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 전야-조성진의 연주를 듣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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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소장_조성진 공연에서 사용된 피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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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새벽 2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1인용 소파에 몸을 밀어 넣고, 작은 협탁 위에 놓인 노란색 램프의 불빛으로 계속해서 나를 녹이고 있었다. 지겹게 내린 겨울비에, 런던은 또 우리는 온종일 몸이 젖어 있었지만, '지겹게 내리는 이 놈의 비' 라는 말을 하루 종일 읊조리면서도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칼을 뽀송하게 말리고 나면 또다시 저 놈의 빗소리는 운치 있는 빗소리로 쉽게 이름을 바꾸어 버리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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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7시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5시 30분에 깨웠다.
전날 좋아하는 것들로 가방을 채우고 일찍 잠들기 위해 애쓰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이만큼 또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었다.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은 마치 한국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몇 년 전부터 영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전자여행허가서를 발급받도록 하고 있는데 신청절차는 복잡하지 않지만 1인당 16파운드(한화 3만 원)의 신청비를 내야 하는 것과 신청하지 않은 경우 입국이 불가한 불편함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아일랜드 국적자와 거주비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행허가서 신청을 면제해 주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입국이 편리한 편이다. 무엇보다 '라이언 에어'와 같은 저가항공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더블린에 가는 것보다 런던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방문할 수 있게 해 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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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은 내일의 날씨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4계절이 꽤 뚜렷한 한국에서 살던 내가 10년 넘게 아일랜드에서 살아보니 내 기준으로 아일랜드의 1년 기후는 단순하게 건기와 후기로 나뉘는 것 같다. 2월 중순의 아일랜드는 매일 비가 내리고 있었고, 런던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옷을 따로 챙길까 고민하다가 1박 2일 일정에 가족 모두 백팩 하나 메고 가는 여행이니 그냥 여분의 모자를 하나씩만을 더 챙기기로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비행 탑승용 계단을 오르면서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온몸에 걸쳐진 것들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이제 10살이 된 아이가 저도 젖는 중이면서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나는 그 따뜻한 눈빛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그 눈빛은 제 아빠에게서 배운 것 같았다. 무작위로 할당된 좌석에 나와 아이와 저 멀리 떨어져 않은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짧은 비행 후 온 가족이 다시 재회할 순간을 기다렸다.
아침 일찍부터 풀메이컵을 하고 런던으로 hen party를 가는 여성들이 앞뒤 자리를 차지하고 던져내는 아무 의미 없는 대화들의 볼륨을 진심으로 낮춰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1시간 남짓 비행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들이 먼저 비행기에서 내리자 시끌벅적했던 1시간의 시간이 차지하던 공간은 적막했고, 내 귀는 그제야 편안해졌다.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고속 기차를 타고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 도착했다.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먹고, 역 주위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런던의 겨울 아침은 생각보다 쌀쌀했지만, 우리를 더욱 움츠리게 한 것은 추적이는 겨울비였다.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오랜만에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즉시 내가 런던에 온 목적을 다시 떠올리자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가벼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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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 최고의 기분이어야 해.”
그가 하루 종일 여러 번 나에게 또 혼자서 내뱉은 말이었다. 이번 여행은 온전히 엄마를 위한 또 아내를 위한 가족여행이었다. 비록 엄마인 내가 계획한 여행이었지만, 또 홀로 떠나 올 수도 있는 여행이었지만, 남편과 아이에게 여행을 제안했을 때 그들은 나를 위해 기꺼이 이 여행에 동참해 주었다.
6개월 전 한 여름의 열기가 식어가던 8월의 어느 날, 우연히 동생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이름을 검색하며 늦은 생일 선물을 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는 그의 음악회 티켓을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동생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조성진이 런던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1년간 계약을 하고 함께 음악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금요일에 영국 방송인 BBC에서 주최하는 작은 콘서트에서 조성진의 공연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클래식 공연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일부러 콘서트를 찾아다닐 정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아닌 나였지만, 저 공연에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1시간 남짓의 공연이 아이에게 적합할 것 같아서 더 마음이 갔다. 그러다 남편에게도 제안을 했고, 1년간 3일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무급휴가 중 하루를 내어서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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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맡기고 공연이 열리는 곳까지 미리 가 보았다.
거리에 넘치는 사람들 속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걷다가 마치 비틀스의 앨범처럼 한 줄로 나란히 걷기도 했다. 비가 내려 행여 물웅덩이라도 발견되면 남편은 미리 한 발자국 앞에서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내 발이 젖지 않게 했다. 만으로 10살이 된 후에 동네에선 같은 반 아이들이 볼지도 모른다며 손을 잡고 걷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던 아이는 복잡한 길에서 나를 잊어버리지 않기라도 할 듯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한국 음식점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은 뒤 호텔로 돌아가 체크인을 하고 새벽부터 바쁜 걸음을 옮겨 피곤해진 몸을 잠시 쉬게 했다. 깜빡 잠이 든 나와 남편은 알람 소리에 번쩍 눈을 떴는데 미리 가본 길이었지만 퇴근 시간 근처에 더욱 늘어난 인파 때문인지 생각보다 더욱 임박하게 공연장에 도착할 것만 같았다. 찬바람이 부는 런던의 겨울밤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우리는 손을 잡고 3인 4각을 하는 사람들처럼 빠른 걸음으로 박자를 맞춰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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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기다리면서 나는 사람들의 기대와 설렘이 공기 속에 퍼져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처럼 나의 기대와 설렘 역시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서 그들의 그것과 함께 그 공간의 공기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아이와 남편을 바라봤다. 잠시 눈을 붙인 우리와 달리 잠시 낮잠을 자지도 않고, 새벽 5시부터 깨어있는 아이의 눈은 창밖에 내려앉은 어두움처럼 피곤함과 졸림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내심 아이가 걱정 되었지만, 아이를 믿고 일부러 아이에게 좀 더 가까이 앉아 아이 어깨를 내게 기대게 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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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예약한 뒤 레퍼토리를 미리 찾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또 가족의 저녁 식사에 가능한 자주 들으려 노력했다. 클래식 애호가인 동생의 조언을 듣고 그렇게 했는데, 몇 개월간 들어왔던 곡이 분명 같은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성진이 그 자리에서 직접 연주한 그 곡들은 그의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렸다.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아노 선율과 함께 다른 연주자들의 현악기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공연장으로 쓰이는 옛 교회의 높은 층고를 완전히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음악가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공간에 가득한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묵직하게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부딪혀 소리가 변형되면서 시공간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 안에서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가 마치 퍼즐의 조각처럼 그 ‘순간’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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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
하루 종일 남편이 내게 준 다정한 보살핌은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거리의 상점을 가득 채운 비싼 초콜릿이나 백송이 장미다발보다 훨씬 더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징표 같은 것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피곤함이 내려앉은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내내 동그란 눈을 뜨고 연주를 듣고 있었다. 아이는 '살짝 졸리기도 했지만, 그러면 공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고 꾹 참았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공연 중에 보았던 아이의 동그랗게 뜬 눈은 졸리지만 졸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나타낸 귀여운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다시 떠 올리며 아이가 정말 사랑스러웠고 또 대견스러웠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다시 추적거리는 비를 맞았지만, 마음은 비에 젖지 않았고 그저 뽀송하기만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엄마의 날, 아내의 날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두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조용한 정적만이 가득한 방 안의 푹신한 소파에서 나는 앉아 나를 사랑으로 채워준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었고, 밤은 깊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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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말’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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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 http://brunch.co.kr/@regina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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