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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꽃 주변에 벌들이 분주하게 윙윙댄다. 노란색 수선화가 봄이 왔다고 방긋 인사를 건네도 꽃샘추위를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춘분 무렵에는 일교차가 몹시 심하다. 해남이 암만 남쪽 끝에 붙어 있다고 해도 봄을 맞이하는 관문인 꽃샘추위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하는 건 피할 길이 없다. 봄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꽃샘추위에는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다. 너무 일찍 알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얼어 죽기도 한단다. ‘한 해를 무사히 보내려면 꽃샘추위라는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라는 글귀를 보고 무릎을 딱 쳤다.
해남으로 이사 온 뒤 시골 마을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둘째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진 것이었다. 주먹만 한 얼굴에 새빨간 피가 줄줄 흐르는 걸 손으로 막고 집으로 들어온 아이를 보는데, 가슴이 얼어붙었다. 놀면서 한두 번 다친 게 아닌 경력자라 다시 마음을 붙잡고 찔끔 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다행히 크게 잘못된 건 아니었다. 얼른 응급실로 향했다. 꿰매면 되겠다 싶었다. 아직도 맨발로 노는 게 최고로 좋은, 아랫니가 빠지기 직전인, 한글도 다 못 뗀 2학년 남자아이는 이렇게 엄마를 놀라게 한다.
둘째는 그렇다 치고, 첫째 아이는 첫째대로 엄마 속을 썩였다. 작년과는 사뭇 다르게 뭔가 달라졌다. 싫다는 소리도 제법 늘고, 아무 말 대잔치에 거칠게 말을 툭툭 내뱉기도 하고, 왈가닥이 되어 엄마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4학년이 되면 다 이렇게 변하는 걸까? 올챙이에서 개구리의 뒷다리가 생기고, 앞다리가 생기는 변태 과정을 겪는 것처럼 어느새 팔 다리가 길어지고 고학년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나이에 따른 성장 과정 중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어쩌면 이사로 인한 환경 변화도 한몫할 거라 보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봄이 왔다고 무작정 뛰쳐나가기 보단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전에 여러모로 준비가 필요했다. 생활 환경 변화의 물결에서 안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꽉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해가 질 때까지 자연 속에서 활기차게 뛰노는 것도 물론 좋지만 가정 안에서는 서로 마음이 오롯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새로 이사 온 이곳은 늘 친구들이 찾아오고, 아이들은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굴리며 어디든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마을 주변을 어디든 누비며 놀 수가 있다. 우리가 이사 오고 나서 마을이 한바탕 떠들썩해진 거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이 해 질 녘까지 놀다가 동네가 떠나가라 이름을 불러야 집으로 돌아오는 게 마치 90년대 드라마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이들 사이에서 자꾸 언성이 높아지고 야단을 치게 되어 괴로웠다. 어릴 때 노는 게 암만 중요하다 해도 아이가 다치고, 아이가 말대답을 하는 순간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아이들과 마음을 모으기 위한 대책을 세웠다. 아이들과 함께 작은 약속을 만들었다. 가족끼리 만든 작은 규칙이랄까. 한글이 다 안되는 둘째 아이도 연필로 삐뚤빼뚤 종이에 써 놓은 약속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 일’ 이라고 시작되는데 그 중에 집에 들어오면 손 씻기, 차 안에서 조용히 있기, 고집 부리지 않기 같은 내용이 있는데 분명히 다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작은 약속, 작은 습관들이 모여 하루를 만들어 낸다. 그 하루들이 모여 그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