 두려움 말이다. 번역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며 살지도 모르겠다.
번역계에는 ‘번역은 반역(Traduttore traditore)’이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번역가도 원문의 뉘앙스와 문화적 맥락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프랑스인들이 단테의 신곡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는 데 분노한 이탈리아인들이 이런 말을 만들어냈다는 설도 있지만, 어디에서 시작된 말인지 그 출발점이 명확하지는 않다.
오역 좀 했다고 반역자라니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잘못된 번역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냉전 시기, 소련의 고위권력자가 한 말이 서방을 향한 협박으로 오역돼 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다. 1956년,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은 축하 연회에서 소련의 이데올로기가 서방의 이데올로기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뜻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We will bury you(당신네들을 모두 파묻어버리겠어).”라는 협박으로 오역됐다. 다행히, 심각한 사건 없이 긴장과 갈등은 봉합됐지만 한 줄의 오역이 핵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이다.
나는 반역자가 되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한다. 물론 인류를 구할 연구에 매진한다든가 인생을 걸고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식의 거창한 공부는 아니다. 책을 읽고, 새로운 단어를 기록하고, 꾸준히 글을 쓰며, 또다시 ‘왜’라고 묻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겐 공부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할까? 하는 일이 다르면, 살아온 길이 다르면 저마다 공부를 대하는 자세가 어떻게 달라질까? 이런 질문에 답을 해줄 책이 오늘 세상에 등장했다. 12인 12색의 공부 이야기가 담긴 <공부가 좋아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번역가로 살며 내가 경험한 공부 이야기와 함께, 교사, 주부, 사서, 데이터 전문가, 심리학자, 변호사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여러 작가가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한 공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공부를 하나의 정답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질문을 이어가고, 배움을 삶 속에서 길어 올리는 과정 자체가 곧 공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왜 공부를 할까?
정말로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재미있는 공부라는 게 있기는 할까?
공부를 하고 나면, 그 사람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분들에게 <공부가 좋아서>를 추천한다.
[번역가의 슬기로운 언어 생활] 글쓴이: 김현정 코너 소개: 번역가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언어, 그 너머의 문화와 사람 이야기. 작가 소개: 현직 번역가. <경제 저격수의 고백> 등 50여 권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꿈은 김 작가. 이제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기기보다 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k4n8 iamwriting72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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