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포기하지는 말기를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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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아이는 참 빨리 큰다더니, 우리 집 아이는 더 빨리 큰다. 파도 같이 몰려오는 진통을 견디며 병원으로 달려가던 밤길이 아직도 눈앞에 선한데, 그날 태어난 아기가 벌써 첫돌을 맞았다. 그동안 아기 유자는 정말 많이 자랐다. 하루 열두 번 먹고 자고를 반복하던 신생아 시기를 거쳐, 옹알이하는 제 소리에 놀라더니, 어느 날 갑자기 기어다니다가, 마침내 혼자서 미끄럼틀도 탈 수 있는 어엿한 인간으로 진화했다. 이제 고집도 생겨서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꽥 지르는 모습이 당황스럽지만 귀엽고, 더 이상 이유식이 아닌 사람 밥을 제 손으로 우걱우걱 퍼먹는 모습은 웃기고도 사랑스럽다. 말귀도 많이 알아들어서, 종종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는 재미도 있다. 아무튼 조금 더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고, 1년 만에 그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다.
1년간 건강하게 잘 자라준 유자, 유자를 무사히 생존시킨 나와 짝꿍, 그런 우리 셋을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응원해 준 가족들을 위해 작은 돌잔치를 했다. 한 인간을 키우는 대단한 일을 해낸 스스로가 참 뿌듯하면서도,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 서운한 날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돌잔치 다음 날,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고생했다. 엄마가 그냥 되는 게 아니니라.
그래도 날마다 해마다 보여주는 감동이 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키우는 거다.”
참 맞는 말이네,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어진 메시지에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렇다고 너 자신을 포기하지는 말기를......”
나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슬펐다. 지금도 에너지 넘치는 나의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느라 젊은 시절의 자신을 포기한 것 같아 슬펐고, 엄마가 포기하지 말라는 나 자신은 대체 누구인지 모르겠기에 또 한 번 슬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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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아이는 정말 많이 자랐다. 아이 덕분에 엄마가 된 나도 엄마로서 참 많이 자랐다. 말 못 하는 아기의 손짓과 눈빛을 읽을 줄 알게 되었고, 똑같은 동화책을 열 번, 스무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척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 끼니는 대충 때우더라도 아기 반찬은 건강하게 요리하는 법을 익혀가고, 아기가 낮잠 자는 30분을 1시간처럼 알차게 쓰는 요령도 터득하고 있다. 물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하루도 빠짐없이 갈팡질팡하지만, 여차저차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지난 1년간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기도 하다. 엄마가 아닌 나는 무엇을 좇던 사람인지, 언제부터 무슨 일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어떤 비율로 나와 가족에게 나눠 써야 할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으로 불안한 마음이 매일의 배경음악처럼 잔잔히 깔려있다.
사실 이 고뇌의 시작이 꼭 출산과 육아 때문만은 아니다. 타이밍의 문제였고, 시행착오이기도 했다. 소위 ‘로망’이었던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너무 쏟아낸 끝에 결국 번아웃이 찾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숨을 고르며 쉬던 중, 찾아오는 여러 기회를 뿌리치지 못하고 덜컥 프리랜서의 삶에 뛰어들었다. 전과 비슷한 국제 개발 협력 일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 단기 출장을 다녔다. 뚜렷한 청사진이나 대단한 결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새로운 업무가 흥미롭고, 여러 나라에 다니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삶이었다. 할수록 일이 즐거웠고, 이렇게 계속 일하며 여행하며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6개월쯤 되었을 때, 아기가 찾아왔다. 계획하고 준비한 결과이긴 했지만, 막상 새롭게 적응하고 있는 삶의 형태에 새로운 가족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니 두 가지 다에 집중하기란 내 맘 같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며 몸도 마음도 자연스레 일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렇게 말은 프리랜서이지만 반백수인 채로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나 자신을 아직 한창 만들어 나가는 프로젝트 진행 중에, 다른 사람 하나를 키우는 무모한 새 프로젝트에 겁도 없이 뛰어든 셈이었다. 사실 임신 기간 중에는 아기를 기다리는 설렘과 분주함으로, 육아가 시작되고는 늘 잠이 부족한 일상 때문에 이런 고민은 후 순위였다. 하지만 아기가 조금씩 자라고 점점 숨 쉴 틈이 생기면서, 그간 묻어뒀던 고민이 슬슬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다독이다가, 다음 날이 되면 내 앞의 문이 다 닫혀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엄마가 아니던 시절의 나를 고작 1년 만에 다 잊어버린 것만 같아 막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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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며칠 전,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라이프 코치가 진행하는 ‘나다움’에 관한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요즘 내 고민을 그대로 받아적은 듯한 주제를 보고는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프닝에서 강연자는 애벌레와 꽃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들이 나다운 순간은 과연 언제인지를 물었다. 애벌레는 오직 나비가 되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인지, 꽃씨는 비로소 꽃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그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때그때의 모습이 다를 뿐 생명의 모든 순간은 나다운 순간인데, 왜 나는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나, 혹은 엄마가 아니고 일을 하는 나만이 내 자신인 것처럼 생각하는 걸까, 왜 ‘나를 잃어버렸다’라고 생각하는 걸까 싶어졌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서 나다움이란 무엇인지, 왜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나답지 않은 듯 자꾸 부정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새로운 깨달음이 꼭 당장의 엄청난 변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세미나를 듣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무슨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헤매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삶의 형태가 주는 자유 그 이면에 있는 막막함, 결단력, 책임감 같은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더 이상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엄마가 된 나와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인 나를 품고 더 큰 내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믿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엄마가 되는 것처럼, 엄마가 되어 새로워진 나와 내 삶에 대한 믿음도 연습해야 한다. 모두 처음 겪어보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을 품고, 지금 나는 과거의 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내 자신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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